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희망가]
30대에 자궁내막암 수술한 권나윤 씨가 사는 법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모두 기적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건강다이제스트 | 권나윤 작가】
2022년 7월 동네 산부인과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제공되는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검진 결과가 나오기로 한 날짜가 아닌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간호사가 “최대한 빨리 검사 결과를 들어야 할 것 같으니 내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오세요.”라고 했다.
그 후의 일은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뿌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자궁내막암이라고 했다.
억울했다. ‘왜 하필 내게?’
원망스러웠다. ‘겨우 서른다섯 살인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자궁내막암 수술을 했고, 방사선 치료도 했다.
그러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오늘 주어진 하루가 너무도 소중하다는 사실이다.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모두 기적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어쩌면 앞으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2년간의 투병 일지를 소개하는 이유다.
2022년 서른다섯이 되던 해 여름,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딸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의 재촉에 못 이겨 자궁경부암 검진을 받았던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왔다. 원래 이상이 없으면 일주일 후 문자로 안내가 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뜬금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어쩐지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최대한 빨리 검사 결과를 들어야 할 것 같으니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전화 너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다음 날 마주앉은 담당의사는 몇 장의 서류들을 펼쳐놓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지난번에 검사했던 자궁경부암 검사지고요, 정상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혹시 몰라 떼어봤던 용종 조직에서 자궁내막암이 나왔어요.”
자궁내막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암이었다. 그런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압도되어 체면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물론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암에 걸리는 게 아니니까. 그냥 교통사고처럼 벌어지는 일인 것을.
하지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하며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구나 자궁 관련 질환도 없었고 생리주기도 일정했다. 이미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한 경험도 있던 터라 믿을 수 없는 마음이 가장 컸다.
게다가 자궁내막암은 보통 폐경 이후의 여성 혹은 비만도가 높은 여성에게 많이 생긴다고 알려져 있는 암이었다. 나는 아직 서른 중반의 나이인데다 늘 저체중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안 됐다. 그저 원망스러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딸아이를 떠올리며 최대한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불쑥불쑥 두려운 마음이 앞섰지만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 했고,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무조건 이겨내겠노라 굳건하게 마음먹으며 치료를 시작했다.
수술 후 방사선 치료까지
동네 산부인과에서 안내해 준 암센터로 가서 초진을 보고, 많은 검사들을 진행했다. 자궁 관련 검사를 비롯해서 MRI, PET CT, 대장내시경, 위내시경 등 암 수술 전 보통 시행하는 검사들을 마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자궁적출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전 많은 검사를 통해서 예상 기수가 나오긴 하지만 수술 이후 이루어지는 조직검사를 통해 최종 기수를 결정한다고 하여 그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자궁내막 외에는 다른 전이가 없는 1기로 최종기수가 나왔고, 수술은 로봇 복강경으로 진행했다.
사실 수술 전의 기억은 영상처럼 이어지는데 수술 후의 기억은 사진처럼 조각조각 잘려 있어 이게 정말 있었던 일인지 가물가물하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저 통증뿐이다. 아프지만 시키는 대로 걸었고 밥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반 이상은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소변줄도 떼고 피 주머니도 떼고 나이답게 젊은 몸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빠르게 회복해서 수술 후 이틀 만에 제법 멀쩡한 모습으로 퇴원을 하게 되었다.
추가 치료로는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방사선치료는 치료 자체에 통증은 없었지만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그리고 급성 부작용으로 찾아오는 피로감이나 식욕부진, 오심 같은 증상들이 매일 같이 이어져 그저 치료가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여름에 시작한 치료는 가을이 되어서야 모두 끝이 났다.
암 이후에 달라진 것들
암 치료가 끝난 후 예전의 생활과 많이 달라졌다.
첫째, 먹는 것을 바꿨다.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무엇을 먹지 않느냐에 중점을 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육류를 안 먹는 채식을 하게 됐다. 인스턴트식품이나 가공식품, 과자, 아이스크림, 탄산음료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둘째, 운동도 시작했다.
하루 일과 중 시간을 정해서 운동을 꼭 하기 시작했다. 걷기운동부터 시작해 등산도 하고 수영도 하면서 체력을 다졌다. 특히 요즘에는 어싱 스팟을 찾아 맨발걷기도 열심히 하는 편이다.
셋째, 잠을 잘 자기 위해 노력했다.
암 수술을 하고 이것저것 공부도 하면서 잠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잠을 잘 자기 위해 낮 시간에 햇볕을 많이 쬐고, 밤이 되면 휴대폰 사용도 멈췄다.암을 통해 먹고, 자고,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알게 됐다. 이 세 가지를 잘하기 위해 노력을 더하니 자연스럽게 건강을 회복하며 무사히 2년이 지났다.
▲ 2년 전 서른다섯 살에 자궁내막암 수술을 한 권나윤 씨는 음식, 운동, 수면 습관을 바꿔 건강을 되찾았다.
2024년 11월, 더없이 행복한 이유
어느덧 암 수술을 한 지도 2년이 지났다. 이제는 암 수술을 했다는 사실도 잊을 만큼 평온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간다. 아니, 어쩌면 암 이전보다 건강해진 느낌도 든다.암 진단을 받았거나 수술을 한 암 환자들 대부분이 겪는 전이나 재발의 두려움이 몰려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아무 이상 없이 건강하다. 이것으로 족하다.’ 이렇게 주문을 건다.암 이전의 삶은 과거를 곱씹으면서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꿈꾸면서 현재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암 이후의 삶은 달라졌다. 비로소 알게 됐다. 지금 주어진 현재의 시간, 현재의 순간이 절대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순간이 모두 기적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게 됐다.
지금의 내게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그렇게 현재에 집중해서 살다 보니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부쩍 많아졌다. 작은 행복을 자주자주 느끼며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이 좋다.
지금의 내가 꿈꾸는 것은 하나다. 그저 무사히 할머니가 되는 것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한 해 한 해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라는 일은 없다. 심지어 계획도 없다. 예전에는 일주일 계획, 한 달 계획, 연간 계획까지 세우고 그걸 성취하는 데 몰두했던 사람이었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고 산다.
다만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매일매일 생각한다. 여유 시간이 생긴 오늘은 읽고 싶던 책을 몰아 읽을 것이고, 내일은 가족과 함께 한강에 가서 바람을 쐬고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원하는 대로 채우다 보면 인생 전체의 모습도 내가 꿈꾸던 모습이 될 것이다.한 가지 더 욕심을 내자면 이렇게 계속 글 쓰고 공부하면서 암 환자, 특히 젊은 여성 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품고 있다.
암 환자가 되기 전에 암 환자를 접할 때면 ‘참 안됐네. 불쌍하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암 환자가 된 후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족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남들이 불쌍하게 보는 게 너무 싫었다.그러던 어느 날 문득 ‘누군가에게는 내 이야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고, 곧바로 브런치스토리에 암 투병기를 연재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하나씩 글을 올리다 보니 그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는 걸 알게 됐다. 독자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위로를 받으면서 ‘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함께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래서 지금 암을 겪고 있거나 암 경험자로 살아가시는 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꽁꽁 숨기고 혼자 감내하기보다는 누군가와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게 가족이어도 좋고, 가까운 친구여도 좋고, 동료여도 좋고, 나처럼 글을 통해 만나는 모르는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분명 생각지도 못한 큰 위로와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사람들에게 응원이나 위로를 받지 못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바깥으로 꺼낸다는 자체가 스스로도 몰랐던 마음을 깨닫고 알게 되는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두려워 말고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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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윤 씨는 글을 쓰는 감성공간인 브런치스토리에 암 투병기를 연재하면서 작가로 등단해 <스물을 먹고 아홉을>을 출간하기도 했다. 매일 읽고 싶은 책을 몰아 읽고 브런치스토리에 올릴 글을 쓰면서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앞으로는 젊은 여성 암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은 꿈도 있다고 한다.
권나윤 작가 kunkang1983@naver.com
출처: 건강다이제스트
http://www.ikunk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4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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