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투병기

[2025년 희망가] 27세에 위암 4기 유남경 작가가 사는 법

라이프케어 김동우 2025. 5. 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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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희망가] 27세에 위암 4기 유남경 작가가 사는 법

“오늘 최고로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건강다이제스트 | 유남경(작가)】

2023년 11월 14일에…

일을 사랑했습니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일에 몰두할 정도였습니다. 문화재단에서 다양한 예술지원사업을 운영하고 팀의 서무까지 도맡아 하면서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소화가 잘 안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설마 별일 있겠어?’ 했습니다.그렇게 몇 달이 흘렀지만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2023년 10월에 동네병원을 찾았던 이유입니다.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했지만 약 처방만 해주었습니다. 27세라는 젊은 나이 때문인지 내시경을 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 내시경을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후에야 내시경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내시경 결과는 바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위암 같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눈앞이 아찔했습니다. 믿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멍한 상태로 공원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만 더 빨리 내시경 검사를 했다면 달라졌을까?’하는 생각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갑자기 원인 모를 열이 나고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암?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이럴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내가 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암이라고 하고,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하니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습니다.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동네병원에서 암인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지 이틀 만에 대학병원에 갔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여러 가지 검사도 했습니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내시경, CT, PET-CT 등 많은 검사가 이어졌습니다.검사하는 내내 자꾸만 죽음이 떠올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암이란 게 정말 그랬습니다.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암=죽음’이 연상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털어내려고 별의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설사 암이어도 수술만 하면 괜찮을 거라는 긍정 회로도 열심히 돌렸습니다. 힘든 검사가 모두 끝나고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면서도 ‘설사 암이라 해도 수술하면 되지 뭐!’ 했습니다.

하지만 담당의사가 보여준 CT 사진은 삽시간에 모든 희망을 앗아갔습니다. 온몸이 까만 암 덩어리로 덮여 있었습니다. 담당의사가 말했습니다. “복막에 암이 전이되면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2023년 11월 14일, 저는 위, 간, 림프절, 복막까지 암세포가 전이돼 수술이 불가한 위암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겨우 스물일곱 나이에.

슬픔은 잠깐, 빠르게 암을 받아들이고 준비하기

스물일곱 젊은 나이에 위암 4기! 그것도 수술이 불가한 위암 4기는 정말 날벼락 같은 일이었습니다.납득이 안 됐습니다. 크게 아픈 적도 없었습니다. 단지 소화가 안 돼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위암 4기였습니다.위암 4기 판정을 받자마자 곧바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담당의사는 “이미 너무 많이 전이된 상태이고, 전이 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말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여서 암세포의 전이 속도도 엄청 빠르다고 했습니다.위암 4기 진단에 항암치료까지 너무도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슬픔이나 절망 같은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었습니다. 치료 일정을 따라가느라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흘러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가슴에 아로새긴 건 ‘이겨내자.’였습니다. 노심초사하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11살 차이가 나는 어린 동생도 있었고, 항상 자식이 먼저인 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게다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남자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슬픔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암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이겨내자 결심했던 이유입니다. 이 같은 마음은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이겨내는 데도 큰 힘이 됐습니다.

1년 동안 2번의 내성과 30번의 항암

2023년 11월 위암 4기 진단을 받자마자 시작된 항암치료는 고통과 희망의 롤러코스터와도 같았습니다.1년 동안 정말 공격적으로 항암치료를 했습니다. 20~30대의 암세포는 말 그대로 젊고 활기차 전이도 무서운 기세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불행 중 다행으로 항암치료 효과도 크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이었습니다. 정확하게는 2024년 5월 14일, 기적이 찾아왔습니다.보통 항암치료를 해서 암이 사라져도 원발암은 남아있는 상태가 대부분인데 원발암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원발암이 사라졌다는 말에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했습니다. 어떻게든 수술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기적이라 할 만한 몸 상태가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적은 너무도 짧게 끝나버렸습니다. 기적의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바로 전신 피부에 발진이 생겼습니다. 항암제 내성이라고 했습니다.그렇게 1차 항암제로 총 16번의 항암치료를 했습니다. 짧게 찾아온 기적은 저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도 남겼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1차 항암제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약을 바꿔야 하는 상황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2차 항암제를 맞기 시작했습니다. 2차 항암제는 얌전히 잠들어 있던 사랑니를 건드렸고, 매복 사랑니 발치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9번의 항암치료 끝에 야속하게도 너무 빠르게 내성마저 생겼습니다. 또다시 항암제를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공식적인 위암의 마지막 항암제인 3차 항암제 ‘이리노테칸(캠푸토)’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리노테칸’은 악명 높은 항암제라 불릴 만합니다. 1년 동안 맞은 항암제 중에 독성이 가장 강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자마자 부작용이 나타나서 물만 마셔도 구토를 하게 되는 항암제는 처음이었습니다. 저의 소중한 몸무게 1kg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했습니다.

 

▲ 유남경 작가는 떰브샷(엄지척)을 찍으면서 유쾌하게 항암을 시작하는 루틴이 있다고 말한다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1년 넘게 고통스런 항암치료를 하면서 큰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됐던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였습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날마다 항암일기를 썼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난 순간부터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기 시작한 것이 블로그에 기록을 하는 거였습니다. 그렇게 기록을 하면서 제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고통스런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암을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암밍아웃’을 하자 결심도 했습니다. 암밍아웃은 암에 걸린 사실을 주변에 알린다는 의미이며, 암과 커밍아웃을 합친 신조어입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응원도 받았습니다.‘위암 복막 전이, 4기 판정’을 블로그에 올리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뿐만 아니라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대학 동기들, 직장동료들까지 반가운 사람들의 따뜻한 응원과 위로도 이어졌습니다.

무엇보다 글을 쓰는 동안은 암이 주는 고통도 잊을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쓴 항암일기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올렸는데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브런치 북 <오늘도 암과 함께 동행>이란 제목으로 출간했습니다.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고 브런치북도 펴내면서 고통스런 암 투병도 조금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였으면 결코 견디기 힘들었을 고통의 시간을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응원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암 환우분들과 암 환우분들의 가족, 친구, 지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저 처음에는 혼자 기록하고자 했던 공간이 지금은 오히려 제게 힘을 주는 원동력의 공간이 되었습니다.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제게 주었던 응원과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꼭 되돌려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늘도 암과 함께 동행 중!

오늘도 저는 암과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4기 암 환자의 현실입니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서는 오래 살 수 없고, 재발과 전이에 대한 두려움을 늘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하지만 암에 걸렸다고 저의 삶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한 제 인생은 모두 저의 선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자’

‘긍정적인 생각과 마음가짐’

‘올바른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

이 세 가지는 암 진단을 받은 후부터 늘 마음속에 품고 지내는 문구입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되새기기도 합니다.

암으로부터 몸이 지배되어 있는데 정신까지 지배되면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몸도 마음도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압니다.그래서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의 힘에 의지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 대성공입니다. 마음을 다잡는 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할 때 기도를 하면 통증이 잦아드는 것도 같습니다. 매일 밤 잠자기 전에는 꼭 기도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를 꼭 합니다.암 진단을 받기 전에는 상상조차 못 한 일입니다. 신은 없다고 믿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종교를 가진 후부터 확실히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걸 느낍니다. 아프고 힘들 때 종교의 힘을 빌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금도 암성 통증은 종종 마음을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항암치료를 하고 난 후에는 며칠 동안 초주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몸이 좀 회복되면 다시 일어나 제 삶을 살아갑니다. 예쁘게 화장도 하고, 카페도 가고, 책도 읽고, 글도 씁니다. 운동도 매일 합니다.

지난겨울에는 빙상장에 가서 스케이트도 탔습니다. 넘어지면 항암치료를 못 받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소중한 일상의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너무 먼 미래를 내다보지 말고, 아프기 전의 모습에 묶여 있지도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채웁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의 일상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꾸미기 좋아하는 스물아홉 아가씨입니다. 마음만큼은 암 환자가 아닌, 웃음이 많고 긍정적인 이 시대의 평범한 청춘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 암 환자여도 오늘 저는 최고로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유남경 작가 kunkang1983@naver.com

출처:

http://www.ikunk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4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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