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장암 3기를 극복한 비결은 ‘회복 탄력성’
나는 암 경험자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2008년 9월 대장암(S결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44세였는데, 벌써 13년이 더 지났다. 나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병원에서 권유하는 횟수의 3분의1만 받았다. 당시에는 가장 효과가 좋다는 항암제 2종류를 섞어 2주에 한 번씩 총 12회 정맥주사로 맞는 치료였는데, 4회를 맞은 뒤 내 스스로 중단했다.
대신 2년4개월 간 회사를 쉬면서 내가 계획한 방식으로 암 투병을 했다. 사실 투병이라기보다는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암 관리를 철저히 했을 뿐이다. 항암치료 부작용(탈모, 손발저림 등)이 조금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오래 가지 않은 덕분에 항암치료를 끝까지 받는 환우에 비해서는 삶의 질이 나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은 ‘암 이전’과 ‘암 이후’로 나뉜다. 대장암 발병 이전에는 팔팔하던 20대에 세웠던 삶의 목표를 향해 옆도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했다. 당시에는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과에 대한 만족감으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내 몸 관리에는 소홀했다.
그런데 암을 계기로 내 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2012년 말에 쓴 책의 제목을 <나는 암이 고맙다>로 정한 것은 암을 통해 달라진 내 삶의 모습이 그만큼 좋았다는 증거다. 암 진단 후 5년이 지나지 않아 완치 판정을 받지도 않은 시점이었는데 어떻게 감히 “나는 암이 고맙다”고 대놓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도 나는 암이 고맙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의 책에 나온 몇 문장을 인용한다. <회복탄력성-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 근력의 힘>에서 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회복 탄력성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이다. 성공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 떨어져본 사람만이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고, 추락해본 사람만이 다시 튀어 올라가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듯이 바닥을 쳐본 사람만이 더욱 높게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비밀이다."
암은 누구에게나 큰 역경이고 고난이다. 어떤 사람은 암을 계기로 삶이 달라지고 행복해졌다고 말하지만, 어떤 사람은 안타깝게도 암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암환우 자신의 선택이다. 김주환 교수는 역경과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 1대2이며, 회복 탄력성은 체계적인 노력과 훈련을 통해 키워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단어가 마음 근력, 곧 마음 근육의 힘이다.
나는 암환우 뿐 아니라 공공기관, 기업체 임직원 대상으로 건강 강의를 자주 한다. 내가 암을 완치한 경험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알리고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아보는 강의다.
강의의 핵심 키워드는 ‘몸맘 건강’이다. 몸 건강과 마음 건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몸과 마음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쪽도 함께 무너진다. 암 환우를 위한 코칭, 상담, 강의를 할 때마다 마음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게 암 극복의 핵심이기도 한 면역력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지 11년이 되어가는 웃음치유 모임 ‘웃음보따里’ 동호회에서 만난 수많은 암 경험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암을 계기로 삶이 더 풍요로워졌고, 그래서 암이 고맙다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암 덕분에 잊고 살았던 자기 자신을 돌보게 되고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하루 하루가 기대되고 행복해졌다고도 한다. 이제 막 암 진단을 받았거나, 힘겹게 치료를 받는 분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암 덕분에 얻은 게 많다"는 건 거짓이 아닐 것이다. “암 덕분에"라는 단어보다 더 회복 탄력성을 잘 설명해줄 수 있는 표현이 있을까?
암 진단을 받으면 우리는 대부분 큰 충격을 받는다. ‘암=죽음’이라는 공식을 떠올린다. 항암 같은 표준 치료로 인한 부작용도 각오해야 한다. 현실 부정, 자기 비판, 좌절의 부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반대로 삶 자체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킨 분도 적지 않다.
암을 계기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뀐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김주환 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체계적인 노력이나 훈련을 통해 마음 근력을 키운 사람들이다. 암 수술 직후부터 지금까지 내가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방법은 김 교수의 마음 근력 키우기와 다르지 않다.
편지나 일기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 갖기, 자기 용서, 자기 수용, 자기 존중, 타인 용서, 타인 수용, 타인 존중, 명상, 규칙적인 운동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뇌의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키고, 긍정적인 정서를 유지해서 ‘진정한 행복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면 회복 탄력성은 키울 수 있다고 김 교수는 말한다.
조벽 고려대 석좌교수(HD행복연구소 공동소장)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뇌도 바꾸고 삶도 바꾼다"고. 조벽 석좌교수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삶의 본능 때문에 부정적인 마음을 갖고 산다고 한다. 외부에서 공격을 받을까봐, 식량이 떨어져 굶을까봐 끊임없이 걱정하고 경계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루에 일어나는 오만가지 생각 중에 70~80%가 부정적이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그 생각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속되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로 인해 내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 몸 건강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암환우는 더 심하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우리 마음에 개입해야 한다. 조벽 석좌교수에 따르면 평소에 우리 인간은 긍정적 마음 1, 부정적 마음 3의 비율을 유지한다. 따라서 부정적인 마음의 3배쯤 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행복하게 산다. 이를 ‘1대3의 법칙’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에 돈 안들이고 실컷 할 수 있는 게 바로 감사하기다. 감사하기라는 긍정적 실천을 통해 부정적 감정을 상쇄시키면 행복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조벽 석좌교수의 주장이다.
여기에 몸에 좋은 음식 먹기, 충분한 수면 등 건강에 유익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게 암환우가 면역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웃음 하나를 더 보태면 마음 근력을 키우는 강력한 수단을 다 갖추게 된다.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도 그 진가를 모르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암 때문에 생기는 부정적인 생각 대신 암을 계기로 우리 인생을 새롭게, 긍정적으로 바꿀 회복 탄력성을 믿어보자고 이 순간 힘겹게 암과 싸우는 분들께 말하고 싶다.
홍헌표
- 암전문언론 캔서앤서 발행인
- 대장암 3기 완치 경험
- <나는 암이 고맙다> <암과의 동행 5년> 저술
- 웃음치유 모임 ‘웃음보따리’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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