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투병기
부라보. 마이 라이프 공모전 입선 / 암이 가져온 새로운 인생2막
라이프케어 김동우
2025. 5. 2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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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보. 마이 라이프 공모전 입선
제목; 암이 가져온 새로운 인생2막
"직장암입니다."
치질인 줄 알고 찾아갔던 병원에서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직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앞에
"의사 선생님, 어려운 말씀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쥐가 고양이를 배려하는 듯한
내 모습에 쓸쓸한 웃음이 나옵니다.
암...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암 환자.
"얼마나 못된 짓을 했으면 암에 걸렸을까?"
말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오죽하면 "암에 걸려서 죽어라." 라는 악담이 있을까요?
"내가 그렇게 못되게 살았나?"
"나만큼 성실하게 산 사람도 드물 텐데..."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생각은
7년이 지난 지금도
내려놓지 못하고 마음 한쪽에 한 보따리 쌓아두고 있습니다.
행여 거짓말하다가
들킬까 봐 꽁꽁 숨기는 꼬맹이처럼
나는 친구들에게도 내가 암 환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느낌이 싫었습니다.
항문과 거리가 가까워서
항문을 살릴 수 없었고,
일명 똥주머니(장루) 를 차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한의원을 다니며 수술을 미뤘습니다.
현대 의학을 따르는 자식들은 매일같이 수술을 권하기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는 말처럼
결국 1년 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현실 앞에서
"죽음보다 더한 악몽 같은 삶도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그 흔해빠진 일상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공기가 당연히 있고,
우리는 마실 물이 당연히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 은 없는 게 아닐까요?
우리는 당연함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나는 그랬습니다.
"화장실 가는 일이 뭐 그리 대수라고?"
변비도, 설사도
나와는 먼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40~50번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볼 일을 보다 보니,
항문이 아프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이 연고, 저 연고 다 발라보고
꿀까지 발라보았지만,
불타는 듯한 항문의 통증은
진통제만이 유일한 처방이었습니다.
감히 외출은 꿈꿀 수도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외출해야 하는 날에는
전날 저녁부터 종일 굶어야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똥주머니를 차고
밤에 자다가 똥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급기야는 밥 먹는 것조차 싫어졌습니다.
참, 사람의 생명력은 대단합니다.
"저러고도 살고 있냐?"
"참... 나 같으면 벌써 죽었을 텐데..."
우리는 무심코 남의 불행을 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우주에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살고자 하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똥주머니를 차고도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사람 같지도 않고,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방배동에서 운영하던 수학 공부방에서
2018년 11월에 마무리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열심히 살았더니
신이 휴가를 주나 보다.
좀 쉬었다가 하늘로 가라는 뜻인가 보다."
스스로 위안하면서,
보험회사에서 나온 암 진단비로
시골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과 땅,
전세 보증금을 정리하고
서울과 시골을 왔다리 갔다리
왕초보 농부가 되었습니다.
인생 2막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시골 출신이지만,
아버지는 항아리를 만드셨고,
어머니는 항아리를 팔았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었고,
어설픈 호미질조차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늦가을에 심은 양파잎이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버티는 모습을 보며
구멍이 뻥뻥 뚫린 완두콩을 심으면
주렁주렁 열리는 것을 보며
허리 아픈 것도, 힘든 고생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란은 키가 크고 잎이 넓어서
청개구리가 물 마시고 놀기에 좋은 잎을 가졌습니다.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아
토란 심기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커다란 토란대를 베어다가
여기저기 무료로 나눠주는 것도
신나는 놀이였습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60년대는
참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농촌에서는 어린아이들도 밭일을 도왔습니다.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기에
이제야 농사를 놀이 삼아 한다고
친구들은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내 친구들은 참외순 잡는 일이 너무 싫어서
중학교 진학도 포기하고
도시로 나왔다고 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기왕 암 환자가 되었으니
슬퍼하면 무엇하겠습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의 법칙을 따르는 나는
암 또한 반길 손님은 아니지만
주어진 현실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수업시간에 쫓겨
지하철 환승을 위해 뛰어다니고
강남 길거리에서
한 겨울에도 김밥 한 줄 사 먹으며 살았지만
백수가 되어버린 지금은
시골 창문 밖으로
옥수수잎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넋 놓고 들어도
시간이 나를 내쫓지 못합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요!
여름이 되어 하지가 오면
맨발로 빨간 감자를 캐며
아이처럼 즐거워합니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흙의 촉감을 느끼며
밥 먹는 것도 잊고
해가 서산에 기울 때까지 몰입할 수 있는
이 행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벌레 먹은 잎을 바라보며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 삶이 이렇게 시들어간다 해도
서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파보니
아픈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고
길어 보였던 인생길도
쉬어 보니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해졌습니다.
오늘 밤에도
하늘의 별은 나를 보며
응원과 격려의 반짝임을 보내줍니다.
인생은 서러워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2025.03.25
♧...
지난 4월 15일 수상 사진입니다.
뇌암 친구가 응모해 보라고 하기에
보냈더니 꼴찌인 입선입니다.
수상식에 갔더니
아휴... 꼴찌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문 기자출신이고
거의 자기 책을 출판했던
그야말로 글쟁이들이더라고요.
늘 이곳 카페에서 읽어주신 덕분에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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