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는 두 번 두려움에 떤다. 처음 암 선고를 받을 때와 항암 치료를 앞두고서다. 특히 암 치료의 1차 코스로 인식돼 온 ‘항암 화학요법’은 정상 삶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독한 항암제 투여에 따른 탈모, 구토 등 큰 후유증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길게는 1주일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불편도 있다.
최근 이런 고착화된 항암 치료 과정에 변화가 일고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한 ‘바이오 마커’의 발굴과 표적 항암제의 진화가 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바이오 마커와 표적 항암제=바이오 마커는 질병의 진행을 예측할 수 있는 생체 지표를 말한다. 몸속에서 어떤 암이 자라고 있는지 알려주는 ‘표지자’인 셈. 유전자 검사를 통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표적 항암제는 특정 바이오 마커에 대해 강력한 항암 효과를 나타내는 약물이다. 환자의 바이오 마커와 궁합이 맞는 표적 항암제를 쓰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또 일반 항암제가 암세포 뿐 아니라 주변 정상세포까지 공격하는 것과 달리 표적 항암제는 암세포만 골라 파괴하기 때문에 탈모나 구토, 두통 같은 부작용이 거의 없다. 따라서 입원할 필요 없이 집에서 간단히 알약 형태로 먹거나 주사제의 경우 외래 진료를 통해 투여받으면 된다.
폐암(비소세포성) 치료제 ‘이레사’와 ‘EGFR 유전자 돌연변이’, 유방암·위암 치료제 ‘허셉틴’과 ‘HER2 유전자 과발현’ 등이 관련성이 확인된 대표적 표적 항암제와 바이오 마커들이다. 대장암과 위장관종양(GIST) 등도 바이오 마커가 확인된 암종이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조병철 교수는 “우리나라 폐암 환자의 30%, 특히 비흡연 폐암 환자의 50%에서 EGFR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되고 있으며 국내 유방암 환자의 30%, 위암 환자의 15∼30%에서 HER2 유전자의 증폭이 나타난다”면서 “암 종별 특정 바이오 마커의 발견 비율이 무시 못할 정도로 높은 만큼, 암 환자 유전자 정보에 의한 표적 항암제의 선택에 따라 암 투병 기간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 암 치료 코스에 변화=문제는 표적 항암제의 이런 효과와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암환자들은 1차 표준 치료로 일반 항암 화학요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병원이 규정된 암 치료 코스에서 표적 항암제를 2순위로 처방하고 있다. 표적 항암제는 화학요법이 신통치 않거나 재발한 경우 등 최악의 상태에야 쓸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레사와 허셉틴 등을 필두로 2차 치료제에서 1차 표준요법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레사는 지난 3월말 ‘EGFR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된 폐암 환자에게는 1차 표준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식품의약품안전청 승인을 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허셉틴도 ‘HER2 유전자가 과발현’된 전이성 위암 환자에게 역시 1차 치료제로 쓸 수 있게 됐다.
◇암 환자, 유전자 검사 확산돼야=바이오 마커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는 암 확진을 위한 조직검사 단계에서 받는 것이 환자에게 유리하다. 조직 검사를 위해 채취한 조직 일부를 사용해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조직검사 시기에 빠뜨리면 유전자 검사를 위해 조직을 따로 채취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본격적인 항암 치료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미리 확인하면 1차 치료 때부터 항암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의료계에선 암 환자의 유전자 검사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다. 암 치료 방법에 대한 환자들의 선택 기회가 제한되고 있는 이유다. 또 바이오 마커를 찾기 위한 유전자 검사 시스템이 갖춰진 곳은 대형 종합병원 정도로 국한돼 있다. 유전자 검사 대상과 과정에 대한 가이드라인 또한 체계화돼 있지 않다.
반면 미국은 폐암의 경우 ‘EGFR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가 필수화돼 있으며 일본은 폐암 환자 조직 검사 시 유전자 검사를 할 경우 정부가 비용을 지원해 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전자 검사뿐 아니라 표적 항암제를 1차 치료제로 사용할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자들로선 경제적 부담이 만만찮다. 조 교수는 “암 환자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맞춤 항암 치료’는 전 세계적 트렌드이지만 국내 환경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면서 “하지만 향후 5∼6년 내에 표준 치료법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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