[스크랩] 산골 봄소식

 

 

 

며칠째 날씨가 고르지 못한 탓에 받아둔 고로쇠물이 거의 다 떨어져 간다. 얼마 전 어렵게 찾아낸 는쟁이냉이로 담근 물김치도 벌써 떨어진 지가 오래다. 그러고 보니, 각종 종양에 좋다는 느릅나무 뿌리 채취도 지금이 적기이다. 때 마침, 날씨도 좋은 편이라 산행 채비를 해서 함께 지내는 로한이를 앞세워 뒷산을 올랐다.

 

엊그제 내린 봄비로 인해, 산길의 땅이 완전히 다 녹았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산길, 산짐승들의 길을 따라, 내가 겨울 동안에 정비해 둔 그 길을 걷는다. 수북이 쌓인 낙엽 아래 진흙이 젖어, 가끔 발이 미끌어지기는 하나 밟는 감촉이 아주 부드럽다. 또 낙엽 사이로 간간히 얼굴을 내민 산야초들의 싱그런 기운에 눈도 즐겁다.

 

집을 떠난 지 40분 여, 산중턱에 위치한 고로쇠물 채취 장소에 당도했다. 날씨가 좋으면 족히, 4~5 리터는 매일 얻을 수 있지만 이번에는 겨우, 500 cc가 될까 말까할 정도로만 고여 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산행 중에 마시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고로쇠물을 물병에 옮겨 담고 나서 또 다시 산을 오른다. 여기저기에 산재한 거제수며 다래나무를 살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고로쇠물이 다하면 그 뒤를 이어서, 맛있는 수액을 나에게 제공할 후보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이삼십 분이 더 걸려 능선에 올라섰다. 주변의 흉고 이삼십 센티미터 짜리 산벚나무나 참나무는 아직도 꿈쩍 않고 있지만 생강나무나 진달래는 꽃봉오리를 제법 크게 부풀리고 곧 꽃망울을 터트릴 태세를 갖추었다. 그 뒤를 이을 쪽동백나무와 철쭉도 가지 끝이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멀리서 시야로 들어오는 낙엽수들의 빛깔에서도 붉은 색과 연두색이 완연해졌다. 아무려면, 오는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라 해서 이 몰려드는 봄기운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그러나 아직, 봄은 봄이로되 봄 같지 않은 구석이 있다. 바로 내 마음이다. 치명적인 악성림프종 4기 암을 일단 잠재웠다고는 하나 아직은 단지 휴지기일 뿐, 그것이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모른다. 전립선암이 아직 위협적이지는 않으나 여전히 내 몸속에서 자라고 있다. 사업을 정리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처리해야 할 회사와 상품은 남아있다. 이미, 가족까지 버렸다고는 하나 아직도 천륜의 인연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다. 세상 사람들과 담을 쌓고 지낸다 하면서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도 외로움을 떨치지도 못했다. 온갖 상념에서 이제는 벗어나리라 하면서도 이렇게, 슬피 우는 산새 소리에 잠을 못 이루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있다.

출처 : 산처럼 물처럼

글쓴이 : 無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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