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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암싸사의 인생이막님의 일본 간암 입자치료 투병일기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6. 6. 3. 12:15







암싸사의 인생이막님의 일본 간암 입자치료 투병일기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치료를 떠나왔습니다.
떠나오기전 많은 분들의 응원에..힘을 얻고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응원해 주신 일면식없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작은보답으로, 앞으로의 치료과정을 시간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지금 현재 또는..
앞으로 있을 환우분들께 저의 이 기록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5일(일) 탑승전 공항에서 바라면 풍경입니다.
제 마음을 아는지 비가 오네요.
사실, 출발전 친구에게 전화한통을 받고,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 애들이랑 조금씩 모았으니..차비라도 보태써어.."

여유있게 오는 형편이 아닌걸 아는친구가 모금운동을 해주었던 모양입니다.
큰돈이 아니라 미안하다고 했지만, 저한테는 천금만큼보다 더 소중한..
어쩌면 저의 목숨값입니다.


별로 잘해준것도 없는 ..

아니,술자리만 한두번했던 친구의 친구도 같이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주변의 고마움을 ..몸이 이지경이 되서야 알게 되었던 걸까..
어떻게든 살아서 가야하겠다는 ..오기가 생깁니다.

무거운 마음을 뒤로한채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리는 내내..
말없는 눈물이 흐릅니다.


" 난 도대체 어디로 가는걸까.."
" 앞으로 내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

앞으로 겪게될 미지의 일들과,
지나온 날들이 파노라처럼 지나갑니다.



도착후 갈증을 못이겨, 자판기의 캔커피를 하나 사들고, 사전에 알아본 공항버스정류장으로 가니..
사람들이 대기하고있는 버스에 한참올라탑니다..
그로부터 1시간남짓을 달려..시내로 이동합니다.


도착후, 저의 병원통역을 도와주실..어쩌면 저의 생명줄과도 같은분이 저를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서울에 있을때..저는 일면식없는 이분께 참으로 집요하고, 귀찮게 매달렸습니다.
이분은 의료인도, 병원소속도 아닌, 일반 교포분이었지만, 저의 간절한 마음에 응답을 해주셨고..
저를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분입니다.


또한, 저의 형편을 미리 이해해주시고..시내의 조금 외진곳에 아주 저렴하고, 소박한 비지니스 호텔을
예약해 두셨습니다.한국인의 정은 외국어느곳에서도 느낄수있다고 생각합니다.

호텔 체크인후, 호텔커피숍에 앉아 병원서류 작성을 했습니다.


한국병원에서도 이런 간단한 문답식의 서류작성은 있었던것 같은데..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이분 말과같이 거의 책한권은 되는듯합니다.
잘모르는것과 해당없는것에 대충이라는 답은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대충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듯합니다.
이렇게 서류를 꼼꼼히 작성한후, 다음날 약속시간을 정하고 저는 방으로 ..
통역하시는분 (이하 아줌마..- 한국인에게는 아줌마이상 친근한 단어가 없을듯합니다.)
은 집으로 가셨습니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잠시 침대에 누으니..
긴장이 풀렸는지..배가 고파오네요. 그러고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은듯합니다.
귀찮아서 그냥 씻고 잘까하다가..앞으로의 검사와 체력관리를 위해
편의점으로 달려가 ..눈물젖은 도시락을 먹으며, 잠시 앞으로의 비용계산을 해봅니다.
어떻게든 아껴야 합니다.


앞으로 치료비와 검사를 위해 얼마가 어떻게 들어갈지 모르고, 추가비용도 생각해야 합니다. 
나머지 일은 , 어떻게든 신용카드로 해결을 할 참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꼭..살아서 돌아가야한다는 다짐..다짐..다짐..을 수십, 수백번 해봅니다.


전편에 이어서 계속이어갑니다. 


편의상 수필체로 쓰겠습니다.아침이 되니, 

통역아줌마로 부터 밑에서 기다린다고 연락을 받았다.참으로 부지런한 한국아줌마다.

나는 서둘러 방을 나서, 아줌마를 맞이한다.

병원예약은 오후 1시30분이었고, 병원에는 오후1시 도착예정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낮선풍경..낮선하늘..가는동안,

 나는 아줌마에게 이것저것 분위기를 위해 간단한 것을 묻는다..


하지만, 내 머릿속엔 온통 치료가능성에 대한것밖에 없다. 

하기야 계속물어봐야 이 아줌마가 나의 결과에 대하여 무엇을 알것인가...

더이상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의미있는 한가지 내용을 알게되었다. 

일본에서는 암에 대하여, 

한국에서와 같이 그다지 위중한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절히 치료만 잘 받으면 낳는병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며, 

위험하거나, 죽을병따위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소심하고, 겁이많은나는..암판정을 받은이후로, 

단한번도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했었다.


조직검사결과를 듣고서야 힘들게 받아들였지만, 

그때 이후로 마치 눈에 무언가 어두운것이 한꺼플 씌여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전세상과 너무멀었고, 

바라보는 하늘도 예전하늘이 아니고, 

대하는 사람도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에 홀려있다고 생각도 되고, 

기나긴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면서도 끝었이 부정을 하고있었고, 

타협도 하고있었다. 


나는 이곳에 오기전까지는 밤에잘때 불을 끄지못하였다..

무서웠다. 8층건물의 5층에 방이 있었지만, 

높이의 개념도 없이 누군가가 자꾸 나를 노려보고, 

데려갈것만 같은 공포에 쌓여긴긴밤을 새우기 일수였다. 


몸무게는 급격히 줄어갔고, 먹는것이 없으니, 싸는것도 없었다.

이런저런생각을 하고있을때쯤..

아줌마가 길을 잘못들은것 같다고 한다. 


그곳은 시골의 어느 낮선길이었는데, 

우리의 시골길의 국도와 비슷해보였다. 

창문을 잠깐열어 바깥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심호흡을 해본다.

 "긴장되요잉~? 

아따 참..

긴장하지마시쇼~ 

여기까지 불러놓고 그냥 가라고 안한당께요~

"아줌마의 구수한 사투리가 정겹다. 


이 아줌마는 고향이 전라도 곡성이라고 했다. 

나는 곡성이 어딘지 모르지만, 

일본땅 낮선곳에서 들리는 사투리가 참으로 듣기좋고, 구수했다. 

"아따 이쪽으로 잘왔고마..

고속도로보다 공기가 참 조아부러"아줌마의 사투리를 듣는동안 

어느새 차는 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고, 

처음보는 병원관경에 다시한번 긴장이 되었다.


병원의 전경이다. 평일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이 한가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줌마가 분주히 원무과로 보이는곳에 접수를 하고, 

서류에 서명을 하고,
내가 필요한곳 여기저기에 뭘 적으라고 한다.


나의 인적사항이다. 
한자까막인 내가 잠시 주춤거리니, "그냥 한글로 적으쇼" 한다. 

그렇게 기다린후, 안내를 받고, 

상담실로 들어가니 일본인남자와 여자한분이 있었고, 

나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앉았다. 


그곳에서 대략 30분정도 대화를 하는데, 

나는 한마디도 하지못하고,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대략 나에게 들리는 소리는 "에~? " 아~?" 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억양뿐이었다. 


상담실에 나온다음에야 비로소 대화내용을 들을수가 있었는데, 

간단히 내용은 이랬다. 

얼마전에 한국인 암환자가 이곳에 치료를 위해 입원을 했다고 한다. 

이곳 병원의 시스템은 입원하고, 검사중간에 결재, 

치료중간정산, 퇴원시 나머지 정산. 

이런식이었던거 같은데(이것은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할걸로 생각된다.) 


처음 결재를 한후에 나머지 비용계산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퇴원할때까지 계산이 되지않은채 그냥 도망갔다는것이다. 

이미 치료는 다 받은후였다. 


황당했던 병원관계자들은 

앞으로 한국사람들의 치료를 거부하기로 하였으나, 

이 아줌마의 간곡한요청으로 나는 굉장히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는 것이다. 


아줌마가 병원측관계자를 통해 나를 친척이라 부탁을 했다한다. 

인맥은 여기에서도 통하는것 같다.물론, 

검사결과를 지켜봐야 치료방향이 나오겠지만, 

나의 계획에도 큰 차질이 있었다. 


치료가 가능하다고 해도, 

입원은 병원방침으로 절대로 불가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치료가 가능하다면 입원을 할 계획으로 이곳에 왔다. 

내가 들어놓은 해외보험으로 큰도움이 되기때문이며, 

한국에서 이걸 알아보기 위해 보험사로 동분서주 했었던 것이다. 


입원이 되지않는다면, 외부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며, 

교통비도 추가가 된다. 참으로 황당하고, 

그 한국사람이 원망스러웠다. 


본인도 살기위해 여기에 왔을것인데..

어떻게 병원에서 야반도주를 할수있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상황이지만..

나는 백번양보하여, 치료만 가능하다면, 

비용적인것이야..감수해야지 어쩌겠는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본격적으로 검사가 시작되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이방저방을 다니면서 체혈을 하고, 

혈압을재고, 몸무게를 재고..

한국과 다르지않은 검사였다. 


다른것이 있다면, 

의사와 간호사가 동행하여, 

방을 옮기면서 검사를 한다.이른바, 원스탑 서비스인것이다. 


내가 각종검사를 하는동안 나와 동행한, 의사와 간호사는 바뀌지 않았다. 

참으로 편안했다. 가만생각하니, 

한국에서는 뭘 표시하고,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설명을 해주면,

 내가 어리버리 찾아다녔던것 같다. 


입원을 해서야, 누군가가 나를 데리고 다녔지, 

계속 어리버리 했던것 같다.

그러던중 낮익은 방에 오게되었다. 

한국에서도 아주 익숙한 CT 촬영실이었다. 

이검사가 나는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있다. 이것으로 어쩌면 생과사를 가를수도 있고, 

이것으로 앞으로의 치료방향도 정한다는것을 잘알고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CT촬영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데, 

아줌마가 무슨 주사약을 넣는다는데, 

그 약에 대하여 통역을 잘 하지못한다.

나는 순간 조영제일꺼라고 말을 하니, 

그제서야 아줌마가 이해했다고 한다. 


아줌마는 가끔 의료용어가 나오면, 

잘 이해를 하지못하는것 같다. 

그건 일반인이 당연한 것이다. 

아줌마는 이해하지 못한것에 대하여 최대한 자세히 풀어서 설명을 해줄려고 노력했고, 

나는 이미 한국병원에서 비슷한경험을 유추해서 "이거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설명이 끝나고 촬영기에 누워있는데, 

환한미소의 간호사가 하얀치아를 보이며, 뿌듯한듯 뭔가를 열심히 아줌마에게 설명한다. 

한국에서온 나를 위하여 뭔가 특별한것? 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것은 촬영중 숨을 쉬는 타이밍을 알려주는 멘트인데, 

한국어로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다. 


참으로 친절한 일본인이다. 

단어 세네게만 나에게 알려줘도 되는데..

뭘 그렇게까지..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고 .

낮익은 기계음이 들린다. 

한국에서도 이소리는 많이 들었다.


"윙~ 슥슥슥~"기계가 돌아가고 촬영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상~ 숨을, 쉬으세요~" (아...숨을 쉬라고..? 아까 그 간호사 목소리같았다..

급하게 녹음하느라 욕봤네..)"숨을 참으시세요~" 

(아...숨을 참으라는 말이군..비슷하긴 하네..)그때 였다..

"가마니 게세~이요"헉..나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게세...라니..큭큭큭.. 

그 이빨을 하얗게 들어낸 환한간호사의 얼굴과 목소리가 오버랩이 되면서

 터진웃음은 멈출수가 없었다.

윽..왜 이순간에 나에게 이련시련을...

웃음을 참느라..복부쪽이 움찔움찔거린다."편이 게이세요~"흑...또 터졌다. 


너무 괴로웠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왜 터진웃음은 멈추지 않는가..

그렇게 한세트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었다. 

"이상~ 숨을, 쉬으세요~"크...

"가마니 게세~이요" 아...정말 죽을것 같았다..

어찌해야 한단말인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왜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가..


암판정 이후로 처음으로 웃어본거 같은데..

그게 왜 하필 여기서..나는 참으려고 애를 썼고, 

계속해서, 복부는 실룩실룩 거린다..

그때..천천히 기계가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밖에서 하얀카운을 입은사람둘이 뛰어 들어온다.


"이상~ 다이죠부 데쓰까? ( 괜찮습니까?)

나는 통역아줌마를 찾아달라고 손짓을 했다..

그러나,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어쩔수 없었다..." 다이죠부 데쓰.." (괜찮습니다.)


다시 기계음이 들렸고..

나는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내가 군대에서나 회사에서 중요한회의를 할때 쓰던 방식으로 

웃음이 멈추지 않거나, 잡생각이 들면..속으로 애국가를 부르곤 했다.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4절을 시작할때쯤..천천히 기계음이 멈추는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촬영이 끝났다..


전편에 이어서 계속씁니다.


첫날검사를 다 마치고,

대기중에 나는 아줌마에게 오늘결과로 치료가능여부를 판단하냐고
물어봐달라고 했다.

우습게 끝나버린 CT촬영이 영..마음에 걸렸다.
아줌마는 검사실로 다녀오더니,

내일 다시 정밀검사와 MRI 를 촬영하여,

그것을 모두 검토하여 결정한다고 한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아줌마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렸다.

내일은 한국어멘트 좀 하지말아달라고..
그 부탁을 받은 주인공의 간호사는 뭔가 섭섭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지만,

나는 그 눈빛을 외면해 버렸다..
과한 친절이 화를 부른것이라 생각하고..


다음날 검사일정에 대하여 설명을 다 마치고 이제 가도될것 같은데 아줌마는 잠시 기다려보라며
여기저기 뭘 알아보러 다닌다.나의 근처 숙식을 알아보는 눈치다.
병원은 시골에 위치해있다.

일본의 입자선 병원은 거의모두 그러하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일치감치
시내에서 방을잡고, 들어오는 버스라도 있으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외래실의 어느 간호사가 브로셔 하나를 가져다 준다.
일본사람들은 뭘 하나를 설명해도, 꼭 앞에와서 무릅을 꿇고 설명을 한다.
일본인이라그런지 참 보기좋은 광경이다.


나의 딱한사정을 아는 아줌마는 포기하지않고,

계속하여 내가 검사받는 동안에도  나의 입원을 부탁하였던것같다.
간호사가 가져다준 브로셔는 병원에서 약 2.5키로 정도 떨어진곳의 어느 연수원이었다.
그곳에 숙박이 가능할수도 있다는 정보를 간호사한테 얻어낸 것이다.


역시, 불굴의 의지 대한민국 아줌마다.
브로셔 내용대로 라면 1박에 3천5백엔 정도의 매우 저렴한 숙박이다.(평일기준)
발길이 급해지고, 도착한 그곳은 생각외로 훌륭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대기업 또는 공공기관의 연수원 같은 곳인데, 연수일정이 없을때에는 일반이에게도 방을
제공하는듯 했다.
" 아...역시 두드리면 열리는구나.."
호텔이아닌, 그곳 연수원 사무실에서 그렇게 방을잡고나서야 아줌마와 나는 한숨을 돌렸다.


뜻하지 않은 나의 숙소.


다음날 아침일찍 다시 돌아온 아줌마손에는 김치와 약간의 밑반찬,
밥뭉치등 여러가지 먹을것과 필요한 용품들이 들려있었다.
아..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그것은 나 라는 인간에 대한 호의라기 보다는 진한 한국인의 정으로 밖에 설명할수 없다.
" 어떻게든 살아서..고마움을 갚아 나가자.."

다시 도착한병원. 여전히 한가하다.


아줌마가 접수처에서 일을 보는사이.. 나는 병원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무슨 동남아휴양지에 온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저기 잘 꾸며진 정원에, 멀리서 보기만해도 느껴지는 피톤치드향..
산책길..잔디밭..
이런곳에 있으면 암이 아닌, 어떤병도 낫을것 같았지만..한편으로는 다시 씁쓸하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 입원을 할수가 없다니..
암환자의 십계명중에 첫구절이 '용서하라' 였나.. 그래..용서하자..

오늘의 주된 검사는 MRI 촬영이었다.


환자복을 다시 갈아입고, 벌써부터 비장한 각오로 나는 마치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애국가를 부르며, MRI 실로 입장하고 있었다.
검사에 대하여 설명을 하는데, 오늘은 한국어가 없는관계로 검사자와 싸인을 맞쳐보기로 했다.
" 스타토~" 하면 숨을 크게 쉬는걸로..
"피니쉬~" 하면 숨을 멈추는 걸로..
"릴락스~" 하면 편하게 호흡하는걸로..
아주 비장한 각오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일본어 발음이 조금 우슷기는 했어도, 호흡은 아주 정확하게 하였다.
이제 모든결과를 끝내고, 의사와의 최종 면담이 남았다.
나는 한국에서 미리준비해간 김을 의사에게 건네주었다. 받을지 안받을지는 몰라도..
그냥 인사를 하쟈마자 밀어주었다.


의외로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 아리가또 고자이 마쓰" 하며, 화답을 한다.
아마, 이런문화가 낮설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운것 같았다.
상담은 이곳의 결과가 나오기전이라..


주로 내가 한국에서 보낸 자료에 의하여 주고받은 대화인데,

문제는 종양의 싸이즈 였다.
이 병원의 컷트라인은 15cm 이나, 나는 이미 판정을 받은후에 14cm 였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이며,
마지막 검사가 4월25일 이었으니,

여기 오기까지의 시간을 계산하면 1cm 이상 커져있으면 나는 치료가
안되는 상황이었다.

의사도 그점에 대하여 매우 심각한 고민을 하고있었으며,

내가 걱정하는 것도 이미 알고있었다.


한국에서는 5분도 내가 할말을 못하지만,여기서는 내가 하고싶었던 말을 다 들어주었다.
궁금했던 모든것을 적어가서 후련하게 다 물어보았다.
의사는 내가 이해할수 있게 설명을 해주었고,

내가 혹시, 알아듣지 못한것 같으면..내가 이해할때까지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궁금했던 모든것을 친구와 대화하듯 풀어나갔고, 더이상 궁금한게 없을때 쯤
자리에서 일어날수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결과만이 남았다.


결과는 일주일 뒤에 나온다고 한다.

원래의 예정은 2~3일 후였으나, 아마도
내가 한국에서 준비해간 조직검사와 추가 자료의 검토가 필요했던것 같다.
남은 일주일 동안 나는 모든것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을것같다..
내 생애 가장 초조하고 ,

긴장된 순간이지만..반대로 생각하면 벼랑끝에서 희망을 기다리는 순간이 되리라..
기다리는 아침은 더디온다고 했던가.. 인고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참 고단한 인생을 살아왔다.
항상어딘가 에게 쫒겨서 살아왔으며, 뒤쳐진다는 강박강념이 있었다. 
어머님의 기력이 쇠할수록 부양에 대한 책임감은 커졌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여기까지 온것같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야할날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있었고, 무기력한 나를 발견하고는 좌절도 많이했었다.
사람이 극한상황에 처하면 앞으로의 날들보다, 지난시간이 스쳐간다고 했던가..
백세시대에 반백년도 안산놈이 자꾸 지난세월이 사무쳐 진다..


그러다가 또..잊혀진다..
이런저런 상념의시간들로 전쟁을 하다가..또 잠이 들어버린다,

얼마나 잤을까..
밖에서 낮익은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더니..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버린 나는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다.
순간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어머니가 밖에 서계셨고, 옆에 누나도 와있었다..

" 아이고 이놈아~ 니가 와 여기이러고 있노..왜 말 안했노..이놈아.."

나는 너무놀라 어머니를 바라보며, 들켜버린 이상황에 모든걸 포기하고..
어머니를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우리 어머니가 굉장히 젊어져있었다. 최근의 앙상한 모습은 어디가고..
약 20여년전.. 강원도의 훈련소에 누나랑 같이 면회를 왔던 그모습이었다.
이제는 필요없게된  립스틱도 빨갛게 바르고 계셨고, 손바닥힘도 무지셌다.
나는 어머님에게 등짝을 맞으면서도..내 간이 걱정되었다..


" 아..~ 엄마 내간~...간 아프다고..쫌.." 

그간 서러뭄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엄마에게 막내티를 내면서 앙탈을 부리고 있었다..

다시 잠에서 깬 나는 꿈이 너무 생생해..한동안 어리둥절 앉아 있었다.
한국에서는..이럴때 담배 한모금을 피고있었을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담배가 너무피고싶다..하지만,
담배가 없다.
담배가 없다.
담배가 없다.


이렇게 검사결과가 나오는 ..병원가는 날이 밝고..

나는 일찌감치 나가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면서 나는 새벽내내 생각했던 담배생각이 나서, 어느 일본인에게 담배를 하나 빌려서
피워물었다.

" 어떠한 결과가 있어도..나는 안죽는다..안죽는다..안죽는다.."

저~ 앞에서 아줌마가 탄 빨간색 꼬마자동차 붕붕이 오는모습이 보인다.,.
병원으로 들어선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였다.


접수실에서 돌아온 아줌마를 보고,

간호사는 우리가  있는곳으로 와서 또 무릅을 꿇고 뭐라고 씨부려 싼다..
모든 육감이 예민한 나는 간호사의 말중에" 리허설" 이라는 단어를 캐치해낸다. 
리허설이라...이것은 치료를 하기전에 하는 단계같은데..
뭔가 예감이 좋다..


간호사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던 나는 아줌마한테..조용히 물었다.
"리허설이면..치료를...하겠다는..말 아니에요...??"
아줌마도 아차 싶었는지..간호에게 뭔가를 물어보고는..
다시 나에게 전한다.
의사선생님을 먼저 봐야하는데..상담이 길어져서..리어설부터 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아.....90% 좋은 예감이다.."
간호사를 따라가면서..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마치 구름위를 날아가는것 같다..



 
입자선방의 규모는 정말 대단했다. CT나 MRI 실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무슨 우주선의 내부를 직접들어와있는 기분이다.
거기서 또 한명의 일본인이 다시 무릅을 꿇고 설명을 한다.
이 기계가 원통으로 돌면서..

나의 암덩어리를 괴사시키는 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고,
조사(탄소입자가 나와 암을괴사시키는것)가 되는 구멍에 손을 가져다 대보라고 한다.
여기서 나오니깐 잘 누워있으라는 소리같았다..


나는 환자복에서 다시 웃옷을 벗고,

실제 리허설에 들어갔다. 몹시 긴장되고,흥분되었다.
조사는 리허설이었지만, 우주왕복선에는 나만남기고 다 밖으로 나가버린다.
나는 엎어져서 누워있으면서..원통이 돌아가는걸 감지하며 느끼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아줌마가 소리쳤다.


" 치료하는거 맞는다고 하는구마잉~ 호호호~ 내가 뭐라요. 된다 안했쏘~ 호호호~"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고..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지난밤 꿈에 나타난 어머니 생각이나서..다시한번 컥컥 거렸다.
밖에서 모니터로 다 보고있다고 했는데..챙피해도 울음이 멈쳐지질 않는다..
그때 또 기계가 멈추면서.. 의사둘이 또 뛰어들어온다..
의사는 무슨일이냐 물었고, 나는 감격스러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줌마가 그 말을 전달하니..
의사가..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래 다 이해해...힘들었구나..." 하는것 같았다..
리허설을 마치고, 나는 의사와 마주 앉았다.

이런 순간은 한국에서 참 익숙한 장면이다. 마치 사형선고를 할것만 같은..
그런데, 의외의 말이 들려온다..


암 싸이즈가 10cm 로 줄어있다는 거다.
허허..이럴수가 있나..나는 다시한번 물어보았다. 나는 분명히 마지막 검사가 14cm 였고,
보낸자료로 너희도 그랬지 않냐고..
그런데, 의사는..뭐 작아질수도 있지.. 뭘 그리 놀라나..하는 반응으로
"에~ 또~....가끔이런일도 있어.."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로, 계속 의문을 보내니..뒤에 있는 다른의사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뭐 그럴수도 있다고 한다.
아..기분 잡쳤다. 보는각도가 아닌 그냥 작아진대로 가만이 있을껄..
어쨌든 , 지금 싸이즈가 중요한가..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리고는 앞으로 치료계획에 대하여 쭉 설명을 하는데, 내가 알기쉽게 그림을그리며 설명을 해준다.


먼저 사람을 그리고, 간을 그리고, 그리고 밑에 대장을 그리고, 소장..이쪽은 심장..
혹시나, 있을 부작용에 대하여도 꼼꼼히 설명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또...우리의 경험상 이런경우는 85% 완치.........데쓰" 라고..정확히 한문을 써보인다..
85% 완치..
아줌마한테 물었다. 저한문 완치 맞죠?
아줌마도 활짝 웃으며..그라재 저거 완치재~ 한다..

85%완치데쓰..내가 속삭이듯 한말에..
그방에있던  나도 웃고, 의사도 웃고, 아줌마도 웃었고, 간호사도 웃었다.


주치의가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85% 완치도 직접써서 보여준다.


정말 지옥에서 나온기분이 이런기분일까..
나는 한동안 병원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국에서는 어렵다고 했었다..


수술도 안되고, 이리저리 해봐도 ..쉽지않다는 말과,힘들다는 말뿐이었고, 임상얘기도 들었던 나였다.
기적을 믿지는 않았지만, 기적이 있다면 바로 이런것인가..
한국에서 떠나오기전..친구가 공항에서 한말이 기억난다.


" 나한테 만약에 기적이라는게 있다면..너한테 주고싶다 이 쉐끼야.."

이제 큰산을 하나 넘었다.
살수있다는 희망이 있구나..
암이라는 한문에 보면 산위에 입구가 세개가 있는 이유를 이제 알게되었다.
내가 선택한 이길이 , 나의문이었다는것을...


추억속에 님께 간곡히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제 제가 올린 #3 번의 글의 사진용량 초과로 물의를 일이킨것 같은 생각이 들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카페의 규칙을 잘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저는 카페규칙보다 필요하신분들의 정보공유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필요하신 환우님들이 있을꺼라고 생각되어, 병원구석구석의 모습들, 치료과정의 모습들
병원관계자의 모습, 심지어는 제가 머물고 있는 이곳의 모습까지 모든게 정보라고 생각하여 다 촬영을
해오고 있고, 치료를 마치고 돌아갈때 까지 계속 담아두고, 올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떠나오기 전에 정보가 너무없어, 이곳 일본입자선 치료의 정보에 항상 목말라 있었때문에 ..
자료를 취합하고, 공부하여 여기에 오게되기까지
말하지 못한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걸어온길로 필요하신분들은 반복되는 고생을 하지말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처음부터 수기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생한 모습을 보여드리기에 사진2장의 규정은 너무 가혹합니다.
물론, 갤러리 사진방이 있다는것도 오늘 알게되었지만, 저는 카페를 드나들면서 한가하게 사진이나 보나..싶어
그방에 들어간일이 한번도 없습니다.어떠한 이유로 2장의 규정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시한번 운영진분들과
협의를 하여,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이미,한국병원의 권위적인 의사에 치이고, 치료에 허탈해 지친 우리환우들과 가족들이 많습니다.
어떤누구도 생명은 고귀하고, 또, 치료의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진제한의 이유가 상업적인 목적의제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아무것도 팔것도 없고, 이 수기를 쓰지않아도 손해볼것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제가 걸어온 길을 필요하신 분께 공유하고 싶을뿐입니다.
추억속에 님의 투병기도 잘보고 감동받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부탁으로 투병하시는데
스트레스로 작용하지나 않을까..걱정도 됩니다. 저또한 당장 수많은 사진중에 어떠한 사진이 가장적절할까..
고르는게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이 자료는 제가 놀러와서 찍은사진들이 아닙니다.
흔히 한국병원에서 의사들은 잃을것보다 얻을것이 조금이라도  더 많으면 수술이나, 방사선, 항함중에 선택한다고 하죠.
다른장기가 죽어가는걸 알면서도요..


정보의 공유보다 카페의 규정이 앞서는지는 모르지만, 카페를 좀더 유연하게 운영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리한 요구였으면, 제가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의도한 대로 저의 정보가 제대로 전달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추후 이어서 게시물을 올리는것은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편에 이어서 계속씁니다.

치료는 다음날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제는 당당하게 병원에 치료를 받는 환자의 자격이 된것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라인으로 알리니, 뛸뜻이 기뻐한다.


내가 한국에있을때..

의심->재검사->90%확정적->입원,재검사,조직검사->확진의 과정을 잘알고 있는 친구다.

이친구에게 리허설을 마치고 급한대로 간단하게 적어서 메세지를 보냈다.
" 알라,하나님,부처님이여..."
이라는 메세지에 " 살았구나...고생했다." 라는 답변이 왔다. 우리는 그렇게도 통한다.


치료는 매일 20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치료전 상담시에는 결과에 따라서 8회~12회 라고 하였으나,
종양 싸이즈가 큰관계로 최대횟수인 20회로 결정이 난것같다. 아마도,
소회기관에 인접해있는 부분의 종양으로
서서히..조금씩, 종양을 제거해야 된다고 하는데, 치료만 된다면이야..
몇번이면 어떠랴..빨리 받고 돌아갈 이유도 현재로서는 별로없다.


또한, 치료비용도 횟수와 관계없으니, 천천히, 완벽히 조사주길 내가 바라는 바이다..

오늘의 모든 병원일정과, 리허설,주치의설명을 모두 마치고, 아줌마는 내 손을 이끌고,
내일부터 내가와서 해야할일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아줌마는 내일부터 오지않는다.
일주일에 한번씩 치료결과를 듣는 하루만 올꺼라고 한다. 아줌마는 농담으로 자기가 비싼사람이라
한번보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 왠만하면 보지말자고 했었다.


아줌마의 경험상 치료시에는 통역이 불필요한걸 알고있었고, 통역비를 받자고 무조건 시간때우는 사람도
아니었다. 물론, 내 주머니 사정도 고려를 해준걸 나는 잘 알고있다.

아줌마는 나는 데리고 다니며, 내가 혼자 왔을때 접수하는 방법부터 잘 알려주었다.


" 자~ 저기 보이지요잉~ 저기가 접수하는곳이여~,

저 아가씨 보이죠잉? 저, 머리묶은 아가씨..
저 아가씨 한테, 내가 말해놨응께, 저 아가씨한테 요카드를 내시요..
그라고, 요 차트를 받으면.. 이리와보쇼.."
하면서, 내가 가야할 동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을 해준다.


마치, 초등학교입학식에  따라간 학부모가 애를 데리고 다니듯이..
또한, 가는곳마다, 저사람이 오면 일본말을모르니,서류받고, 잘 안내해주라며,부탁을 해놓았다.
그리고는, 꼭 저 간호사에게 서류를 주라며, 얼굴을 익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마지막 입자선방에 가기까지 모든 예행연습 마치고, 아줌마는 나를 숙소에 내려주고, 다시 홀현히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빨간 꼬마자동차붕붕을 타고..

나는 아줌마와 있을때는 잠시도 아줌마에게 눈을 떼지 못하였다.


마치..젖먹이 아이가, 엎어져서 고개만 들고 엄마의 동선에 따라..머리가 돌아가듯이..
그도 그럴것이 내가 믿고 의지할사람은 이아줌마 밖에 없지 않는가..
친구와 통화중 이런말을 하였더니, 내친구는 이쁜사랑하라며..농담을 한다..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이미친놈아..? 내 생명의 은인한테..?"
"원래 그렇게 시작하는거야 임마.."
오랫만에 친구와 나는 컥컥 웃었다.

그런 아줌마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본다.


내가 같이 있을때 돈있으면 차좀 바까주고 싶다고 한적이 있다.
아줌마는 됐다고 하며, 이차가 좋다고 했다.
사실..바까줄 돈도 없었다.

이제 나혼자 남았다.


방에 들어와 가만히 커튼을 열어보니, 이제야 창문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멋지고, 자연속에 둘어쌓인 모습이다.
준비해간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와봤다.
내가 있는 숙소너머로, 건물들이 많이 보이는데, 무슨건물인지 굉장히 궁금했다.
근데, 또 비가 온다..여기는 비가 참 많이온다.
내일 가보기로 하고, 다시 방안에 들어온다.


이제 방안에 혼자 있어도 무섭지않다. 누가 나를 더이상 째려보는일은 없으며, 데려갈것같지도 않다..
오히려, 심심해서 누가좀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아줌마가 가져다준 김치와 밑반찬에 밥을 먹는다.

다음날아침, 나는 늦을새라..
일찌감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선다.


치료를 받는날은 금식을 하라고 한다. 금식과, 금수의 방법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11시치료니 (5시까지 식사완료, 8시까지 수분섭치완료) 이런식으로 몇시까지 먹어도 된다는
정확한시간을 내 일정표에 적어놨다.


한국은 정확한 시간보다는 전날 저녁식사후 금식, 자기전부터 물금지..이랬던것같다.
이러면, 나는 한국에서 최대한 저녁늦게먹고, 최대한 늦게 자고 물어야징~ 이랬던거 같다..
숙소와 병원은 약 2.5km, 도보 약 40분,차로 약 3분 정도가 나온다.
구글맵을 켜고 가니, 내 동선이 그대로 그려진다. 참으로 좋은세상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안되는게 없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라디오를 틀고, 여성시대를 들으면서 걸었다.
참으로 정겨운 시골길이다. 내가 이런공기좋은 시골길을 언제 걸어봤던가..


병원으로 가는길..


맞다.걸어봤었다..

약..35년전쯤..국민학교 다닐때 이런길을 걸어다녔다.
걸어가면서,국민학교 입학때의 일이 자꾸 생각이난다.


그때 우리동네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약 이정도 되었던것 같다.
학교에 가면, 이동네,저동네서 모인 아이들로 운동장은 가득찼고, 내가 속한 2반에도
약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한줄로 길게 서있었다. 
그 줄은 일렬로 길게 서있었는데..
'앞으로나란히' 를 시키는 얼굴도 안보이는 맨앞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엄마는 뒤에서 나에게 " 야 이놈아~ 더 오른쪽~왼쪽~" 줄을 맞추라고 하셨고, 
반에서 제일 키가큰 나는 제일 뒤에서서 애들이 자꾸 움직여서 그걸 맞추기가 참 힘들었던 같다.


'공같이 둥근 머리는 하나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은 둘이요~"
이노래가 떠올라 부르면서 간다..

한참을 걷다가..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버스정류장이 보였고, 그 정류장 의자위에 꽃을 하나 꺾어 올려놓았다.
다시 올때, 누가 이꽃을 치웠을까..하는 호기심이었다. 사람이 한명도 없는데..
누군가 여기서 버스를 탈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여성시대 2부가 거의 끝나갈무렵 나는 병원에 다다랐고, 어제 아줌마가 시킨대로
아주 잘하고 있었다.


리허설때 아줌마가 찍은 입자선방이다.


우주선같이 생긴 입자선 방까지 무사히 입성을 하였고,
나는 어제 리허설대로 자세를 취하고 엎드렸다.
알아서 자세를 잡아줄테니, 가만히 있으라고 했기에..누군가 옆구리를 들어 옮기고, 다리를 들고
왼쪽, 오른쪽으로 자세를 잡아주는동안 나는 쥐죽은 듯이 있었다.


모두 방에서 나간듯했고..잠시후 기계가 돌아가고, 원통으로 생긴 우주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방에서의 사용자와 나와의 싸인은 " 스타토~" 와 "피니쉬~" 두가지 뿐이다.
스타토는 - 이제 조사하니, 그렇게 알아라..
피니쉬는 - 이제 끝났으니, 그렇게 알아라.. 였다. 내가 할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엎드려서 노래를 들으면서
가만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시작과 끝이 한세트이고, 이걸 두번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노래소리가 낮이 익다..나도 모르게 속으로 따라부르며..이게 무슨노래였지..?? 흠...
하다보니, "내게 무슨 마음의병 있는것 처럼~" 구창모의 희나리였다.

이걸 일본가수가 부르는 것이다..

" 아 제발좀 한국노래 필요없으니깐 니네 노래 틀으라고..."
이 희나리를 일본사람이 부르는것도 쫌 웃겼다.. CT촬영의 트라우마다..


잠시후 불이 꺼지고, "이상~ 스타토" 소리가 들여왔고, 나는 긴장을 안할수가 없었다..
우잉~ 칙칙칙~ 나지막한 기계소리가 들리고..
언제 끝나지...하는데, "피쉬니~" 한다..한번이 끝난것이다.


참으로 희안했다.

뭘 어떻게 한건지..뭐가 왔다간건지도 모르겠다.
불과 1분도 안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번더 마치고, 나는 우주선에서 나왔다.
총 소요시간은 20분 정도였다.


옷을 다시 갈아입는데..아차..싶은생각이 든다..
이방에서 나가는 방법을 연습하지 않은것이다..
그냥 " 아리가또.." 하면서 가면되나?
아닌데.. 내 차트와 서류, 카드를 받아야 되는데..이거 어디서 받으면 되지.."
일단 빨리입고 나가보자..


어리버리 안할려고 했는데, 어리버리 보였나보다..
쩌기 멀리서 간호사가 뛰어와서는 뭐라고 한다..
따라오라는 소리다. 그럼그렇치..아줌마가 부탁해놨구나..
그런데, 따라간 간호사가 의외로 뭘 보여준다.
간호사가 나와 말이 안통하는걸 아는지 , 컴퓨터로 뭘 보여주는데 번역기를 돌린것 같다.


번역기에 한국어가 없는지..
일본어->영어 로 번역이 되어있었고, 나는 그걸보고
순간 당황했다. TAPE 를 위해서 어디로 가야한다는 내용같은데, 영어번역이 잘 된것같지않다.
(나는 영어를 전공해서 아주 잘안다.)
TAPE 면..색전술이다.


" 와따시가..난 데쓰까? (말도안되는 일본어다.왜 내가 색전술을 해야되?? 왜??)
" 에~또..니 간쪽이 문제가 있어서 그런거야~" (나의 추측)
나는 머리를 잡아뜯으며, 괴로워 했다..
사실, 리허설을 끝내고, 의사와 면담을 할때..극히 일부의 환자에서 입자치료가 불가하거나,
적응이 안되면,색전술을 겸할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를들어 20분이상 엎드려서 있지 못하는경우나,
심장이나, 다른 기능의 문제가 있거나...
나한테는 다 해당이 없어서 무시했는데..왜 내가 색전술을 해야한단 말인가..

나는 한국에서 입원검사를 하는동안 색전술의 휴유증을 잘 알고있다.


색전술후 밤새 통증을 받고계셨던 어르신..
아침부터 걷는게 힘들어, 화장실을 부축하는 모습등..
그 휴유증을 지켜보는 사람이 사실 더 괴로웠던 것이다.
"조또 마때구다사이.."(기다려주세요) 나는 아줌마한테 전화를 했다.


그러나..헉..아줌마가 전화를 안받았다. 이렇게 급한상황에..왜 ..
전화를 끊고,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는데, 아줌마한테 바로 전화가 걸려온다.
" 아 저기..나한테..새..색전술을 하러 가쟈는데..이거 어떻게 된건지 좀 물어봐주세요 흑흑..ㅠㅠ"
그러고는 간호사를 바꺼줬다..


"에~또..얘가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지 모르겠다..도대체..?" (나의추측)
간호사가 나한테 다시 전화를 바꿔준다.

"아따.. 테이프가 흐물거려서 바꾼다고 안하요.. 뭔 쉑정술이여..(아줌마는 색전술이 뭔지 모른다.)
죽이러 가는거 아닝게 얼렁 따라가쇼이.."
하고 끊어버린다.


허걱...내용을 정리하면 이랬다.

입자선치료방에서  내 옆구리의 테이프가 늘어져서..
이걸 갈아야 한다는걸, 밖에 통보했고..나는 테이프를 갈아붙여야 했던것이다.


기다렸던 밖의 간호사는  나한테 영어로 번역을 해서 알려준건데,

미친놈이 갑자기 머리를 집어뜯어며 괴로워 했던것이다.
한국사람들은 테이프를 무서워 한다고 생각했을것 같다....
나는 당황해서 TAPE 를 TACE 로 본것이다.

화학색전술 - TACE
테이프 - TAPE

나의 짧은지식과 무식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부터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댕기며,
암환자의 치료에 대하여 너무많이 찾고,뒤지고, 습득했다. 다 담지도 못하면서..
나는.머쓱거리며..간호사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서..테이프를 갈았다..


"다이죠부 데쓰까? (괜찮습니까? 하나도 안아프쟈네..)
"하이..다이죠부데쓰..."(네..괜찮습니다)

이렇게,첫날 일정을 마치고, 나는 캔커피를 하나 뽑아 밖에서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이것도 살만하니, 쪽팔린거다..
웃자..웃어..

돌아가는 발걸음이 참으로 가볍다.


오는길에, 내가 정류장에 올려놓았던 꽃을 다시 발견하였다..
내가 올려놓은 그대로 있었다.

' 아...나 혼자왔다, 혼자가는 길이구나...'

("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의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댓글로 이노래를 다시 듣게해 주신분께 감사합니다.
사실 이노래 전인권때부터 좋아했어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숙소로 나는 다시 혼자걸어간다..
바쁜것도 없다.


배가고파서 맛있는걸좀 먹고싶다..
근데, 가봐야 맛있는건 없다.
짜장면이 먹고싶다..



-5번째 치료후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오늘은 치료중 일주일에 한번있는 의사와 면담을 하는 날이다.


나는 아침부터 꽃단장을 했다. 꽃단장이라봐야, 면도좀 더 깔끔히하고,

구석구석 샤워좀 잘하고..이정도다.
옷도 한국에서 가져온 3~4벌이 전부지만, 최대한 잘 개켜서 벗어놓고, 그중 젤 깔끔한걸 입는다.
부지런한 아줌마는 오늘도 일치감치 와있다.


일주일만에 보는 아줌마는 참으로 반갑다.
그간안부를 물으며, 병원으로 향한다.
매일 걸어다니던 길을 차로가니, 참으로 편하다.


병원으로 가는 이길이..
처음 몇일은 공기좋고, 정겨운 시골길이라 걷는것도 힐링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다녔지만,
조금씩 감성도 매말라고 가고..이른 무더위 날씨에 조금씩 힘들어진다.
차로 가다보니, 조그만 언덕길옆으로 이어폰을 끼고 걸어가는 내모습이 보인다.
저 사람좀 태워주자고 말할뻔했다.


병원에 도착한 나는 아줌마를 앉혀놓고, 혼자 당당하게 접수를 한다.
" 나 이제 혼자 잘하죠..??"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따 시키는대로 잘하고 있고마이..호호.."
그때 접수처에서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에~또~ 교우와 아나따가 ..

어쩌구,저쩌구.."
아 이런 왜 아줌마가 보고있는데, 평상시 하던대로 안하는것이냐..?
아줌마가 달려왔고, 오늘 의사면담이 있는거 알고있냐?
치료끝나고 대기해야 한다..는 평소와 다른 변칙이 있었다.


그리고, 치료후 처음으로 혈액검사,체중,몸무게,혈압등 간단한 검사를 한후..
치료를 위해 입자선방으로 이동한다. 뒤에서는 아줌마가 잘하는지 계속 따라 다닌다.
앉아서 치료대기중에, 일본노(老)신사를 또 만나게 되었다..
이 노신사는 처음부터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보고는 말을 건네왔다.


 "캔유 스피크 잉글리쉬? "(영어할줄아나?)
나는 일어가 아닌,영어가 무지 반가웠다.


이 노신사는  자기가 푸르덴셜의 임원이라고 소개를하며,

전립선암으로 오까야마에서 이곳으로 오게되었다고 한다.
이틀간 대기실에서 마주칠때 마다 많은 얘기를 했었다.


일본사람치고 영어를 굉장히 능숙하게 하는 드문 사람이었으나,  일본인의 영어발음을 숨기지는 못했다.
'맥도날드'를 ..'마크도나르도' 라고 발음하듯 그 발음과 억양으로
계속 대화를 하니, 나는 반절도 이해를 못했지만, 일본에와서 누구와 대화한다는게 그냥 좋았다.
내가 순서가 되어 이 노신사를  아줌마에게 넘겨주고 치료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우주선에서 약20분간 입자치료를 받고, 나와보니..
어느새 노신사와 아줌마가 조금 친해진듯하다..껄껄대며,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의사와 치료중 첫면담을 하게되었다.

그런데..어라? 의사가 내 친구를 닮았다. 배우 마동석을 닮은 내친구인데, 의정부에 사는놈이다.
이놈과는 어릴때부터 참으로 술을 많이 마셨다.


내가 간암판정을 받고, 실의에 빠져있을때 소식을 전해받고 전화가 왔었다.
"너도 B형간형이 있으니,술좀 자제하고 병원검사좀 자주해..내가 이러고 나니 너도 좀 걱정이 되드라.."

그런데, 이 친구놈이 의사로 빙의가 되어 지금 내앞에 앉아있는것이다.


진짜 너무 똑같아서 그 친구와 얘기하는거 같았다.(의정부사는 내친구 = 마동석 = 면담의사)
면담이 시작되고, 나는 미리 준비해간 질문들을 빼곡히 펼쳐놓았다.

나의 이 질문의메모 습관은 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병원입원당시 아침에 한번 의사가 회진을 도는데..
대면시간은 약 5분도 채 되지않는다.


대부분 환자들은 의사가 올시간을 알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어쩔때는 조금 일찍오거나, 뜻하지 않은시간에 오는경우가 있다.
그러면, 당황스러워서 ..별 얘기를 못하고마는 경우가있는데..그때부터 나는
궁금한 내용을 꼼꼼히 적어서 아침에 만나는 주치의에게 물어보게 되었고,
그런나를 주치의는 좋아하지 않았을것 같다.


주치의와의 면담 (통역 by 곡성아줌마)

1.치료는 잘되고 있는가? 결과를 나에게 보여줄수 있는가?
- 예정되로 잘 조사되고 있으며, 보여줄방법은 없다. 우리는 화면으로 보고있지만,
  치료중에 너에게 화면을 보여줄수는 없지않은가..


2.CT나 MRI 촬영은 언제하나?
- 이미 치료중에 우리는 CT를 보고있다. 굳이 왜 촬영을 해야하나.


3.내가 치료전 검사에서 나타난 혈액검사 결과는 왜 알려주지 않나?
- 한국에서 너가 가져온 자료와 비교했을때, 특이사항이 없고, 치료이전의 자료는 무의미하다.
  필요하면 한장 뽑아주겠다. 하지만, 치료전 자료니 무시해도좋다.


4.내가 언제부터 치료효과를 알수있나?
- 오늘 혈액검사를 한것으로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인 수치의 변화가 나타날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5.나에게 재발률을 15%라고 얘기했는데, 재발을 하게되면 추가치료는 어떻게 해야되나?
- 병소에 따라 다르다. 같은 부위에서의 재발률은 거의없다고 보고있다. 하지만, 다른부위의 재발은
  언제든지 같은치료가 가능하다.


6.내가 조심해서 먹어야할 음식이 있는가?
- 음식은 가리지말고, 잘 먹는게 건강에 좋다. 다만, 한국음식은 일본음식보다
  자극적이라고 알고있다. 여기있는동안 일본음식을 많이먹어라.


7.한국에서는 재발의 방지를 위해서, 수술후 항암 또는, 방사선치료와 항암을 같이 하고 있다.
   치료후 한국에서 재발방지를 위하여 나에게 치료를 권하는것이 있나?
- 아무것도 없다. 나는 항암을 왜 하는지 모르겠고, 하고싶으면, 한국의사의 처방에따라 너희나라에가서 해라.


8.암이 괴사하게 되면 그 부위는 어떻게 되나?
- 괴사된 암의 자리에 새로운 조직이 서서히 생겨서 나중에는 흔적만 남게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6개월 또는 2년까지 걸릴수도 있다.


9.치료가 잘진행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완전한 정상생활이 가능한가?
- 우리치료의 목적이 그것이다. 다만 술은 두세달 후부터 마시길 바란다. 간암환자에게 술은 좋지않다.


10.치료종료후 한국에 돌아가면 나의 예후에 대하여는 어떻게 관찰을 하나?
- 너희 나라에 가서 CT나 MRI를 찍어서 2개월 또는 늦어도 3개월이내에 우리에게 보내주는것을 토대로
  너에게 REPORT 해주겠다.그리고, 이후에는 3개월 또는 6개월 단위로 자료를 보내주길 바란다.


치료전 검사자료 - H 라고 표시된부분이 평균치 이상을 나타낸다.


더이상 물어볼것이 없었고, 아직 면담은 많이 남아있기때문에..
나는 이정로 해두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질문내용중 2~3개월이후 술을 마셔도 된다는 얘기는 내가 괜히 들은것같다.
술을 끊고, 지금까지 단한번도 술생각이 나질않는데, 저 얘기로 인하여 마음이 약해질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기분이 좋다..


나는 아줌마에게  언젠가 받은 청구서 비슷한걸 보여줬다.
내용을 잘 몰라 물어보려고 했는데, 나의 치료비 중간정산을 알리는 용지였던것같다.
나는 어짜피 내야할거 완납을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앞서 야반도주를 한 한국인에 대한 안좋은 인상과, 앞으로 혹시 올지 모르는 한국인에대한
인상을 좋게 하고 싶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간 해외캐쉬카드로 완납을 해달라고 했다.
원무과 직원은 지금 다 안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완납을 하겠다고 했다.
잠시후 카드가 긁혀지고, 영수증이 드르륵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3,000만원이 넘는돈이 결재되는 순간이다..손이 쫌 바들거렸다.
그래도 이왕낼돈이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싸인을 했다.


잠시후 문자로 결재내역과 남은 잔고가 통보된다.
다행히, 앞으로 있는동안 돈이 모자라지는 않을것 같다. 그렇다고 남을것 같지도 않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을수가 있지...?
앞으로 특이사항과 예정되지 않은 검사를 하지않는한  돈이 거의 맞을것같다.
혹시, 미처 모를 변수가 생기면..나에겐 신용카드가 있지 않은가..

행복했다.


혹시, 몰라 미리준비해둔 친구놈에게 추가비용을 송금받지 않아도 된다.
계산을 다 마치고, 영수증을 받으니, 참으로 뿌듯하고, 병원에 당당해져서, 다시한번
어깨를 으쓱거린다..




입자선치료 완납영수증


검사와 치료, 면담까지 다 마치고, 나는 아줌마에게 맛있는것좀 사드리고 싶다고 먹으러 가쟈고 했다.
솔직히, 아줌마가 아니면 어디 혼자 갈수도 없고, 간다고 해도 시켜먹기도 어렵다.
사실 나는어제 아줌마랑 미리 먹을때를 봐둔곳이 있다.
아줌마도 점심시간이라 그러자고 한다.


다시 숙소쪽으로 향하다가 내가 봐둔 그곳으로 차를 향하였다.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그 노신사..가 보인다
정가운데 자리를 딱 잡고 혼자 식사를 하고있었다.


그분도 반가운듯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고, 우리도 반갑게 같은자리에 동석을했다.
"맛있는거 시켜요. 저 돈 많아요. 히히" 하고 아줌마가 보는 메뉴판을 힐끔보았다.
근데, 가격이 꽤 비싸다..시골에 딸랑 하나있는 식당이라 비싼거같다.
나는 갑자기 몸이 움추러 드렀다.


"아따 여기 쫌 비싸고마이.." 아줌마가 한마디했고..
나는 " 아 이게 뭐가 비싸요. 먹고싶은거 시켜요.."
하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아줌마가 치킨과 밥이 나오는 메뉴를 시키고, 나도 같은걸로 주문을 한다.
솔직히, 스테이크를 먹고싶었는데, 그건 훨씬~더  비쌌다.


앞에 앉은 노신사가 아줌마랑은 일본어로 나랑은 영어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신사는 젊었을때 미국뉴욕에서 13년간 근무한적이 있다고 한다. 마치, 젊은시절의 무용담을 늘어놓듯..
음식이 나오기전까지 계속해서 나와 아줌마를 번갈아가며 이야기를한다.
그리고, 자기는 한국을 대단히 좋아하고, 나훈아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사랑' 노래 한구절 부른다..쫌 챙피했다.
그리고는 지금 한국여자친구도 있다고 한다.
'허허..이 노인네가 주책이구만...'

그러는 사이 음식이 나오고,노신사의 무용담은 계속된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연신 방글방글 한다.


식사후 커피를 다 마셔갈무렵 노신사가 지갑을 꺼내더니, 웨이터를 부르며, 우리것도 같이 계산을 한다고 한다.
순간 나는 왜 ..우리껄 내냐는 시늉을 하는데, 아줌마가 옆에서 내 옆구리를 콕 찌른다.
'헉 ...내간...' 나는 움찔했고, 이미 노신사는 계산을 마친뒤였다.
이런, 뜻하지 않은 흑기사라니..큭..^---^

갑자기 노신사가 굉장히 멋져보였다.


커피를 마져 마시는동안 아줌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이 노신사는 일본에 몇명, 한국에도 몇명 후원하는 젊은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말했던, 한국여자친구도 한국유학생이었고, 능력이 있는데 뜻을 못피우는게 안타까워
도와주고, 후원하는 그냥여자친구 -(애인이 아닌), 젊은사람친구 였던 것이다.


다시한번 사람이 달리보이고,굉장히 멋있었다.
그분과 헤어지면서 나는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내일 다시 볼수있냐는 말에 ..오늘이 마지막 치료였고, 사는곳인 오카야마로 돌아간다고 했다.
타고가는 차를 보니, 차가 굉장히 좋은 세단이었는데, 무슨차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줌마와 차안에서 나는 덕분에 잘 먹었다고 하니,
 "원래 일본남자들 겁나~ 쪼쟌한데,  내가 쫌 이쁭게 이런일도 있구먼..호호호~"
하는데, 나는 동의할수  없어서 아무말하지 않으니, 차안의 분위기는 썰렁했다.

이제 곧 주말이 다가온다.


한국에서나, 이곳에서나 주말이 다가오는 기다림은 즐겁다.
주말에는 시내에나가서 기차를 타고 고베나 오사카 쪽으로 나갈계획이다.
옷도 좀 사야하고, 무엇보다 한국음식이 너무 먹고싶다.
김치찌게도 먹고싶고, 된장찌게가 너무 그립다.
오늘 밤에는 내가 먹고싶은 음식을 적어놔야 겠다.
비록, 다 먹을수는 없어도 두끼정도는 먹을수 있으리라..

계속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