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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2021년 희망가] 난소암 수술 후 2번의 재발도 이겨낸 김미경 씨 12년의 기록

라이프케어 김동우 2021. 6. 9. 09:33

[2021년 희망가] 난소암 수술 후 2번의 재발도 이겨낸 김미경 씨 12년의 기록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마음의 평화를 찾으면서 장기 생존의 기적도 일어났어요”

 

2009년 10월, 난소암 수술을 했다. 3기 말에서 4기로 접어든 단계라고 했다. 온몸에 모래알처럼 퍼져 있는 암세포를 하나하나 떼어냈다고 했다. 항암치료 6차를 했다.

 

2010년 4월, 암이 1차 재발했다. 횡격막과 복막으로 전이됐다고 했다. 항암치료 9차를 했다.

2012년 5월, 암이 2차 재발했다. 대장, 소장, 직장, 방광에 붙어 있는 암세포를 제거했다. 간과 콩팥에 붙어 있는 암세포도 제거했다. 하지만 대동맥에 붙어 있는 암세포는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힘들겠구나.’ 마지막 준비를 하려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더 이상 재발, 전이도 없었다. 1년마다 하는 정기검진에서 암세포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2021년 4월, 현재도 마찬가지다. 두 번이나 재발한 암의 끈질긴 역습도 거뜬히 이겨내고 12년째 장기 생존하며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 전북 무주에서 새로 살 집을 짓고 있는 김미경 씨(55세)를 만나봤다.

 

 

 

 

 

2009년 3월부터…

골반 부위가 아팠다. 정형외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동네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도 찍어봤지만 자궁은 깨끗하다고 했다.

 

1년마다 하는 국가건강검진에서 자궁암 검사도 했다. 검사 도중 담당의사가 아랫배를 눌렀는데 통증이 심했다. 담당의사는 그 이유로 “자궁 내막이 두꺼워져서 그럴 수 있다.”며 처방전을 써주었다.

 

그래도 찜찜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던 이유다. 하지만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반 통증은 계속됐고, 또 다른 대학병원에 가서 MRI도 찍어봤다. 역시 별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왜 골반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답답했다. 그래서 또다시 찾아간 곳은 여성전문병원이었다. 그동안의 진료차트도 CD에 담아갔다.여기서의 진단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궁 내막이 두꺼워서 그런 것 같다며 긁어내는 수술을 하자고 했다. 2~3일 정도 입원하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2009년 10월,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실로 향했던 이유다. 하지만 그것은 가혹한 고통의 서막이 되고 말았다. 김미경 씨는 “눈 뜨고 나니까 중환자실이었다.”고 말한다.

 

수술 도중에 암세포 발견

 

‘가벼운 수술이라고 했는데 웬 중환자실?’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이상한 생각은 들었다. 피 주머니를 서너 개 차고 있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원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 상태로 2~3일이 지났을 때였다. 담당의사가 이상한 말을 했다. “남편한테 들었죠?”라고.
김미경 씨가 “뭘요?”하자 담당의사가 해준 말은 충격이었다.

난소암이라고 했다. 암세포가 모래알처럼 온몸의 장기에 쫙 퍼져 하나하나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고 했다.

김미경 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절을 해버렸다.”고 말한다.

 

청천벽력이었다. 수술실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이 암 수술까지 했다는 것이 기가 막혔다.

“저 살 수 있어요?” 다시금 정신을 차렸을 때 김미경 씨가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하지만 담당의사로부터 들은 말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5년 생존율은 낮다고 했다. 10%대라고 했다.

 

김미경 씨는 “그래도 0%가 아닌 것에 희망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루만 펑펑 울고 정신을 차렸다는 그녀다. 김미경 씨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며 “곧바로 독한 항암치료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재발하고 또 재발하면서 희망의 불씨도 점점…

 

항암치료는 고통스러웠다. 못 먹고 구토가 심한 것은 참을 만했다. 하지만 백혈구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3일 동안 맞으면서 39도까지 올라가는 고열에 3일 내내 시달리는 고통은 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김미경 씨는 “식구들이 걱정할까 봐 거실에서 홀로 밤새 얼음주머니를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고열과 싸우며 밤을 하얗게 새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힘든 항암치료를 6차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꼭 6개월 만에 다시금 찾아온 시련!

2010년 4월, 암이 재발했다. 횡격막과 복막으로 전이됐다고 했다. 또 다시 독한 항암치료를 9회나 해야 했다.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독한 항암치료를 이 악물고 견뎌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12년 5월, 또다시 암이 재발했다. 대장, 소장, 직장, 방광까지 침범한 암세포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간과 콩팥에 붙어 있는 암세포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대동맥에도 암세포가 붙어 있었지만 그것은 손도 못 댔다고 했다.

 

김미경 씨는 “두 번째 암 재발까지 되면서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고, 몸무게도 한꺼번에 10kg이나 빠져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이제 정말 끝인가 보다.’ 김미경 씨가 요양병원으로 향했던 이유다. 2012년 6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에덴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김미경 씨는 “마지막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 김미경 씨는 난소암 수술 후 2번의 재발까지 이겨내고 12년째 장기 생존의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다.

 

기사회생의 단초가 되어준 뉴스타트 건강법

 

2012년 6월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요양병원으로 향했던 김미경 씨는 2021년 4월 현재 전북 무주에서 새롭게 살 집을 짓느라 여념이 없다.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적성산이 집 뒤에 있고, 공기 좋고, 풍광 좋아 서울살이를 끝내고 무주에서 살 결심을 했다고 한다.

 

“건강은 어떻냐?”는 질문에 김미경 씨는 “그동안 암 재발도 없었고, 1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에서도 암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궁금해 하자 김미경 씨는 “뉴스타트 건강법을 알게 되면서 기사회생의 단초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알려주는 뉴스타트 건강법은 8가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①올바른 식사를 하고

②적당한 운동을 하고

③깨끗한 물을 마시고

④적당한 햇볕을 쬐고

⑤절제된 생활을 하고

⑥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⑦적당한 휴식을 취하고

⑧적절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김미경 씨는 “죽으러 찾아간 요양병원에서 뉴스타트 건강법을 알게 되면서 건강 회복의 실마리도 찾을 수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실천했다는 뉴스타트 생활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첫날부터 현미채식을 시작했다. 

거칠거칠 현미밥과 채소·과일 위주로 식사를 했다. 현미밥 1/4 공기를 한 시간 반 동안 죽이 되도록 꼭꼭 씹어 먹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밥맛이 꿀맛이었다. 한 달 동안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 먹었다.

 

둘째, 요양병원 안에 있는 운동장을 날마다 걸었다. 

천천히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일주일 쯤 지났을 때 방귀가 나왔다. 그 소리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방귀를 뀌면서 몸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다. 그러면서 산속에 난 길을 따라 산책을 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날마다 산책을 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셋째, 날마다 스트레칭을 했다. 

아침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스트레칭을 했다. 그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힘이 든 만큼 내 몸에 힘이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넷째, 날마다 1시간씩 웃음치료를 했다. 

거짓웃음을 웃어도 내 몸은 진짜 웃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도 알았다. 한 시간씩 실컷 웃고 나면 온몸이 개운하고 상쾌해서 좋았다.

 

다섯째, 즐겁고 기쁜 일은 적극적으로 찾아서 했다. 

산책길에 작은 야생화가 보이면 사진도 찍고 블로그에 올리면서 행복했고, 색소폰 소리에 반해 색소폰을 배워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김미경 씨는 “그런 생활을 한 지 3년이 흘렀을 때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고 말한다.

몸이 180도 달라졌다. 더 이상 암의 재발이 없었다. 3개월, 6개월마다 한 번씩 체크를 해도 더 이상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대동맥에 붙어 있던 것까지도.마음도 180도 달라졌다. 미워했던 마음 대신 용서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해가 안 됐던 마음 대신 포용하는 마음이 생겼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김미경 씨는 “그 시간이 바로 완전한 치유의 시간이 되어준 것 같다.”고 말한다.

 

2021년 4월 현재 김미경 씨는…

난소암 수술을 한 지도 어느덧 12년! 2021년 4월 현재 김미경 씨는 전북 무주에서 새롭게 펼쳐질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며 들떠 있다.김미경 씨는 “하루하루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한다.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도 감사하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1년마다 하는 정기검진에서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을 듣는 것도 너무도 감사하다.

 

 

▲ 김미경 씨는 투병 중에 색소폰을 배워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뭐든 즐거운 일을 찾아서 했다고 한다.

 

이 모두가 뉴스타트 생활을 실천한 덕분이라고 믿고 있기에 지금도 여전히 뉴스타트 생활을 실천한다는 그녀다.

간식 안 먹기, 식사 전 물 챙겨 먹기, 일어나자마자 스트레칭하기, 날마다 사과 한쪽 먹기, 날마다 산책하기, 저녁에 요가하기, 매일 족욕하기, 좋은 물 마시기, 가공식품 안 먹기 등은 그녀가 요즘도 날마다 실천하는 것들이다.

 

재발하고 재발하면서 생사의 기로에서 생지옥을 맛보기도 했지만 암으로 인해 몰랐던 행복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김미경 씨!

항상 스트레스 받고, 용서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몰랐던 삶이 암으로 인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용서하고, 이해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됐다. 지금은 산만 바라보고 있어도 즐겁고 행복하다.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것이 난소암 수술 후 12년간 장기 생존의 비결이 됐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일까? “암은 또 다른 축복의 통로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김미경 씨! 그런 그녀가 암 환우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는 하나다. 마음의 평화다. 평화로운 마음이 암 치유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안달복달 안 해도, 뭘 먹지 않아도 암세포는 저절로 떠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