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식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확실한 노화방지 수단이 바로 절식(節食)입니다. 절식이 노화현상을 어느 정도 늦출 수 있다는 주장은 1930년대 쥐를 이용한 연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35년 미국 코넬대 영양학자 클라이브 매케이는 칼로리(열량)를 적게 섭취한 쥐가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를 학계에 보고했습니다.
당시 연구에서 절식을 시킨 쥐는 평균 48개월을 산 반면, 먹고싶은 대로 먹은 쥐는 30개월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이어 1961년 미국 필라델피아 암연구소의 모리스 로스 박사는 절식을 통해 59개월 동안 생존한 쥐의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1백50세 정도에 해당하는 나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고들은 모두 실험실의 쥐를 대상으로 시행한 연구들로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경우 과연 어느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해야 할까요. 아직까지 대한 통일된 의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2002년 5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 발표된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절식 실험의 중간 결과 발표는 수명과 관련하여 사상 최초로 영장류를 대상으로 장기간 연구를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 실험에서 1백20마리의 원숭이(rhesus monkey)를 대상으로 60마리에게는 평소 섭취하는 칼로리(1천2백68칼로리)로 식사를 주고 나머지 60마리에게는 칼로리의 30%를 줄인 식사(9백40칼로리)를 주면서 15년 동안 관찰하였습니다. 식사의 구성을 지방은 33%에서 18%로 낮추고 단백질은 22%에서 32%로 올렸습니다. 그 결과 절식을 한 원숭이의 수명이 38세로 평균 수명의 30% 가까이 늘어난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최대수명을 1백20세로 본다면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의 칼로리를 30% 정도 줄이면 최장 1백50세까지는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절식의 장수 효과를 이해하려면 과식이 왜 노화를 유발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엔 대략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음식을 많이 섭취할수록 이를 소화시키고 에너지로 바꾸기 위해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가 많이 생성이 되고 활성산소는 여러 가지 노화관련 질환들을 유발합니다. 또한 과도한 영양물질이 체내에 쌓이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성적인 염증이 생깁니다. 오래된 염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암이나 치매와 같은 질환들을 일으킵니다. 둘째, 과식은 세포자살을 막습니다. 세포자살이란 늙고 병든 세포가 개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현상입니다. 세포자살을 통해 죽어야할 세포가 죽지 않으면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세포로 변하게 됩니다. 셋째, 과식은 신체의 면역기능과 해독능력을 떨어뜨립니다. 무엇이든 약간 부족한 듯 싶을 때가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과식으로 배가 부르게 되면 인체는 태평성대가 온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혈관에 기름 덩어리가 쌓여 동맥경화가 생겨도 무사안일하게 지냅니다. 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을 보면 포식한 쥐는 하루종일 늘어져 잠만 자며 행동은 굼뜨게 됩니다. 이것은 미국 UC 리버사이드대학의 세계적 노화학자인 스핀들러 교수의 최근 연구결과에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그는 DNA칩을 이용해 정상적으로 먹인 쥐와 절식한 쥐 간에 나타나는 1만1천여개 유전자 발현(發現)의 차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즉 적게 먹으면 유전자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절식은 유전자로 하여금 개체의 생존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비상사태를 선포하여 체내 염증을 억제하고, 병들고 늙은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며, 독성물질을 빨리 내보내는 방향으로 새롭게 전열을 가다듬게 합니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남습니다. 절식은 식사를 얼마나 줄여야 하고, 기간은 어느 정도 되어야 노화방지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첫째 질문에 대한 정답은 학자들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평소 섭취 칼로리의 30% 정도 줄일 때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미 국립노화연구소의 원숭이 실험에서도 전체적인 열량을 30% 줄인 경우 수명 연장 효과가 극대화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30%가 음식의 양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제가 소식(小食)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절식(節食)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줄여야하는 것은 칼로리입니다. 즉 지방과 탄수화물 등 칼로리가 많은 음식을 줄여야한다는 뜻이지요. 채소(특히 나물 종류)나 과일 등 칼로리가 적은 식품은 다소 과식을 하더라도 좋습니다.
30% 정도 칼로리를 줄이기 위해 제가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권유하는 것이 밥그릇의 크기를 줄이 것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밥이 가장 중요한 한국인의 칼로리 공급원이기 때문입니다. 밥그릇의 크기 자체를 3분의 1 정도 줄이거나 아니면 평소 그릇에 담는 밥의 양을 3분의 1 정도 줄이면 됩니다. 밥을 적게 먹으면 반찬의 양도 자연히 줄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허기는 채소나 과일 등 몸에 좋은 식사를 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둘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파격적입니다. 우리의 상식과 달리 이미 한평생 먹고 싶은대로 먹고 산 노인들에게도 때늦은 절식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핀들러 교수는 사람의 나이로 치면 70세 이상에 해당하는 늙은 쥐들을 대상으로 2주 동안 절식을 시켜 유전자 발현이 젊어지는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현상을 관찰하였습니다. 그는 최근 발표한 논문을 통해 사람의 경우 1년 정도만 절식해도 한평생 절식한 것과 비슷한 변화가 체내에서 일어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절식에 대해 갸우뚱한 분들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또 하나의 의문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절식이 좋아도 적게 먹고 골골거리면서 오래 사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사실과 다릅니다. 절식한 쥐의 경우 근력과 순발력, 지구력 등 체력과 호르몬 분비량과 같은 활력의 지표들이 마음껏 포식한 쥐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원시인들을 생각하면 알기 쉽습니다. 농경사회가 정착하기 전 원시인들은 오직 사냥을 통해 열량을 얻었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겨우 토끼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었겠지요. 여기저기 널린 패스트 푸드를 통해 불과 5분이면 쉽게 수백 칼로리의 열량을 얻을 수 있는 현대인에 비해 무척 열악한 환경입니다. 그러나 원시인들이 남긴 돌도끼나 옷차림 등을 감안하면 우리보다 훨씬 무거운 것을 들 수 있고 추위에도 잘 견디는 등 체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이 먹는다고 힘이 세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절식을 위한 실천만 남았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마지막 난관이 남았습니다. 이 모든 과학적 증거들을 나름대로 완벽하게 갖춘 절식의 효험에도 불구하고 입맛과 식욕을 억제해가며 적게 먹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원숭이 실험을 기준으로 사람에게 적용하면 이론적으로 하루 1천5백칼로리 정도를 섭취해야 합니다. 한국인이 즐겨 먹는 한식 위주의 식단으로 한끼를 먹으면 대략 5백칼로리 정도가 되므로 하루 세끼 이외에는 다른 음식을 먹기가 어렵다는 거죠. 일반적으로 과식을 하지 않는 한국인 남성의 경우 하루 2천3백~2천5백칼로리 정도를 섭취하고 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1천9백~2천2백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하고 있어 5백~1천칼로리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가능은 합니다. 참고로 저의 개인적인 식단을 한번 공개해 드릴까 합니다. 노화에 관심이 많은 의사는 어떻게 먹는지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아침식사는 잡곡밥 반그릇(1백80칼로리), 두부(김치찌게나 된장국에 넣은 두부로 약 50칼로리), 멸치와 각종 나물류(약 50칼로리), 약간의 김치와 해조류(약 20칼로리), 우유 반잔(약 50칼로리) 정도로 3백50칼로리를 섭취합니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서 병원에서 먹습니다. 잡곡밥 3분의 2공기(2백40칼로리)와 비빔밥으로 먹을 수 있는 고추장과 김, 버섯, 나물류(약 1백20칼로리), 계란후라이나 계란말이(약 1백칼로리) 등으로 4백50칼로리 정도를 섭취합니다. 저녁은 잡곡밥 반그릇(1백80칼로리), 김치와 채소류(50칼로리), 작은 생선 한토막이나 두부(1백칼로리), 닭고기 혹은 기름기가 적은 육류(약 1백칼로리)등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4백칼로리 정도를 섭취합니다. 간식으로는 오전 11시경에 과일 2-3가지로 1백칼로리 정도를 섭취합니다. 오후 간식 시간은 저에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각종 불량식품(버터쿠키, 새우깡, 크라운 산도, 땅콩캬라멜 등)과 우유 한잔, 약간의 과일을 포함하여 1백50~2백 칼로리 정도를 먹습니다. 출근할 때마다 저는 핸드폰이나 책보다 간식 가방을 더 열심히 챙긴답니다. 핸드폰은 일주일에 1~2번 정도 잊어버리고 나오기도 하지만 간식가방은 하루도 빠짐없이 가지고 다닙니다. 이렇게 먹으면 대략 하루 섭취칼로리가 1천5백칼로리 내외가 되지요. 물론 가끔씩 외식으로 칼로리 섭취가 많아지면 저녁에 양재천을 걷거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면서 칼로리를 소모하려고 노력한답니다. 저처럼 건강과 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건강한 삶을 위해 하루 1천5백칼로리 정도를 섭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혀의 즐거움도 무병장수 못지 않게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의 경우는 1천6백~1천7백칼로리, 남성의 경우는 1천8백~1천9백칼로리를 섭취하는 정도로 타협을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지금 제시한 칼로리는 성인 남녀의 경우에 해당되며 65세가 넘어가면 칼로리 필요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섭취칼로리를 더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입맛은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우리의 후천적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절식을 위해 한가지 팁을 말씀드리자면, 풍부한 채소와 적절한 과일 그리고 단백질을 적절히 활용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단백질은 기름기가 적은 육류나 생선, 닭가슴살, 저지방 우유, 콩, 두부 등을 말합니다. 단백질은 지방에 비해 단위그램당 열량이 절반 밖에 안되는 데다가 지방이나 탄수화물처럼 체내에 쌓이지 않고 잉여 단백질은 대부분 체외로 배출되기 때문입니다. 미 국립노화연구소의 원숭이 실험에서도 원숭이의 평소 입맛보다 단백질 섭취를 7% 정도 늘였더니 수명이 향상된 것으로 밝혀진 바 있습니다. 끼니당 두세 점의 고기와 작은 생선 한토막을 통해 입맛도 돋구면서 절식의 노화방지 효과를 만끽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