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동행]
말기 암환자 편안하게 임종 맞을 병실 부족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 전국 54곳·병상수 겨우 868개
암으로 인해 사망하는 환자는 연간 7만5000명에 달하지만 환자가 호스피스를 통해 마지막 안식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상은 868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 암환자가 불필요한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편안하고 품격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서비스다. 현재 전국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은 54곳이고 이들의 총 병상 수는 868개에 불과하다. 이는 의료기관 전체 병상수가 약 40만개임을 감안하면 0.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 중 서울에서 운영 중인 곳은 총 8개 기관 146병상으로 웬만한 병원의 암센터 1개 시설에도 못 미치는 규모이고, 그나마도 민간병원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을 운영 중인 곳은 4개 기관 57병상이 전부다. 나머지 89병상은 공공병원인 시립병원에서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실제로 호스피스 병실을 이용하기 위해 입원예약을 하고 순서를 기다리지만, 결국 병원 문턱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의 마지막을 편히 보내기 위해서도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다. 말기암 환자인 모친의 평안한 임종을 돕기 위해 호스피스 완화의료병실을 수소문했던 김모(47·여)씨는 “공기 좋은 요양 시설이나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찾아 마지막을 준비하시게 하라는 의료진의 설명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면서 “곧바로 호스피스 시설을 찾아봤지만 서울에서 운영하고 있는 호스피스 시설은 몇 곳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환자가 많아 곧바로 입원할 수 있는 병원도 없었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지원도 당초의 계획에서 많이 후퇴했다. 보건복지부는 2006년 제2기 암정복 10개년 계획(2006∼2015년)에서 말기암 환자에게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지역 중심의 완화의료기관 육성·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병상수도 2013년까지 국립암센터 내에 100병상을 확충하고 2015년까지 9개 지역암센터(30병상)와 34개 지방의료원(20병상)을 전문형 지역암센터로 전환하는 등 2010년 1000병상, 2015년 2500병상으로 늘리겠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최근 복지부의 계획을 보면 2020년까지 1400병상으로 늘리는 것으로 돼 있어 확대 폭이 현저히 줄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의 수요는 늘고 있지만 의료기관에서 병실을 공급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기관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마땅히 증가추세를 보여야 하는데도 공급이 항상 제자리인 이유는 다름 아닌 저수가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병원이 호스피스 병실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수익이 보장돼야 하지만 현재의 수가로는 운영할수록 적자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암환자의 지속적인 증가에 따라 서울과 수도권의 대형병원들이 경쟁적으로 암센터나 암 병원을 설립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운영 중이거나 운영 예정인 암병원의 병상수는 3000개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상의 확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암환자가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가면 평균 약 40일 정도 입원치료를 받는데 이 기간에 병원은 암의 종류에 따라 환자 1인당 약 1000만원에서 5000만원 이상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반면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실 환자는 평균 21일 정도 입원하며 주로 암 통증관리, 영양 관리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는 중증암환자로 등록되기 때문에 본인부담금은 5%만 부담하면 된다.
하루 진료비는 약 16만원∼20만원 사이인데 통증완화에 사용되는 마약류 진통제나 패치, 복수천자 등 몇 가지 의료처치를 해도 일당 진료비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수익 측면에서는 전체 진료 과목 중 가장 기여도가 낮으며, 투약재료비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오히려 마이너스 수익이 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간 의료기관들로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실 운영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호스피스 완화의료 수가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1차 시범사업에선 의료기관을 4단계로 구분해 기본수가와 가산수가로 구성된 일당 정액수가를 산정했다. 기본수가는 종합전문 15만9290원, 종합병원 12만9140원, 병원 7만7790원, 의원 7만720원이었고 여기에 간호사의 인력확보 수준, 전담 사회복지사의 확보 수준을 감안해 가산수가를 반영하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병실 차액료와 선택진료료 등의 비급여 항목과 식대는 포함하지 않았다.
2차 시범사업에선 종합병원 이상 17만5980원, 병원급 이하는 11만3580원으로 책정했다. 2차 사업은 종별 재구분(2단계)에 따른 일당 정액수가와 일부 항목의 행위별 수가를 적용했고, 입원일수에 따른 입원료 체감 비율은 1차 50%에서 10∼15%로 조정했다. 하지만 종별 구분에 따른 수가체계 정립은 대형병원으로의 쏠림을 유발할 수 있으며, 서비스 제공 수준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용진 서울시 북부병원장은 “병원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하지만 호스피스는 노환으로 사망하는 사람과 암환자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수가를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 완화의료 수가 일부에 호스피스 관련 서비스 수가를 포함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 호스피스가 의료서비스인가라는 반문에 부딪힌다”며 “병원의 완화의료 서비스도 필요하고 호스피스도 필요한데 행위로 엮어 줄 수 있는 것이 약과 진료밖에 없어 요양병원처럼 일당정액제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루에 많은 환자들이 죽고, 다시 입원하기 때문에 의료진의 업무량이 너무 많다. 간호사들의 입장에서는 환자를 계속 봐야 하는데 환자들의 상태가 제각각인데다 새로운 환자를 받는 주기가 짧아 업무 강도가 심하다”며 “의료진이 호스피스 서비스 제공에 따른 심리 상담도 해야 하는데 죽는 사람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아직 정서적으로 수용이 안 돼 정신과 상담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현장에서의 애로점을 토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암 환자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며, 관련 수가 연구는 올해 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민규 쿠키뉴스 기자 kioo@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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