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희망가]
편도암에서 담낭암까지…6개월 시한부였던 김두규 씨의 생환기
“두 번의 기적으로 오늘을 삽니다”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기적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2019년 5월, 갑자기 편도암 진단을 받으면서 건강에 위기가 닥쳤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로 죽을 고생을 했지만 6개월마다 추적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놀란 가슴 쓸어내렸다. 그런 안도감도 잠시! 2년 후 또다시 덮친 건강 위기는 생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2021년 6월, 담낭암이라고 했다. 간, 췌장, 림프, 부신까지 전이된 상태라고 했다.
황달이 심해 수술도, 약물치료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물어봤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그때 담당의사로부터 들은 말은 ‘6개월 시한부’였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나이 65세에. 그래서 유서를 쓰고 죽을 준비도 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에덴요양병원으로 향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6개월 시한부를 이겨냈다. 2년이 지난 지금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두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 김두규 씨(67세)를 만나봤다.
2019년 5월 초에…
건강검진을 했다. 그런데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목 안쪽에 돌출된 부위가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직장 근처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일주일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때 김두규 씨가 들은 말은 ‘편도암’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암이었다. 막막했다. 가족들에게는 차마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선뜻 결정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가톨릭의대 연구원으로 있던 둘째딸의 조언은 큰 힘이 됐다.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한 번 더 했고, 수술 대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만 해도 될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김두규 씨는 “2019년 7월부터 8월까지 항암치료 2회, 방사선치료 16회, 중성자치료 12회를 동시에 하면서 편도암을 치료했다.”고 말한다.
목이 헐고 식사도 못했다. 구토와 오심, 소화불량, 변비까지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행운아’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김두규 씨다. 2019년 12월 전신 PET-CT 결과 아무 이상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두규 씨는 “그 후로 6개월마다 추적 관찰만 하면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2021년 6월에…
편도암으로 치료를 받은 지 2년이 흘렀을 때였다. 어르신들한테 정보화교육을 시키던 봉사활동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2021년 6월 7일, 점심 식사 후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복부에 가스가 차고 소화불량 증상도 생겼다. 그래서 저녁은 식사를 안 했다. 활명수를 먹고 자면 낫겠지 했다.
그런데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배에 가스가 차면서 복부가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극심한 소화불량 증상도 나타났다.‘백신을 맞아서 그런가?’ 일주일 전 코로나 백신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백신 맞은 병원에 갔더니 백신 후유증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일주일 치 약을 처방해주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에도 복통은 계속됐다. 갑자기 황갈색 소변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집 근처 병원으로 갔던 이유다.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검사를 하고 소변검사도 했다. 그러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소견서도 써주었다.
김두규 씨는 “그날 저녁 곧바로 대형병원 응급실로 갔다.”며 “새벽 4시 30분까지 각종 검사를 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응급실 주치의로부터 들은 말은 “결과가 안 좋게 나왔다.”는 거였다. 내과 교수도 연결시켜 줬다. 정확한 병명도 비로소 듣게 됐다. 담낭암이라고 했다. 간, 췌장, 림프까지 전이가 된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황달이 심해서 어떤 치료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우선 황달부터 치료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담관에 스텐트 시술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김두규 씨는 “또다시 암이라는 말도 충격인데 그 어떤 치료도 할 수 없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 말한다.
유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
우여곡절 끝에 서울아산병원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스텐트 시술을 했지만 황달 수치는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정상적인 빌리루빈 수치는 0.2~ 2.2인데 23~24까지 치솟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온몸이 노래졌다. 얼굴은 새까매졌다. 눈도 노래졌다. 사람 몰골이 아니었다.
황달 수치를 내릴 약조차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병원에서도 황달 수치가 내려가지 않으면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했다. 급기야 퇴원하라고 했다.
김두규 씨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이라도 붙들고 싶어서 담당 주치의한테 물어본 것이 있었다.”고 말한다.
“몇 기인가요?” 그때 그가 들은 말은 “기수가 없다.”는 거였다. 이미 전이가 돼서 무의미하다는 거였다. 남은 여명도 6개월 정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 심정이야 듣지 않아도 짐작될 것이다. 김두규 씨는 “병원에서 집으로 가라고 했을 때 체념도 했다.”며 “집에 와서 죽을 준비를 했다.”고 말한다.
유서를 썼다. 부고장도 작성했다. 부고를 알릴 명단도 정리했다. 그런 다음 요양병원으로 갈 결심을 했다.
김두규 씨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에서 죽고 사는 것은 이미 내 소관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며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요양병원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끈질긴 황달의 덫
죽을 준비를 하기 위해 요양병원으로 향했던 김두규 씨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행운의 징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네잎클로버 사진이다. 찍힌 날자는 2021년 7월 18일이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에덴요양병원을 답사하던 중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 김두규 씨는 죽을 준비를 하기 위해 요양병원에 간 날 발견한 네잎 클로버 사진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김두규 씨는 “황달이 심하면 일광욕을 하는 것이 좋은데 다행히 에덴요양병원에 일광욕장이 있어서 답사를 하다가 눈에 띈 네잎클로버”라며 “어떤 계시처럼 느낌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요양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견딜 만했다. 김두규 씨는 “뉴스타트 건강법을 알게 되면서 ‘혹시?’ 하는 희망도 생기더라.”고 말한다. 뉴스타트 건강법으로 암을 이겨낸 사람이 많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알려주는 뉴스타트 건강법은 8가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올바른 영양 섭취하기 ▶적당한 운동하기 ▶적당한 물 마시기 ▶적당한 햇볕 쬐기 ▶절제하는 생활하기 ▶맑은 공기 마시기 ▶적당한 휴식 취하기 ▶신뢰하는 마음 갖기다.
김두규 씨는 “요양병원에 들어간 첫날부터 먹는 것부터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현미채식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저염식·무염식을 먹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힘들었다. 하지만 요령을 터득하니 먹을 만했다. 밥은 밥대로 먹고, 반찬은 반찬대로 따로따로 먹으니 맛이 있었다.
날마다 햇볕을 쬐면서 운동도 하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물 마시는 요령도 익혀서 실천하기 시작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도 알게 됐다.그렇게 생활하면서 김두규 씨가 바라고 바란 것은 단 하나였다. ‘제발 황달 수치가 내려갔으면….’
하지만 황달 수치는 좀체 내려가지 않았다. 몸도 노랗고 눈동자도 노랬다. 온몸도 가려웠다. 황달 후유증이라고 했다. 잠을 못 잘 정도로 가려웠다. 잠을 못 자니 간은 더 나빠지고…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김두규 씨는 “결국 미루고 미루던 시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배에 구멍을 내고 관을 넣어서 담즙을 체외로 배출하는 시술을 했다.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었지만 담즙 주머니를 차고 생활하게 됐다. 참으로 불편하고 고통스런 일이었다. 옆으로 누울 수도 없었다. 운동할 때도 담즙 주머니를 들고 운동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참아낸 보람은 있었다. 한 달 후, 끈질기게 괴롭히던 황달 수치에 변화가 있었다. 2021년 9월 초 검사에서 빌리루빈 수치가 28에서 2까지 떨어졌다. 담당 주치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황달 수치가 떨어지자 상황도 많이 변했다. 뭐라도 해볼 수 있게 됐다. 주치의는 항암치료를 하자고 했다. 수술은 할 수 없으니 그것밖에 다른 길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치료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생명을 조금 연장시키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고민이 됐다. ‘조금 더 살자고 힘든 항암치료를 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후회를 남기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는 주변의 조언에 따라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1차, 2차까지는 견딜 만했다.
하지만 3차 때부터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는 게 아니었다. 먹을 수도 없고 거동하기도 힘들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 상태로 항암치료를 8회까지 이어갔지만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암이 더 커졌다고 했다. 항암제에 내성이 생겨서 그렇다고 했다.담당의사는 약의 강도를 높여보자고 했지만 거부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다만 주치의에게 한 가지 부탁만 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한 번 봐 달라고.
김두규 씨는 “그것이 두 번의 기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두 번의 기적을 일으킨 것!
항암치료에 대한 내성이 생기면서 더 이상 해볼 것이 없는 상황에서 김두규 씨가 선택한 것은 “면역치료제였다.”고 한다. ‘옵디보’라는 면역항암제였다. 유전자 검사 결과를 참고하여 선택한 면역항암제였다. 비록 보험은 안 됐지만 후유증이 없었다.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30분이면 맞을 수 있어서 정상적인 생활도 가능했다. 김두규 씨는 “면역항암제 옵디보를 맞기 시작하면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첫 번째 기적은, 담즙이 멈췄다는 것이다. 배에 구멍을 내고 관을 넣어서 담즙을 빼내던 담즙 주머니에 담즙이 고이지 않았다. 옵디보를 3번 맞은 후 나타난 변화였다.‘뭐가 잘못됐나?’ 겁이 나서 검사를 해본 결과 빌리루빈 수치는 정상이었다. 담당 주치의는 “담즙이 안 나오니 담즙 주머니를 떼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김두규 씨는 “2021년 10월, 담즙 주머니를 떼고 산책을 가니 날아갈 것 같더라.”며 “담즙이 멈춘 것은 누가 뭐래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두 번째 기적은, 종양표지자(CA19-9)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옵디보를 4번 맞고 CT 검사와 혈액검사에서 그렇게 나왔다.김두규 씨는 “2000~3000까지 치솟았던 종양표지자 수치가 옵디보를 4회 맞고 CT와 혈액검사를 해보니 59.7로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러자 담당 주치의도 “약효가 제대로 나타났다.”며 좋아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옵디보 면역항암제를 8회 맞았을 때는 종양표지자 수치가 16.4까지 내려갔다. 0~37까지가 정상인 점을 감안하면 마침내 ‘정상’이 되었던 것이다.김두규 씨는 “2022년 4월 18일 드디어 종양이 안 보인다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담낭, 간, 췌장, 림프, 부신까지 전이됐는데 다 안 보인다고 했던 것이다.
김두규 씨는 “기적을 믿지 않았는데 정말 기적은 있더라.”고 말한다.
2023년 10월 김두규 씨는?
지금도 3주에 한 번씩 옵디보 면역항암제 주사를 맞고 있다는 김두규 씨!
혼자 운전하고 가서 30분 정도 항암주사를 맞고 온다. 무엇보다 일상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부작용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걸 2년째 보고 있는 것도 꿈만 같다.
김두규 씨는 “아마도 요양병원에 들어오기 전날 꾸었던 꿈 덕분인 것 같다.”고 말한다. 시한부 6개월이라 했는데 2023년 5월 31일까지 산다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이 현실이 됐다. 그래서 요양병원 사람들에게 축하 떡을 돌리기도 했다. 김두규 씨는 “2023년 5월 31일 죽지 않고 살아서 떡을 돌린다고 하니 먹지 않고 보관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찾아와서 기를 받겠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한다.
끈질기게 나오던 담즙도 멈췄고, 육안으로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고 들은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째다. 여전히 면역항암제 주사는 맞고 있지만 지금껏 살아 있는 것도 꿈만 같다는 김두규 씨는 “늘 초심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 6개월 시한부를 통보받았던 김두규 씨는 “저 같은 사람도 살아 있으니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기적 같은 오늘을 살고 있는 데는 뉴스타트 건강법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기에 지금도 철두철미하게 뉴스타트 건강법을 실천한다.
▶아침 5시 30분이면 반드시 일어나서 공복에 물부터 마신다. 따뜻한 물과 찬물을 섞어서 미온수로 마신다.
▶그런 다음 뒷산을 오른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곳에서 일광욕도 하고 스트레칭도 한다.
▶아침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한다. 베란다에 식탁을 놓고 햇볕을 쬐면서 아침밥을 먹는다. 현미채식을 한 시간에 걸쳐 먹는다. 밥은 밥대로 꼭꼭 씹어 먹고, 반찬은 반찬대로 꼭꼭 씹어 음미하며 먹는다.
▶아침 식사 후에도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요가, 웃음치료, 라인댄스, 통기타 등등. 특히 통기타는 공연을 할 만큼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
▶물은 식후 2시간 후부터 수시로 마신다. 하루 2리터 정도는 꼭 마신다.
▶식사 전에는 반드시 과일을 먹는다. 아침 식사 전에 사과, 점심 먹기 전에 바나나를 먹는 식이다.
▶점심 식사 후 맨발걷기도 꼭 한다. 모래사장에서 1시간 정도 햇볕을 쬐면서 맨발걷기를 한다.
▶저녁 식사 후에는 족욕을 꼭 하고 9시 30분에는 반드시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생활하면서 자타 공인 ‘모범생’으로 불린다는 김두규 씨! 몇 시에는 어디에 있는지 다들 짐작할 정도로 규칙적으로 살기 때문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으니 통증이 있어도 “살아 있는 증거로 느껴지더라.”고 말하는 김두규 씨가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전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온몸으로 전이된 암세포로 시한부 6개월을 선고 받은 저 같은 사람도 살아 있으니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진심을 담아 전하는 그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바라본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출처: http://www.ikunk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39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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