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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행복해지니 암이 ‘자살’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0. 10. 15. 07:50

 

 

 

아파서 행복해지니 암이 ‘자살’

자궁암 4기서 완치된 김숙자씨 홀 시어머니·무뚝뚝한 남편…

30년 응어리 꾹꾹 가족 참회 듣고 “죽어도 여한 없는 사랑 느껴”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습니다. 아직 의료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병이 나은 분들도 있습니다.  김숙자(73·여)씨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1991년이었습니다. 김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데 갑자기 자궁에서 피가 나왔습니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동네에서 가까운 원자력 병원으로 갔지요. 진단 결과 자궁암 4기였습니다.


수술 불가능하고 방사선 치료 고작 세 차례


병원에서는 암이 너무 많이 퍼져서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대신 방사선 치료나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는 입원한 뒤 1개월 동안 3차례에 걸쳐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자 백혈구 수치가 떨어진 뒤 회복이 되지 않아 더 이상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백혈구 수치가 낮으면 면역력이 떨어져 치료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다른 병균의 침투에 따른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임파선이 부어오르고 입안이 바짝 말라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더욱 참기 힘든 것은 병실의 분위기였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환자들이 함께 입원해있는 병실은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이 머무는 정거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자고 나면 옆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이 하나 둘 씩 사라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안부를 물어보면 죽었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김씨는 치료를 받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옆에 있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한번도 힘들다 말도 못한 채 병수발 등 뒷바라지


죽어도 집에서 살다가 죽고 싶었습니다. 병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퇴원해 집으로 갔습니다. 유일한 위안은 아들이었습니다. 대학 때 수련 단체에 다녀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던 아들은 임파선이 부어오르는 것은 몸이 외부 자극에 반응할 정도로 생명력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 다른 치료 방법을 찾아보자고 김씨를 다독였습니다.


그 아들이 김씨의 치료에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아들은 죽음을 앞둔 어머니의 모습에서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의 과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22살에 제주도에 시집온 뒤 젊어서 과부가 된 시어머니 아래서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 남자들이 그렇듯 남편도 곰살맞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돈 벌러 서울로 간 뒤에도 한참 동안을 시어머니를 모시고 자식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런 시어머니가 당뇨를 앓자 병구완도 오롯이 그의 몫이 됐습니다. 한번도 힘들다 말도 못한 채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시어머니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용하다는 병원에 모시고 가고 몸에 좋다는 음식이 있으면 구해다 드렸습니다.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꾹 참고 지냈습니다.


김씨가 처음으로 시어머니에게 속시원히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은 자궁암이 걸린 것을 알고 나서였습니다. “저는 평생 어머니께 사랑만 드리고 살았는데 저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에 걸렸어요”라며 시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대들었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큰소리 치며 한풀이…15년 지난 지금까지 말짱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를 덥친 병마가 가족들이 준 스트레스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 회의를 열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이라도 그동안 살면서 어머니에게 잘못한 일에 대해 참회를 하자고 제안했고 가족들 모두 그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이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때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아프게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아프니까 가족들의 사랑도 받고, 그때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여한이 없었어요. 그렇게 사랑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김씨는 그로부터 몇 달 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외국으로 시집간 딸을 만나기 위해 하와이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사돈이 병원에서 진찰이나 받아보자고 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그의 몸에서는 암세포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씨는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병이 나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황씨는 그저 가족들의 사랑으로 가슴에 켜켜이 쌓인 응어리가 풀리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http://blog.daum.net/inbio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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