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희망가]
사지마비에서 두 발로 걷기까지 고필호 씨 9년의 기록
“9년 만에 모기에 물린 것도 알게 됐어요”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하루아침에 사지마비가 됐다. 서른아홉 한창 나이에. 교통사고 때문이었다.1톤 트럭을 몰고 가다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마주오던 버스와 충돌했다. 다들 죽지 않은 것만도 천운이라고 했다.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사지마비였다.
그랬던 사람이 9년이 지난 지금 두 발로 걸어 다닌다. 비록 조금 뒤뚱거리지만. 최근에는 모기에 물린 줄도 알게 됐다며 너무나 감격스러워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남 무안에서 펜션지기로 살고 있는 고필호 씨(47세)를 만나봤다.
2014년 9월 3일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 날이기도 하다.목포에서 수산물 유통업을 하고 있던 고필호 씨는 “그날따라 일손이 딸려 직접 1톤 트럭을 몰고 학교 급식용 수산물을 배달하러 가던 길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마주오던 버스와 충돌하면서 의식도 잃었다.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꼼짝 못 하는 몸이 돼 있었다. 사지마비라고 했다. 경추 3~4번과 5~6번 사이에 있는 척수(경수)가 손상돼서 그렇다고 했다.
고필호 씨는 “하루아침에 손가락 하나 꼼짝 못 하는 몸이 돼버렸다.”고 말한다.서른아홉 한창 나이에 사지마비! 식물인간이 돼 버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먹여줘야 하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고… 너무 비참했다.
아들 3형제를 둔 가장이었다. 아이들도 어렸다. 막내는 유치원에 다녔다. 회사 직원도 20여 명이 되었다. 무안에서 펜션도 시작한 참이었다.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게 변했다. 시간은 멈췄고, 꿈은 사라졌으며, 미래는 암흑이 됐다.
젊디젊은 나이여서 너무 서러웠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억장이 무너졌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아내에게 미안해서 피눈물을 흘렸다.고필호 씨는 “그때 느꼈던 절망과 좌절감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어린 자식들한테 미안해서…
사지마비로 절망에 빠져 있던 고필호 씨가 재활운동을 시작했던 이유다. “어린 자식들한테 미안해서 용기를 냈다.”고 말한다.그런 그에게 아내는 천군만마와 같았다. 물리치료사 자격증이 있었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재활훈련에 돌입했다. 가장 먼저 한 운동은 관절구축예방운동이었다. 관절이 굳는 것을 막기 위해 손발운동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얼굴이 가려워도 손가락 하나 까닥 못 하는 몸으로 손발 운동은 어림없었다. 오롯이 아내의 힘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틈나는 대로 아내가 손발을 움직이면서 관절이 굳는 것을 막으려 갖은 애를 썼다.
고필호 씨는 “정말 갓 태어난 아기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먹는 것부터 대소변까지 모든 것을 아내가 다했다. 힘든 내색 없이 묵묵히 해냈다. 그런 아내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워서 속울음을 삼켜야 했던 나날들!
그렇게 1년이 가고 2년이 흘렀다. 그리고 4년째 되던 해였다. 고필호 씨는 “2018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해”라고 말한다.짧은 거리지만 지팡이를 짚고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틈만 나면 재활운동을 시켰다. 중추신경계 재활운동인 CLT운동을 하면서 재활 의지를 다졌고, 드디어 일어설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그 감격은 말로 다 못 한다. 재활운동을 시작할 때 아내는 소망했다.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그런데 지팡이를 짚고 살살 걸을 수 있게 됐으니 그 감격이야 말해 무엇하리. 고필호 씨는 “비로소 한 줄기 희망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자꾸 권해서 맨발걷기를 했더니…
지팡이를 짚고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CLT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고필호 씨!
CLT 운동을 통해 일상적인 동작 하나하나를 새롭게 익혀나갔다.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쉬운 동작도 전략을 세우고 꾸준한 연습을 해야 했다. 바보가 된 몸을 다시금 회복시키기 위해 악착 같이 훈련했다.
그런 노력이 통했던지 2020년에는 지팡이 없이도 뒤뚱뒤뚱 걸을 수 있게 됐다. 비록 짧은 거리만 가능했지만 이것도 어디냐 싶었다.그런 그에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꼭 해보라며 권한 운동이 있었다. 맨발걷기였다. 맨발걷기를 하기에 최적지에 살고 있으니 꼭 한 번 해보라고 신신당부했다.
고필호 씨는 “평소 응원도 많이 해주시고 존경하는 분이기도 해서 꼭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고 말한다.걸핏 하면 넘어지고 발바닥에 감각도 없어서 바닷가 갯벌을 걸을 수 있을까 싶었다.그랬던 그가 무안 바닷가 갯벌에서 맨발걷기를 시작한 것은 올 4월의 일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맨발걷기 유튜브를 보면서 ‘나도 한 번 해볼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의외로 힘들지 않았다. 발바닥 감각은 없었지만 평지를 걷는 것보다 푹신한 황토갯벌을 걷는 것이 더 좋았다. 그때부터 종종 바닷가로 나가서 맨발걷기를 했다.그런데 15일째 되던 날 깜짝 놀랐다. 왼쪽 오금에서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고필호 씨는 “ 9년 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고 말한다.
발가락이 빠져도 몰랐던 그였다. 양발을 벗자 발가락이 덜렁덜렁 빠져 있었던 적도 있었다.그런데 왼쪽 오금에서 파스를 발랐을 때처럼 화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게 만약 감각을 되찾는 신호라면?’ 가슴이 뛰었다. 고필호 씨는 “맨발걷기를 더 해봐야겠다 결심도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신호는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맨발걷기를 계속하자 오른쪽 오금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맨발걷기를 일삼아 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두 번으로 횟수도 늘리고, 시간도 늘렸다. 그러자 그 화한 감각은 뒤꿈치를 거쳐 앞쪽 정강이까지 나타났다.고필호 씨는 “운동 후 샤워를 하고 선풍기 바람에 몸을 말릴 때처럼 시원한 느낌이 드는 그런 감각이었다.”고 말한다.
모기에 물린 줄도 알게 됐어요!
2023년 7월 중순 전화 통화에서 고필호 씨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는 모기에 물린 줄도 알게 됐어요!”
바닷가에서 맨발걷기를 하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따끔’ 해서 다리를 보니 양쪽 다리에 모기가 시커멓게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9년 만에 다시금 느껴본 감각이었다. 사지마비가 된 후 모기에 물려도 감각조차 없었다.
고필호 씨는 “맨발걷기를 하면서 하나둘 감각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아 많이 놀라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그래서 지금은 맨발걷기 마니아가 됐다고 말하는 고필호 씨! 날마다 시간 날 때마다 펜션 계단만 내려가면 있는 무안 황토갯벌에서 맨발걷기를 한다. 집에서도 신발을 벗고 다닌다.
고필호 씨는 “9년 재활 인생에서 일생일대의 모험도 시작했다.”고 말한다. 잘 때마다 5~6차례 강직이 나타나는 몸. 쥐가 난 것처럼 하반신 강직이 나타나면 잠도 못 잘 만큼 고통스럽다. 어떨 때는 온몸이 돌돌 말리는 강직도 나타난다. 수시로 나타나는 강직은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날마다 취침 전에 신경외과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잔다. 그래서 결코 끊을 수 없는 약이다.
고필호 씨는 “그 약을 끊은 지 5일째”라며 “놀라운 것은 4일째까지는 약을 안 먹어도 강직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런데 5일째 되던 날 새벽, 비가 오면서 강직이 한 번 있었다. 그래도 너무 좋다고 말한다. 고필호 씨는 “분명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어 희망에 부풀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가 맨발걷기 덕분인 것 같다고 말하는 고필호 씨! 맨발걷기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기에? 이 물음에 고필호 씨는 “맨발걷기를 하면 우리 몸속의 신경 다발도 뚫어주고, 체내 정전기도 중화시켜 강직이 풀리고 감각이 되살아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앞으로 재활치료와 맨발걷기에 사활을 걸겠다고 말하는 고필호 씨! 좀 더 몸이 좋아지면 아들 3형제와 함께 축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숨 쉬는 것처럼, 햇볕을 쬐는 것처럼 맨발걷기를 하라고 권한다. 돈도 들지 않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맨발걷기는 신이 내린 축복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자료출처: 건강다이제스트
http://www.ikunk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8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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