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동아일보]
암 투병 정신과 의사 김준기 고백
기사입력 2015-01-22 22:43:00
세상에는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를 감정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암 환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공포와 불안이다. 다양한 트라우마를 연구해온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는 3년 전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 감정의 실체와 마주했다.
의료진의 말에 상처받고, 암환자들의 위로에서 힘을 얻었다
“저는 이렇게 말해요. ‘아임 캔서링(I’m cancering), 나는 암이 진행되고 있다’고. 어떤 면에서는 (암을 이겨내는 데) 남들보다 나을 수 있으나, 한쪽 발은 죽음의 영역을 딛고 살아가는 셈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이해될지 모르겠지만, ‘좀비’나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기분이죠.”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53)는 놀랄 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지극히 이성적인 표정을 지으며 ‘내 고통은 뛰어넘었으니, 이제 당신을 치료하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던 터라, 예상치 않은 답변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암 환자로서는 건강한 행동이다.
“암 환자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요. 그러다 보니 그 감정들이 신체 증상이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로 찾아와요. 불안증과 우울증을 겪으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투병 의욕이 약화되죠. 그 감정은 자신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걸 설명할 수 있다면 치료할 수 있고, 또 나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알아차림’이 중요한 거예요. 본인의 감정을 알아차린다면,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 거예요. 그러나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죠.”
어느 날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2년 5개월 전만 해도 그는 누구보다 건강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 열성적이었고, 틈틈이 방송에 출연하는 한편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새로운 꿈에도 도전했다. 예상치 못했던 불행은, 그가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에 몰두하고 있을 때 다가왔다. 당시 그는 병원에서 오후 6~7시까지 진료를 하고 서울역으로 달려가 밤 12시가 넘도록 노숙자들을 돌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제게 욕심을 부린다고 했을 때는 ‘그게 왜 욕심이야?’라고 반문했지만, 몸을 생각하면 욕심이 맞았어요. 그때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밤낮 없이 일하면서도 힘든지 몰랐는데, 그게 쌓여 몸에 무리를 주었던 거죠.”
자원봉사자들과 맥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 어느 날 새벽, 그는 찢어질 듯한 복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서는 그 전날 먹은 것들을 전부 토해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소화가 되지 않았고 때때로 복통에 시달렸으며, 체중도 줄었고 쉽게 피곤해졌다.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병원을 찾아가 위내시경과 CT 촬영을 했지만 결과는 정상이었다. ‘독감의 후유증인가 보다’ 하고 안심했지만, 고통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로부터 3개월 후, CT를 찍었던 영상의학과 후배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 이상하다. 이거 아무래도 종양 같은데…. 이걸 내가 전에는 왜 못 봤지?”
그의 복부 중앙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임파선 암이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암이었다. ‘내가 왜? 도대체 왜?’라는 원망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집안에 그런 내력이 있었기 때문에 평소 더 각별히 조심했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받았고, 술·담배도 조심했으며, 비타민과 오메가 3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10년 동안 현미밥 도시락을 싸서 다녔을 정도였으니까요. 암 판정을 받고 나니 현미밥이 저를 배신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수술한 후 항암 치료를 받았으나 투병 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많은 환자들을 만나오면서 그 고통에 대해 간접적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직접 겪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막상 겪어보니 암 환자들이 그렇게 아픈 수술을 어떻게 견뎠는지, 제가 받은 것보다 더 센 항암 치료는 어떻게 이겨냈는지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때때로 엄습하는 극심한 만성적인 통증은 영혼을 마비시켰어요. 투병 의지마저 꺾었죠. 돌아가신 아버지께 뒤늦게 죄송하더라고요. 내색은 안 하셨지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니….”
김준기 원장은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이 환자를 치료했을 때 썼던 방법을 적용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자신이 가장 편안하고 안전을 느꼈던 시간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는 외할머니의 젖을 만지고 자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동생이 어린 시절 사진을 다 가져온 것이 도움이 됐다. 그 시절 사진을 통해 웃음을 되찾으면서, 고통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암에 걸렸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김준기 원장은 “암은 내게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살라는 메시지를 주었다”고 말한다.
암 환자들이 직면하는 상처들
김준기 원장은 “암 환자가 돼 좋은 점은 딱 하나, 아내와 사이가 좋아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극진하게 돌봐주는 아내를 보며 ‘내까짓 게 뭐라고 이렇게 잘해주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산부인과 의사인 그의 아내는 그가 투병 중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돌파구를 찾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그러나 아내와의 관계를 제외한 모든 것은 상처였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마음은 작은 것 하나에도 쉽게 흔들렸다.
“병원에 가면 우울해지고, 의료진에게 화가 났어요. 친구들조차도 내 고통을 몰라주는구나, 싶었고요. 죽음이라는 것, 어둠의 그림자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은 와 닿지 않았죠. 이런 마음이 사람들과의 소통에 방해가 됐어요. 같은 암 환자의 조언이 가장 울림 있게 들린 것 같아요.”
가장 큰 상처는 의료진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암 전문의들은 환자들에게 의도적으로 감정을 빼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특히 대학병원 의사들은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진료를 보느라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상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생존 기간을 말할 때도 평균치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제시한다.
“겁이 나서 후배 의사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어요.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굉장히 (인격적으로) 괜찮은 후배인데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기도나 하세요.’ 그 말을 듣고 ‘이 친구가 농담하나?’ 더 심하게는 ‘이런 자식이 다 있나?’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기도나 하라니, 노력해도 좋아질 게 없다는 말이거든요.”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상황을 이해는 한다. 의사로서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똑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같은 약을 써도 결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격려와 헛된 희망은 다른 것 같아요. 환자에게 의사는 생사권을 지닌 사람과 다름없을 텐데, 항암 치료를 받고 나면 ‘고생하셨습니다’ 정도의 위로가 되는 말은 건네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오죽했으면 우스갯소리로 ‘의사들이 (그 고통을 알기 위해) 항암제 한 번씩은 다 맞아봐야 한다’고 했다니까요.”
주변 사람으로 인한 상처도 있었다. 특히 우리가 흔히 위로라고 건넸던 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제가 투병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것이 ‘얼굴 좋아졌네!’ ‘선생님은 나을 겁니다’ ‘준기야, 잘될 거야’ 같은 이야기들이었죠. 그런데 그건 위로가 아니라 아픈 사람의 감정을 외면하는 말들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 ‘네가 뭘 안다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들었던 말 중 가장 위로가 됐던 건 ‘준기야, 허벌나게 아프지? 네가 암에 걸렸다니 놀랐다’였어요. ‘힘들었지?’ ‘도울 일 있으면 연락해’와 같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들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어떤 말을 전할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전하세요.”
김준기 원장은 트라우마 치료 전문가다. 그는 현재 서울 EMDR 트라우마 센터장, 마음과마음 식이장애클리닉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부 교수를 맡고 있다. 특히 안구를 움직이며 과거 기억을 떠올리면 그 기억과 엮인 고통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착안한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 요법(EDMR)’ 국내 권위자로, 국제 EMDR협회공인 치료 및 수련 감독자, 한국 EMDR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식이장애를 치료하면서 트라우마에 관심을 갖게 됐다. 거식증, 폭식증 등 식이장애야말로 ‘트라우마의 용광로’라고 할 정도로 개인의 트라우마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암 트라우마’가 추가됐으니,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암 투병 이후 전성기를 맞게 됐다.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자신의 투병 생활과 그 과정에서 겪은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담을 털어놓아 공감을 샀다. 암 투병기를 담은 ‘넘어진 그 자리에 머물지 마라’(수오서재)도 발간했다.
“제가 암 투병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암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닌, 경험에서 나온 지식이라 훨씬 공감을 할 수 있죠. 환자를 보면서 제가 오히려 도움을 받기도 하고요. 요즘 트라우마가 주목을 받으면서 덕분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강의를 하고 있어요.”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가 암 투병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를 믿고 의지하는 환자들이 떠나는 일도 생겨났다.
“가까운 사람을 암으로 보낸 사람들은 의사도 암 환자라는 사실을 힘들어했어요. 의사는 믿고 의지해야 하는 사람인데, 더 이상 그런 존재가 안 되는 거죠. 어떤 분은 제가 (항암 치료로 인한 탈모 때문에)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모습만 보고도 눈물을 보이시더라고요. 또 어떤 분은 ‘(다른 사람 치료할 생각하지 말고) 선생님부터 정신 차리고 사세요’라고 하더니, 진료를 마친 후 공기정화에 도움이 된다는 화분을 두 개 사오셨더라고요.”
건강하고 싶다면 절대 무리해서는 안 돼
암 투병을 겪고 나서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암 환자는 무엇을 먹어야 좋은가’ ‘암 환자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하는 것들이다. 그조차도 관심을 가졌던 부분으로, 그가 터득한 결론은 뭐든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 식생활의 기본 원칙은 ‘정제된 단 음식은 먹지 않는다’ ‘기름기가 많은 고기는 조심해서 먹는다’ ‘너무 짜게 먹지 않는다’하는 것들이에요. 어떤 특정 음식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만 집착하면 밸런스가 깨지기 쉽죠. 음식은 암을 일으키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이에요. 음식 외에도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운동이나 맑은 공기, 친구들과 보내는 좋은 시간 같은 것들이 암 치료에 있어서 중요해요. 다만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부정적인 스트레스로 옮겨가기 쉽거든요.”
그가 걱정하는 부분 역시 스트레스다. 자신의 연구 영역이 주목을 받으면서 의사로서 충만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로 인해 다시 무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몸은 이미 예전과 같을 수 없다. 그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책과 강연 등을 통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이해인 수녀를 떠올리며 “암 치료에 있어서는 삶의 유한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마음을 비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60세 이후에 암 선고를 받았다면 나머지 삶은 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50대에 암 선고를 받으니 덤터기 썼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잖아요. 암은 그 죽음을 10년, 20년 미리 준비하는 것과 같아요. 미리 준비할 수 있으니 더 지혜롭게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암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막상 솔직하게 말씀드리려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글쎄…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이 말밖에 못하겠네요. ‘환우 여러분,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제가 알고 있습니다.”
글·두경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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