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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시,수필]

열애-배경모.윤시내

라이프케어 김동우 2022. 6. 21. 17:52

 

열애-배경모.윤시내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영롱한 사랑

 

1970년대 부산문화방송 음악 프로듀서이자 심야 음악방송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인기 진행자였던 배경모. 광복동 무아음악감상실의 DJ로도 활동했던 그는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빼어난 문학적 감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 무슨 날벼락인가, 1978년 그는 36세의 한창 나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어린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둔 채 직장암으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는 암투병을 하던 병상에서 애절한 사랑의 시 한편을 지어 아내에게 바쳤다.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싸여

이 한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 배경모 작시 ‘열애熱愛’ 전문

 

 

불의의 병마로 느닷없이 배경모를 떠나보낸 젊은 미망인은 남편이 병상에서 지어준 시를 무아음악실에서 함께 활동한 작곡가 최종혁에게 건네주며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1978년 국제가요제에서 ‘공연히’로 데뷔한 신인가수 윤시내는 79년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배경모 작시, 최종혁 작곡의 ‘열애’를 열창, 제1회 TBC세계가요제 한국대표 가수로 선정됐고, 12월 9일 본선에서 대망의 은상을 차지했다. 윤시내가 혼신을 다해 애절하게 부른 ‘열애’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https://youtu.be/3j1PqlHahXg

 

 

영화 <겨울여자>로 스타감독이 된 김호선金鎬善은 DJ 배경모의 뜨겁고도 슬픈 <열애>를 부산의 무아음악실 등에서 100% 로케, 한 편의 극영화로 만든다. 배경모 역은 개성파 배우 김추련, 아내 지연 역은 나영희가 맡았고, 그밖에 송재호, 김미숙, 최윤석, 김신재 등이 출연했다. 특히 영화 속 가수 최백호 역은 신인 김종석이 맡았다. 1982년 영화 <열애>는 노승철 대표가 제작비 지원을 했던 부산 동명극장에서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봉되어 이곳에서만 12만 명의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첫날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동명극장에서 사인회를 열었는데, 배경모의 미망인 지연 씨를 특별히 초대하여 위로를 했다. 인기 DJ 배경모, 그의 뜨겁고도 애절한 사랑을 다룬 극영화답게 <열애>는 음악영화와도 같았다. 윤시내가 열창한 타이틀곡인 ‘열애’를 비롯하여 ‘DJ에게’, ‘너를 사랑해’ 등 많은 노래를 담았다. 또한 배경모가 임종 전 ’아내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를 무아음악실에서 그가 발탁한 가수 최백호의 노래로 들려주어 배경모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너의 이름은 지연이라 했다. 손을 담그면 손끝이 시려울 것만 같은 가을의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만났다. 나는 너의 애달픈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이면 너의 영혼마저 쏟아져버릴 것 같아.

 

지연아, 너는 그때 스물 하나의 꽃다운 나이였다. 서른여섯이 되도록 내가 한 일은 무엇일까?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고, 두 아이의 아버지였고, 목숨을 나누는 친구가 있고, 술잔에 담긴 시가 있었고, 그리고 나의 전부를 사랑해준 나의 아내 지연이가 있다.

 

이제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나의 친구다.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창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죽음인지 내 아내의 인내스러운 조용한 발소리인지 이젠 구별조차 할 수 없구나.

 

네 이름은 지연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이라기보다 변덕스러운 연인에 불과했다. 나는 알고 있다. 내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나를 지켜주는 이가 지연이냐, 너의 사랑.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음악도 끝나고 술병은 비웠고 친구들도 떠났다. 지연아, 너를 두고 이제는 내가 간다.

 

 

- 배경모, ‘아내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 전문.

 

배경모가 DJ로 활약했던 무아음악감상실. 부산의 음악 마니아들이 서울 ‘세시봉’을 부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이 음악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동 신라민예사 건물 4층 110평의 넓은 공간을 차지한 ‘무아無我’는 컴컴한 극장식으로 특징된다. 극장처럼 입구에서 티켓을 끊고 입장을 했고, 그 티켓은 신청곡과 사연을 적는 리퀘스트 용지이자 한쪽 귀퉁이를 찢어서 종업원에게 내밀면 커피나 음료수를 내주었다.

 

1975년 문을 연 이 음악실은 기존 클래식음악실과는 달리 팝송과 대중음악, 클래식을 번갈아 들려주었다. 특히 정면에 엄청나게 큰 DJ박스(음악실)가 자리했는데, 그 안에 피아노는 물론, 3만~4만장이나 되는 레코드를 꽂아놓는 높고 긴 판꽂이의 규모도 대단했다. 장기자랑 프로인 ‘프리 스테이지’ 시간에는 출연자가 DJ박스 안에 들어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거나 디스코를 추기도 했다.

 

7080세대의 데이트 필수코스로 꼽혔던 무아음악실은 무엇보다 DJ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는데, 그 자부심과 긍지 또한 대단했다. 배경모 밖에도 백형두, 세미(유문규), 지명길, 강동진, 이영철 등 부산 DJ의 주류들이 진행을 맡았다. 밀수품이 많던 당시 LP판은 부산에서 구하기 쉬워 새로 나온 팝은 이곳에서 인기를 얻어 입소문을 타고 서울로 전파될 만큼 당시 음악 트렌드를 부산이 주도했다.

 

국내 가요도 부산에서 히트를 쳐야 전국으로 인기를 넓혀갈 수 있었다. 그것은 부산문화방송 라디오 프로의 막강한 파워에다 프로듀서와 DJ들이 가요계 대부처럼 영향을 미친 때문이다. 부산mbc 라디오는 1959년 4월 15일 한국 최초의 민간상업방송으로 출범, 1961년 방송을 한 서울mbc보다 2년 앞선다. 부산mbc는 1959년 11월 한국 최초의 CM송 ‘진로소주’(손권식 작사, 허영철 작곡)를 만들어 방송했는데, 술과 관계없는 어린이들도 따라 부를 만큼 국민가요 이상으로 애창됐다.

 

60, 70년대는 라디오의 시대였다. 부산mbc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인기는 절정을 치달았다. DJ 배경모는 무아음악감실과 mbc의 ‘별밤지기’로 남다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직장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애절한 사랑이 윤시내가 노래한 가요 ‘열애’와 김호선 감독이 연출한 영화 <열애>로 재현되어 사랑의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극중 배경모 역을 맡아 열연했던 배우 김추련은 생활고와 우울증 등으로 2011년 김해에서 자살, 64세로 삶을 마감했다.

[출처] |작성자 최화수

 

열애..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아내에게쓴 마지막편지

너의 이름은 지현 이라고 했다
손을 담그면 손끝이 시려 올것만 같은
가을의 하늘 아래서 우리는 만났다

나는 너의 애달픈 눈빛을 잊을수가 없다
고개를 숙이면 너의 영혼마저 쏟아져 버릴것 같았다

지현아
너는 그때 스물하나의 꽃다운 나이였다

서른 여섯이 되도록 내가 한일은 무엇일까?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고
두아이의 아버지였고
목숨을 나눌 친구가 있고
술잔에 담긴 시가 있고
그리고 나의 전부를
사랑해준 나의 아내 지현이가 있구나

이제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나의 친구다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그러기에 창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죽음인지 내 아내의 염려스런 조용한 발소리인지 이제는 구별조차 할수없구나

너의 이름은 지현이라고 했다
나는 너의 남편 이라기 보다 변덕스러운 연인에 불과했다

나는 알고있다 내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나를 지켜주는 이가
지현이며 너의 사랑인것을
이제 모든것은 끝났다
음악도 끝나고 술병은 비었고
친구들도 떠났다

지현아
너를 남겨두고 이제는 내가 떠난다

[출처] 열애... 그리고 배경모|작성자 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