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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길 박사님 칼럼

13세 소녀, 죽음을 묻다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1. 2. 24. 18:10

13세 소녀, 죽음을 묻다

 

 

아버지와 함께 6학년 소녀가 들어섰다.


“어떻게 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말해볼래?”

“선생님, 죽을까봐...무서워요.”

“무엇이 어떻게 무서워?”

“지금같이 보지도 못하고, 듣는 것도 안 되고, 느끼지도 못하잖아요. 무서워요.”

“무슨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요, 집에 그럴만한 걱정이 없어요. 애가 난데없이 죽는 게 무섭다니 기가 막혀요.

설명해 주어도 안 되고, 이유를 모르겠군요.”


외동딸인 아이와 부모, 세 식구가 사는데 무서워 할 이유가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는 게 아버지의 말이다. 주위에서 죽음을 경험한 일도 없었다. 난감했다. 부모는 상가에서 직원을 두고 상점을 운영하기에 엄마가 보살피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학교생활이나 학원, 친구관계를 살펴보아도 별 문제가 될 만한 어려움은 없었다. 영민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의문은 호기심이 많아 좋은 일이라고 칭찬하면서 아이가 걱정을 할 만한 자료를 더 찾아보았다.

 

  (이런 신통한 소녀가 있나. 이 나이에 죽음을 걱정하다니...참 영리한 아이로고...석가모니 부처님은 단지 네 살 때에 생로병사를 깨우치고 후일 득도의 길로 나아갔다고 하지만, 21세기에 열세 살 소녀가 이다지도 뿌리 깊은 고뇌가 있담?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는 고승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린 소녀와 죽음을 논의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소녀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을 터, 철학적 난제이니 모르겠노라고 할 수가 없다. 소녀의 문제가 혹이나 거창해 지는 건 아닐까? )

 

  일단 집안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고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로 화제를 옮겼다. 할머니는 65세, 할아버지는 68세라고 아버지가 거들었다.


“할머니는 건강이 어떠신데?”

“관절염으로 아프세요.”


일 년에 한번쯤 시골에 가기에 할머니와 별로 친화력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 (혹시나 아이가 아프다는 할머니의 말에 어떤 자극을 느낀 것은 아닐까?)


“할머니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어땠어?”

“슬펐어요. 아프시면 돌아가시니까...”

“아하, 그래서 아프면 죽게 되니까 그걸 걱정하게 됐나보지?‘

“네~”


아이의 큰 눈에 눈물이 핑 돌더니 주르르 흘렀다. 티슈를 집어주었다. 아무런 위험을 모르고 살아온 아이는 아프다는 상상 하나에 사로잡힌 것이다. 그리고 아픔에서 연상되는 것들이 증폭되어 혼자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 아픔이라는 고통이 소녀를 아프게 한 게야, 나는 여기에서 꼬투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삶의 이야기로 전개해 나갔다.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 것 같아? - 20년 후쯤. 그럼 니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몇 해가 남았지? - 적어도 80년. 그럼 80년 후의 일을 걱정하는 건 어찌 생각해? - 아닌 거 같아요. 그렇다면 니가 어른이 되어서 하고픈 일이 무엇이지? 유엔 총회에서 일하는 사람. 누구의 생각이야? - 엄마. 그렇게 하려면 ... 장기, 중기, 단기 미래를 계획하여야 하는데, 국제적 인물이 되기 위한 최소 앞으로 일 년 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 공부요. 그럼 공부 성적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겠노? - 최우수요. 그래 그러면 지금 성적은 어느 정도야?- 중간이요.  아하, 그럼 니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중학교 일 학년에서는 일등을 해야만 하겠구나...-네.

 

  단계적 답을 구하고 결론에 이르러,

“ 자, 이제 죽음을 걱정해야 할 일인가, 어떻게 생각해?”

“.....아니요.”

“마침 할머니 나이가 선생님 나이와 같거든, 그런데 난 관절염이 없단 말이야. 그럼, 니가 이 나이에 되었을 때 관절염이 안 걸리려면 어찌해야 하겠노?”

“건강을 잘 관리해야지요.”

“그렇지, 그럼 관절염도 안 걸리고 아프지도 않을게야,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소녀의 눈에는 이제 더 이상 눈물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든지 궁금한 일이 있으면 다시 나를 찾아오라는 당부를 하면서 소녀를 진료실 밖으로 배웅하였다. 아픔이라는 걸 상상하면서 소녀는 가상의 죽음을 연상하고 얼마나 아플까에 집착하면서 불안해졌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아픈 사람이 고통을 못 느낀다는 이야기를 소녀는 알지 못했다. 죽음을 경험하고 깨어난 사람들의 증언은 죽을 때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추락하여 머리가 깨지면 얼마나 아프면서 죽을까 상상되지만 추락하는 사람의 영혼은 환각 속에서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니 신의 설계는 참으로 신묘하지 않은가.   (2010.12.27)

자료출처: 김종길 신경정신과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