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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암 완치 환자들의 공통점을 찾아서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9. 3. 12. 15:43


암 완치 환자들의 공통점을 찾아서




[피플] 청계산 맨발 산행으로 말기 암 극복 이주선 씨

 
1년 반만에 완치 판정 받아…한겨울에 맨발 걷기 10km도
                     
 
       ‘98년 간에 3cm 크기의 암세포 덩어리 3개 발생. 8월에 3개 더 발생. 이듬해인 99년 2월 임파선을
       타고 폐로 암 전이. 백혈구 수치 1500 이하로 저하.’

병원서는 결국 “몇 달 안 남았다”며, 그만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했다. 국립의료원의 담당의사는 살아날 확률이 1만분의 1도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주선씨(57)는 “내가 그 만 명 중 한 명이 될라요”라면서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날부터 청계산 맨발산행을 시작했다. 그후 6년 동안 열심히 산행을 하였다. 지금까지 이주선씨는 살아 있으며, 암 세포 하나 없는 말짱한 몸이다.

 

이주선씨는 먼저 간경화를 앓았다. 6개월여 간경화 치료를 받고 퇴원한 97년 4월부터 청계산 산행을 시작했다. 너무 힘들어서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여 석 달 열흘만에 옥녀봉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 후 다시 일터로 복귀해서도 매일 등산은 빠트리지 않은 그는 그러나 이듬해인 98년 2월 간경화가 아니라 암 발병 선고를 받았다.


“그래도 전혀 죽는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나는 산다, 내가 왜 죽어, 하면서 이제부터는 아예 맨발로 하자, 했습니다. 그게 99년 7월이에요. 암이 발병했을 때도 체력은 그런대로  괜찮아서 2시간 정도 산행한 다음 냉수욕하고 내려와서는 점심 먹고 또 옥녀봉까지 2시간 산행하고 했지요.

 

그렇게 한 1년 하다가 옥녀봉 지나 1시간 더 매봉까지 왕복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하루 3시간씩 산에서 잠도 잤어요. 여름에는 물웅덩이 위 나무 사이에 그물 침대 쳐놓고 자고, 겨울엔 양지바른 데다 자리 깔고 군용 침낭 쓰고 잤지요. 그러니까 뭐, 낮에는 산에서 살다시피 한 거죠. 그런데 이게, 이 암 덩어리가 맨발 산행 하면서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 거라.”


옥녀봉 오름길 중간엔 밤나무밭이 있어 맨발로 갈라치면 가시가 박히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까짓 것 못 이겨서 병마를 어떻게 이기겠나 하면서 고통을 눌렀다. 그렇게 맨발로 하루 4~5시간 산길을 걷고 산에서 잠을 자고 기도도 한 뒤 내려오는 나날을 보냈다. 그런 생활을 1년6개월 남짓 한 뒤인 2001년 2월 검사에서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적적인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맨발 등산 계속했어요. 내 투병생활은 이제부터라는 마음가짐으로, 일부러 바닥이 울퉁불퉁한 나쁜 길 택해서 다녔어요.”


음식은 술 담배를 제외하고는 가리지 않았으며 약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기를 4년만에 그는 완전한 건강과 체력을 되찾았다. “내 노력도 노력이지만, 우리 중앙침례교회 성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준 덕도 크다”며 “이제는 날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그분들에 대한 보답이라는 자세로 산다”고 그는 말한다. 또한 이주선씨는 “내 얘기 듣고, 치료 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않는 그런 일이 생길까봐 걱정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그는 오늘도 맨발 산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혹한풍이 몰아치던 1월20일 평창 횡계에서 열린 알몸마라톤대회에도 그는 반바지에 맨발로 10km를 뛰고 돌아왔다. 그는 한라산이며 속리산, 설악산 원행을 한 번씩 해보았으나 오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낯설어서, 어디로 가면 뭐가 있고 내가 쉴만한 자리가 어디인지 훤히 아는 집 뒤의 청계산만 오르내린다고 한다. 청계산은 그에게 안식처이자 기도처이며, 말기 암을 낫게 해준 기적의 병원이기도 한 셈이다

 

암 완치 그 공통점을 찾아...

 

1. 정신적 산소
같은 비를 보고도 비관론자는 땅이 질퍽거리게 될 것이라고 하고, 낙관론자는 먼지들이 모두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한다. 벌을 보고도 양쪽의 시각차는 달라진다. 비관론자에게 벌은 사람을 쏘는 곤충일 뿐이고, 낙관론자에게 벌은 꿀을 만드는 유익한 곤충으로 다가온다. 이 두 관점의 차이는 사물의 단면을 보는 시각차이기도 하지만 암환자들에게 적용하면 생사(生死)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기도 한다. 낙관의 요체는 ‘믿는 대로 된다’는 자기 확신이다. 낙관론자에게 삶은 순리(順理)고 긍정의 연속이다. 낙관은 모든 긍정적 사고들을 연동(連動)시켜 선(善), 행복, 진리 등과 같은 건강한 가치들을 산출해낸다.


① 낙관

암에서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비슷한 품성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 이중 필자가 발견한 한 가지 공약수는 바로 낙관이다. 인터뷰 중 만난 호전군에 포함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어쩌다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렸지만 반드시 극복하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암 진단을 바로 죽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죽음의 최면 속으로 자기를 몰고 간다. 비슷한 경우로 환자들이 진단 당시 의사가 내뱉은 ‘시한부 선고’의 함정에 빠진다고 한다. 즉, “이 환자는 6개월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면 상당수의 환자들이 정확히 6개월 후 의사 말대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병원의 무책임한 발언도 문제지만 의사 말 한마디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는 환자들의 비주체적이고 나약한 품성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낙관적 투병의 본보기로는 소개된 분 중에 손경호씨가 기억에 남는다. 암 선고를 받던 날 집으로 오자마자 친구들과 여행 스케줄을 짰다. 그리고는 전국 일주에 나섰다. 암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이 손 씨를 위협했지만 암세포에게 결코 지지 않겠다는 오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서울의 최영애씨도 기억에 남는다. 암 진단을 받던 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머지않아 못 보게 될지도 모르는 벗들과의 이별 연습을 위해서였다. 친구들에게 사실을 말하고 이별여행을 제안했다. 갑자기 접한 최 씨의 슬픔에 당황하는 친구들을 오히려 그녀가 위로했다. 무모하리만큼 대담한 배짱이었다. 이 배짱에 암세포들이 질려 버렸는지 모두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모두 낙관과 긍정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② 사랑, 웃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오래 운영한 원장이나 직원들은 환자가 병원에 들어올 때 첫 인상을 보고 그 환자의 투병 성공 여부를 예측하는데 놀랍게도 놀라운 적중률을 보인다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환자의 정신적 건강도는 바로 웃음과 얼굴의 편안함, 여유 등으로 그 정도를 예측한다고 한다. 웃음은 단순한 안면 근육의 작용 이상을 의미하는 정신적 신호이다. 물리적 표정을 뛰어 넘어 내면(內面)을 들여다보는 창(窓)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의학적으로도 웃음은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웃음이나 기분 좋은 상상(想像)을 통해 유익한 호르몬을 분비시킬 수 있고, 이 물질들은 신체의 뇌하수체를 연동시켜 흐트러진 신체의 대사기능을 바로 잡아 준다.

이 책에 소개된 김화숙씨도 진단 초기 한동안 시름에 빠져 있다가 침상을 박차고 양지(陽地)로 나왔다. 병상탈출의 열쇠는 바로 사랑과 웃음이었다. 골방에서 뛰쳐나온 후 매일 아침 동네 아줌마들을 불러 모아 웃음 체조를 시작했다. 이 웃음 덕택에 수년째 직장암의 사슬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필자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만났던 몇몇 분들의 기억이 새롭다. 언제나 밝은 웃음과 친절로 주변을 밝히던 ‘병실의 산소’들이었다. 그 분들은 직원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병원의 음지를 살폈으며, 딱한 환우들을 돌보았다. 그 분들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나눔, 베품, 사랑이 있었다. 다들 예후가 좋았고 지금껏 건강하게 생존해 있음을 본다. 아마도 그 분들이 베푼 사랑이 자신에게 선(善)순환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③ 신앙
드물긴 하지만 신앙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해 질병에서 벗어난 경우를 가끔 접하게 된다. 절대자의 현몽(現夢), 음성이나 현시(現示)등 이적(異蹟)을 경험한 후 병에 큰 차도를 겪었다는 간증을 많이 들었다.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더라도 암 투병과 신앙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사실 신앙은 사랑, 웃음, 낙관, 행복 등 건강한 정서들의 총체라고 볼 수 있다. 건강한 정서 속에서 쾌유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시중에 나온 암 투병의 베스트셀러의 저자들도 하나 같이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투병과 신앙이 밀접히 연계되어 상승작용을 가져오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본 책에 소개된 *씨도 꿈속에서 부처님을 뵌 후 ‘블랙 푸드’라는 치료의 단서를 찾았고, 민보라 양도 종교 생활 중 창조주의 사랑을 깨닫고 완치를 얻었다. 대장암을 극복하고 이제는 웃음 치료사로 새 출발한 황재수씨, 직장암을 극복한 송학운 원장도 모두 건실한 신앙인 들이다.

한편, 의학적인 관점에서 신앙과 병 치료의 상관관계는 호르몬의 작용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환자가 신앙에 몰입되어 감사, 평안, 사랑에 몰입되면 체내(體內)에서 엔돌핀, 다이돌핀 같은 호르몬들이 분비되어 망가진 유전자들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이상구 박사의 뉴 스타트, 백투 에덴 건강 법칙도 신앙에 근거한 투병 지침들이다.



2. 자연적 산소

① 등산, 조깅, 스트레칭
사랑, 낙관, 긍정, 웃음과 같은 정신적 요소와 함께 암 투병 환자에게 운동은 회복의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 운동은 신체를 움직여 몸 안의 세포를 일깨우고 장기(臟器)들의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기도 하지만 정신적으로도 우울한 기분을 전환시켜 우울, 낙심과 같은 부정적 정서에서 탈출시키는 기능을 한다. 중병선고를 받았다고 절망에 빠져 골방에 몸을 맡겨버리면 그 환자의 예후는 뻔하지 않겠는가. 운동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양쪽 모두에 작용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투병의 절대 조건인 것이다.

등산에 있어서 청계산 맨발 맨 이주선씨의 엽기에 가까운 열정은 그 분의 회복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훌륭한 본보기가 된다. 이주선씨는 10년 동안 무려 4천 번이나 청계산을 오르내렸다. 그것도 맨발로 말이다. 그 분이 한겨울 눈으로 질척이는 등산로를 맨발로 오르고 얼음을 깨고 폭포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TV를 통해 보면서 필자는 그 사람의 투병의지에 전율했다. 꼭 이렇게 엽기에 가까운 억척산행이 아니더라도 하루 1~2시간의 산책, 등산은 환자에게 최고의 천연 항암제다.

모자(母子)암 투병의 기구한 이력을 마라톤으로 극복한 손미경씨도 운동 치유사례의 본보기로 충분하다. 그동안 풀코스 완주만도 *번에 최근엔 인간 한계의 절정이라는 울트라마라톤에도 출전해 100km를 완주했다. 5년 동안 지구의 *바퀴를 돌았던 박영모씨의 조깅 투병도 환자들이 모범으로 삼을만하다. 필자는 요양원이나 병원에서 처음 휠체어를 타고 또는 구급차에 실려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입원하던 사람들이 몇 주 만에 휠체어를 버리고 퇴원하는 광경을 많이 보았다. 모두 등산, 운동이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고인물은 썩고, 멈춘 돌에는 이끼가 낀다. 자연은 움직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목숨을 회수한다고 하지 않던가.


② 복식호흡, 요가, 태극권
꼭 복식호흡이 아니더라도 들숨과 날숨을 통해 호흡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호흡에도 질(質)이 있다. 보통의 숨쉬기와 달리 호흡법을 심화시켜 인체에 유익하도록 개발된 수련법이 복식호흡, 요가다. 보통의 호흡은 숨이 얕은 흉식호흡이지만 복식호흡은 숨을 깊게 들이마셔 산소의 흡입을 최대화 시켜주는 호흡법이다. 또 일반 호흡이 순환기 상층부에서 이루어져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잘 되지 않은데 비해 복식호흡은 장기(臟器) 깊숙한 곳까지 공기가 유입돼 체내 구석에 오염된 공기를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 복부를 팽창시켜 소화, 장운동의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복식호흡이나 요가는 마음을 집중시키는 고도의 정신작용이기 때문에 심신의 안정, 감정의 조율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또 대개의 경우 요가, 호흡법에는 가벼운 몸동작이 병행되기 때문에 스트레칭 효과도 크다. 본 책에 수록된 이금덕씨도 10년 째 하루시작의 문을 요가로 열고 있다. 박영모씨도 복식호흡을 통해 23년간 위암의 재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의사 암환자 김선규씨도 지리산에 황토 집을 짓고 하루에 몇 시간씩 반석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태극권을 수련했으며 부산의 김근희씨는 암 투병 중 요가를 접한 후 요가의 매력에 빠져 아예 요가대학에 진학해버렸다. 꼭 특정한 형식을 필요로 하는 호흡법이나 수련이 아니더라도 하루에 몇 번씩이라도 심호흡을 반복해주면 폐 등 순환기를 관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3. 자연식 위주의 섭생
자연식이란 과채류의 섭생에 있어 가공을 최소화한 방식을 말한다. 계란 하나에는 병아리가 부화될 때까지  필요한 모든 영양이 들어있다. 씨알 한 알에도 그 식물이 싹을 틔우기까지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저장되어있다. 즉, 씨 한 톨 자체가 완전한 영양 상태인 셈이다. 따라서 곡물, 채소, 과일은 최대한 채취상태에 가깝게 먹는 게 좋다.


① 현미, 통밀, 잡곡을 먹자
현미, 통밀 등 도정(搗精)을 최소화한 곡물의 장점은 그 곡식의 고유한 영양이 모두 살아있다는 점이다. 필수 영양소인 비타민B1, B12, 니아신, 셀레늄 등은 모두 껍질에 들어있다. 흰쌀, 흰밀가루 같은 과(過)도정 곡물들은 필요한 영양분이 모두 깎여져 나간 반쪽짜리 식품들인 것이다. 또 곡식 한 알엔 영양소들이 균형을 갖춘 황금비율의 상태로 유지되어있다. 이런 영양소들이 도정과정에 깎여나가 영양의 균형이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다. 성인병의 대표질환인 당뇨도 삼백(백미, 흰밀가루, 설탕)식품이 나타나면서 생긴 대표질환이다.

통곡류로 조리된 음식은 이른바 ‘거친 음식’이 된다. 거친 음식은 껍질이 딱딱하기 때문에 꼭꼭 십어 먹는 식사법이 지켜질 수밖에 없다. 영양이 잘 갖추어진 곡물을 꼭꼭 십어서 침과 함께 넘기는 식사법이야 말로 환자들에게 최고의 식사법이 아닐 수 없다.

② 과일, 채소를 많이 먹자
사계절마다 형형색색으로 넘쳐나는 과일, 채소들. 그 것들은 대지의 기운과 태양의 양분을 풍성히 공급받아 그 영양을 뿌리에, 줄기에, 잎에, 열매에 고스란히 저장한다. 다양한 종류와 풍성한 소출만큼 야채들은 특색있는 영양과 다양한 맛을 인류에게 선물한다. 과일, 채소가 환자에게 주는 대표적 유익은 항산화 기능이다. 산화(酸化)란 우리 몸의 세포가 부식돼 녹스는 현상으로 노화(老化)와 질병의 출발점이다. 바로 이 과정에 야채류의 섭생이 개입되면 그 진행을 늦춰주고 해악을 완화시켜준다.

과일류도 곡식들과 마찬가지로 유익한 영양소를 껍질에 저장하고 있다. 보통 환자들이 과일을 먹을 때 껍질을 벗기고 먹는데 이것은 잘못된 습관이다. 사과, 배는 물론 감이나 땅콩, 밤 등의 속껍질도 벗기지 말고 그대로 꼭꼭 십어 먹는 것이 좋다. 껍질은 무기질의 창고 일 뿐만 아니라 섬유질이 풍부해 장(腸)건강을 위해서도 그만이다. 일반적으로 염려하는 농약에의 노출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잘 씻기만 해도 잔류 농약에 대한 위험은 대부분 제거된다. 또 과일 껍질의 섬유소는 장을 통과할 때 농약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들을 흡착해 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중금속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환자들이 싱싱한 제철 채소, 과일들을 충분히 섭취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③ 견과류는 필수
최근 패스트 푸드 맥도날드사가 미국 내 전 매장에서 트랜스 지방을 금지한다고 공표한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트랜스 지방은 자체로도 저등급 영양이지만 무엇보다 혈관에 혈전(血栓)을 생성시켜 고혈압, 심근경색 등 각종 성인병을 유발시키는 주범이다. 그래서 트랜스 지방보다 유해성이 훨씬 덜한 올리브기름이 웰빙 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올리브유도 반쪽 식품에 불과하다. 모든 지방은 착유(窄油)과정에서 껍질에서 나오는 순간 공기와 결합해 산화(酸化)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위험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운 안전지대가 있으니 바로 견과류다. 호두, 잣, 땅콩, 아몬드 등에는 식물성 단백질, DHEA, 비타민E(투코페롤) 등 각종 천연 영양소가 넉넉하게 들어있다. 당연히 인체에도 무해(無害)하다. 다만 견과류의 특성상 호두나 밤처럼 즉석에서 까서 먹는 것이 가장 좋은 섭취법이다. 역시 산화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유의할 점은 견과류는 소량으로 먹어야 한다는 점이다. 호두는 한 번에 두 알 정도가 적당하고 땅콩, 밤, 아몬드 등도 한줌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요즘 마트나 시장에 가면 정제, 도정된 견과류들이 쏟아져 나오는 데 환자 입장에서는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조물주가 이런 열매를 단단한 껍질에 가둬둔 뜻은 조금씩만 먹게 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④ 소식(小食)하라
필자가 여수에 있을 때 산 속에서 혼자 투병하는 암환자를 만나 일이 있다. 그 분은 폐암, 선암, 임파선암 등 이른바 3관왕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현대의학의 견지에서 그 분의 생존은 하나의 기적으로 부르기에 충분했다. 그 분 집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벽에 붙여둔 경구(警句)였다.

“소식(小食)” “治口治病”
뜻밖이었다. 장기 세 곳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에서 7년 동안 생존한 기적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암환자가 지켜야할 수십 수 백 가지 지침 이분이 소식을 주 슬로건으로 삼은 배경을 환자들은 빨리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그 분은 하루에 두 끼만 먹었으며 매 끼도 작은 접시에 떡 2조각, 당근 반개, 나물 몇 가지만 먹을 정도로 소식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 중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0~30%는 소화되지 못하고 그대로 변으로 빠져 나온다. 불완전 연소가 되는 것이다. 이른바 과식의 해악이다. 장내 가득한 음식쓰레기는 유해가스를 만들어 내 장 기능을 훼손시키며 피를 탁하게 하고 각종 대사 기능을 혼란시킨다. 암환자의 식탁에서 ‘모자람의 미학’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불문율이다. 과식과 남식(濫食)이 상상을 넘어 그 해(害)가 크기 때문이다.


⑤ 자기만의 건강식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시장은 최근 엄청난 규모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연간 시장규모도 수천 억원 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필자가 접한 건강식품만도 수 십 가지가 넘는다. 죽음과 인접한 질병이라는 특성 때문에 환자의 구매행태도 여타의 상품과 확연히 다르다. 환자의 다급한 심리를 이용 그 상술(商術)도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검증되지 않은 비공인 자료들이 대부분이며 문구나 카피도 다분히 자의적이다.

필자는 의사가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건강식품이나 특정치료법에 대해 판단할 입장에 있지 못하다. 이런 요법들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든지 맹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가지 파장을 고려해 민간요법에 대한 소개를 최대한 자제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는 검증되지 않은 요법들을 함부로 일반에 소개했을 때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을 우려해서이다.

전 세계의 유명 병원도 암 발병의 메커니즘을 규명해내지 못하고 있고 첨단을 달리는 현대의학도 암치료제가 나오는 시점을 20~30년 후쯤으로 잡고 있다. 글리벡 등 소수 분야를 제외하곤 유감스럽게도 아직 이 세상에 암 치료제는 없다. 현대의학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사이비 상술, 민간요법들의 솔깃한 유혹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하겠다.

- '기적을 만든 21인의 암치료법' /서인용

 

마음가짐과 좋은 산소라는 공통점의 암 극복사례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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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치유는 여러 자연치유 요법 중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BS 스페셜’에 방영된 <산에서 암을 이긴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만큼 뜨거웠다. 병원에서도 손을 놓은 말기 암 환자들이 산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치료보다 삶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런데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이들이 산에서 암을 이기고 ‘진짜 행복’도 찾았다고 말한다. 더러는 암에 걸린 것이 인생 최대의 행운이었다고 고백했다. 산이 그들에게 준 것은 무엇이며, 산에서 어떤 치유의 힘을 얻은 것일까? 그들의 뜨거운 산 사랑을 들여다봤다.

대장암 극복한 심광명·김춘현 부부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이 암을 이깁니다”

충청북도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이곳은 22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았던 심광명(64) 씨가 터를 잡은 곳이다. 생을 조용히 마감하기 위해 찾은 산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는 심 씨. 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그는 “맑은 물과 공기보다 더 좋은 명약은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독주를 즐기던 뱃사람, 암에 걸리다
암은 평범한 일상을 순식간에 뒤흔든다. 소리 없이 다가와 충격이 더한 것일지도 모른다. 심광명 씨 역시 그랬다. 외항선을 탄 까닭에 바다에 한번 나가면 1년 반. 뭍에 내려도 한 달 정도밖에 지낼 수 없다. 그래서 결혼 15년 동안 아내와 함께한 시간은 고작 1년 남짓. 바다생활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지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에 암 진단을 받아 충격이 더 컸다.

“배에서 생활할 때 술 참 많이 먹었지. 드라이진 한 병 마시고, 입가심으로 맥주 한 박스씩 마셔댔으니까. 한번은 여수항에서 면세로 소주 500박스를 실었는데, 공짜라고 저녁마다 한 사람당 한 박스씩 없애곤 했어.”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어느 호텔에서는 술을 가장 많이 마신 사람으로 기록되기도 했단다. 다시 1년 반 만에 돌아온 집, 가족들을 위해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모처럼 물놀이를 즐기고 술도 마시며 한 달 가까이 지냈다. 그런데 오른쪽 배가 불룩하게 올라왔다. 뭔가 손에 잡히기도 했다. 청주에 살던 때라 가까운 병원에 갔지만, 모두 고개를 저으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병원을 4번 옮기고 나서야 대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 소장까지 전이된 상태였다.

 

대장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았지만, 의료진은 소장까지 미처 손을 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잘해야 3개월 정도 살 수 있겠다고 선고했다. 심광명 씨는 그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기껏 병원에서 한다는 소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이라니 그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내 김춘현 씨는 남편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

“여보,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에게는 3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잖아요. 감사한 마음으로 앞으로 남은 3개월을 30년처럼 지내요.”

아내의 말을 듣고 있자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퇴원 후 한 달 정도를 집에서 지내며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독한 화학요법을 받으며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도 권하지 않는 항암 치료를 받으며 아등바등하는 것이 우스운 짓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는 것보다 조용히 삶을 정리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아는 사람이 산에 집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바람이나 쐬라며 요양을 권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시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보다는 조용한 곳에서 깨끗하게 생을 마감하자는 생각이었다. 아내 역시 산과 집을 오가며 암환자에게 좋다는 것들을 구해오곤 했지만, 조금이라도 편히 지내기를 바라는 것 외에 큰 욕심이 없었다. 그렇게 죽을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데 몸이 나빠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가 선고한 3개월이 지나고, 다시 6개월…. 죽기는커녕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을 보냈는데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때 내가 그랬다니까. 이상하다, 왜 안 죽지?”  암을 대할 때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수술 후 줄기만 하던 몸무게가 산에서 지내고 1kg 가까이 늘면서 심 씨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살 곳을 찾아 지금의 거처를 마련했다. 그런데 산에 터를 닦기까지 상상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마당에 있는 나무와 텃밭, 연못의 돌멩이 하나까지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쳐갔다.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해냈다. 산 생활은 노동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을 한적한 전원생활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산 생활을 결심한 사람들이 다들 물어. ‘근데 밥은 어떻게 하나요?’ 한국 남자들이 자립이 안 되는 사람들이잖아. 엄마가 다 해주고, 결혼하면 마누라가 다 해주고…. 그게 가장 큰 문제야. 그래서 오지로 들어가면서도 마누라는 꼭 데리고 가잖아. 그래도 나는 선박생활을 오래해서 혼자 먹고 사는 건 큰 문제가 안 됐어.”

심광명 씨는 ‘암=죽음’이라는 공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암에 걸린 사람은 암으로 죽기도 하지만 자신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산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산에서 나오는 나물과 약초들로 최대한 자연식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비우고 ‘몸속의 나쁜 세포는 모두 없어지고, 건강한 세포가 생기고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 해. 어린아이처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믿는 게 암을 이겨내는 방법이야.”

점심시간이 되자 아내 김춘현 씨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잡곡밥과 맑게 끓인 미역국, 제철을 맞은 전어와 표고버섯 볶음, 된장과 간장으로 무쳐낸 참나물과 취나물, 신선한 생채소 등이 상 위에 올랐다. 김 씨는 최소한의 양념을 사용해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린다. 음식을 만들 때도 되도록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조리할 수 있게 한다.

“마음먹고 한번 먹는 것보다 꾸준하게 먹는 것이 좋아요. 먹는 사람도 그렇지만 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조리법이 편하고 간단해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거든요.”

기교를 부리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기본에 충실해 범상치 않은 내공이 엿보였다. 단순해도 직접 담은 장 덕분에 맛의 깊이가 있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양념은 모두 직접 담은 것으로 3년 이상 숙성된 된장과 재래종으로 담은 매실, 5년 이상 두어 간수 빠진 소금 등이었다. 소금에 간수가 빠지지 않으면 독소도 있지만 쓴맛이 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상을 내려다보던 남편은 “진시황제가 부럽지 않은 밥상”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자리에 앉자 아내는 방금 내린 녹즙을 건넸다. 8년 전부터 해오던 방식이다. 하루 세 번, 식전 공복에 마시는 녹즙에는 신선초, 케일, 민들레, 미나리, 돌나물 등이 들어가는데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김 씨는 녹색을 생명을 불어넣는 색이라고 칭하며 자생력이 강한 식물이 몸에도 좋다고 귀띔했다. 도시에 살면 일부러 구해야 하지만 산에는 지천에 널린 것들이다.

“사실 나 혼자 있을 때는 텃밭에 있는 채소 뜯어다가 밥에 넣고, 달걀프라이 두 개 부쳐서 된장 넣고 쓱쓱 비벼서 간단하게 먹어. 암환자들 보면 되게 까다롭게 구는데, 그럴 거 없어. 까다롭게 굴지 말고,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싸는 게 최고야!”

가족, 사랑과 인내의 또 다른 말
지금이야 산사람이 다 되었지만, 입산 초기에는 그 역시 많이 힘들고 외로웠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증과 외로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시시때때로 그를 조여왔다. 그럴 때마다 악착같이 산에 오르고 키보드를 연주했다. 산 생활 10년 만에 독학으로 마스터한 키보드 연주는 이제 수준급이다. 처음에는 어느 건반이 ‘도’인지도 몰랐지만, 이제 악보만 있으면 어떤 곡도 연주할 수 있다. 음악은 마음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친구였다. 어떤 때는 밤을 새워가며 키보드를 연주하기도 했다. 젊었을 때 귀를 다쳐 청력이 어두운 탓에 아내가 붙여준 그의 별명은 ‘베토벤’.

“한번 몰두하면 다른 소리는 안 들리나 봐요. 한번은 밖에 있는데 남편한테 전화가 왔어요. ‘여보, 놀라지 마. 집 안으로 물이 떨어지고 있어!’”

무슨 소린가 싶어 달려가 보니 태풍이 불어서 함석지붕이 마당에 나뒹굴고, 집 안으로 비가 들이치고 있었다. 남편은 지붕 날아가는 소리를 천둥소리로 착각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키보드 위로 빗물이 떨어지고 나서야 사태 파악을 한 것이다. 아내는 그 후로 식사 때마다 “베토벤 씨, 식사하세요”라고 놀린다. 심광명 씨는 앞으로 작곡과 작사에도 도전해 레코드를 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은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길과 닮아 있었다.

“아직도 아이처럼 천진해요. 어떤 때는 세상물정을 너무 몰라서 답답하다가도 저러니까 살았지 싶기도 해요.”

늘 장례식을 준비하는 기분으로 살았다는 심광명·김춘현 씨 부부. 이제는 새롭게 찾은 인생을 어린아이처럼 항상 감사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에 심 씨의 디스크 수술 때문에 병원을 찾기도 했지만 암 때문에 방문해본 적은 없단다.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지는 않았어도 22년 동안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 낼모레 죽을 거라던 사람이 이렇게 오래 살아서, 또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디스크에 걸렸다면 그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다.

미동도 없이 버티고 앉은 산은 초록의 향연만으로도 사람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성질 급한 뱃사람 심광명 씨조차 바람에게도 얘기하고, 나무에게도 말을 거는 시인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암으로 주저앉은 그의 뒤에는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넉넉한 산과 산보다 더 따뜻하게 그를 품어주는 가족이 있었다. 이 둘의 시너지는 어떤 암 치료보다도 강력한 항암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SBS 스페셜 <산에서 암을 이긴 사람들> 3인의 인터뷰
불편한 생활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 안희상(62) 산 생활 13년째

안희상 씨는 결핵성 늑막염이라고 해서 6개월간 치료를 받다가 차도가 없어 큰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폐암 3기. 모든 암이 그렇지만 폐암은 진행속도가 빨라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오진으로 6개월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결국 갈비뼈를 세 개 절단하고 왼쪽 폐를 통째로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종교에 의지하며 마음을 정리해가던 시기에 친구 하나가 화전민들이 살던 산골을 소개해줬다.

그곳의 생활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난방이나 취사를 할 연료도 마땅치 않았고, 겨울에는 추위가, 여름에는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스스로 청해서 들어간 곳이니 모두 감수하고 견뎌야만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안희상 씨는 청교도적인 생활 방식을 몸에 익히고 있어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라고 여기며 적응해갔다.

산등성이의 버려진 땅을 일궈 1천여 평 되는 밭을 만들고, 여기에 감자, 옥수수를 비롯해 콩과 당근, 시금치, 무, 배추, 매실까지 50여 종의 작물을 키웠다. 농약과 비료 없이 길러낸 채소로 수프를 끓여먹는데 암 수술 이후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부엌 한쪽에는 온갖 약재로 만든 효소와 나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산은 이렇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산에 오르면서 건강에 자신이 붙자 5년 전에는 아내와 함께 히말라야에도 올랐다. ‘트레킹 수준의 가벼운 등반’이라고 말했지만, 한쪽 폐로 해발 4천 미터까지 올랐으니 보통 의지와 체력으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수술 직후에 40퍼센트밖에 되지 않던 호흡률이 산에서 사는 동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산과 숲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머슴처럼 음식은 환자처럼 | 이삼구 (61) 산 생활 5년째

이삼구 씨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저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수술을 하고 이듬해 암이 재발했을 때 오히려 ‘이게 죽을병은 아니구나’ 싶었단다. 그러면서 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이 될 테고,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다 보면 아무래도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1천7백 평의 비닐하우스와 2천2백 평의 밭을 관리하는 지금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먹을 채소를 직접 기른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1년 동안 쓸 장작을 마련하려면 도끼질만 20일을 계속해야 한다. 산 생활은 거의 운동이고 노동이지만, 그의 작업량은 신체 건강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도 벅찰 정도다.

“저 양반이 처음에는 밭에서 30분을 못 버텼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침 먹고 나가면 어두워서 앞이 안 보일 때까지 밭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답니다.” 아내는 남편의 변화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몇 가지 생활수칙을 정해 두었는데 ‘마음은 정상인처럼 생각하고, 몸은 머슴처럼 부리고, 음식은 환자처럼 먹는다’는 것이다. 암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되 음식만큼은 철저히 가려 먹겠다는 생각이다. 암은 자연을 떠난 데서 생긴 병이니 그 해법 역시 자연과 가까운 곳에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조미료와 설탕을 멀리한다. 그 대신 약초나 열매로 담근 효소들을 이용하는데 음식 맛도 깔끔하고 탈이 나는 일도 없다. 산에는 도처에 널려 있어 부지런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이삼구 씨는 산에 들어와서 삶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았다.

인생의 가장 큰 고비를 이겨냈고, 즐겁게 살고 있으니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거뜬하다는 신념도 생겼다. 그러니 암에 걸린 게 오히려 고맙게 여겨진단다.

마음을 비워야 산이 받아들인다 | 정점호 (52) 산 생활 6개월째

정점호 씨는 산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마음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암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외롭지 않느냐고 묻지만, 외로운 것도 불편한 것도 다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다.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너무 호사스러운 고민이다.

그는 입산 6개월 만에 벌써 산사람이 다 되었다.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오진이라고 생각하며 믿지 않았단다. 선친이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기에 술도 자제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은 주변 림프절까지 전이되어 있었고, 대장을 통째로 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7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대장 전체를 적출해냈다. 남은 것은 자가치료라는데 혼자서 살아보라는 말처럼 들려 막막하기만 했다.

익숙한 것들 속에서 생활습관과 음식을 바꿔 새로운 삶을 만드는 것은 초인적인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산이었다. 처음에는 적적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병세가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여기라면 암을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즘은 단순히 산만 오르는 것이 아니고 약초를 찾아 돌아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도라지와 더덕도 구별 못하던 그가 산나물 박사에, 약초 박사가 다 된 것이다. 그렇게 산에 오르내리는 사이 병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이나 도시에 대한 아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자연스럽게 잦아들었다. 자신이 환자라는 것도, 요양하러 산에 들어왔다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산과 산속 생활에만 집중한다.

“수술 자국을 볼 때 외에는 스스로 환자라는 생각을 못하고 살아요. 저는 산이 체질에 맞나봐요. 산에 오르다 잠깐 앉아서 주변 풍광을 바라보면 거의 무아지경이에요. 거기다 솔잎 향 나는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면 더 바랄 게 없죠.” 
여성조선 / 취재 강보라 | 사진 강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