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병원 김희철 교수님의 요즘 경험한 몇가지 단상들
한두달에 한번씩은 글을 쓰곤 했는데 약 9개월동안 글을 쓰지 못했더군요. 새삼 느끼면서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갑자기 바빠졌나, 혹은 무슨일이 있었나? 생각해 보지만 별로 특별한 것은 생각나지 않는군요. 그래도 곰곰 생각해 보면 혹시 요즘 지나치게 각박하게 지내는 것은 아닐까? 혹은 나도 모르게 심적이 부담감을 (여러가지 면에서) 느끼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런 것이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혹시 제가 하고 있는 일 즉 환자를 치료하고 대하는데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됩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마음먹고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달필도 아니고 전혀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요즘 생각나는 몇가지 일들에 대한 단상들 그리고 들었던 고민들 몇가지가 혹시 여러분께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적어봅니다.
항상드리는 말씀이지만 제 카페에 쓰는 글이라도 여러 사람이 볼 수 밖에 없고 제 생각과 전혀 다른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하지 않다면 "김교수의 횡설수설"란은 그야말로 제 생각을 횡설수설 적는 곳이기에 오해가 없기를 바라면서 작은 생각들을 써나갑니다.
1. 얼마전 수술하신 젊은 여자분, 재발성 암으로 방광과 항문을 없애고 장루 및 요루를 달았습니다. 수술후 중환자실에서 스트레스성 신경증이 발생하셨습니다. 이런 경우 간혹 보는 일이지요. 정신은 있으신데 나이를 물어보면 전혀 다른 나이를 말하는 식입니다.
사실 아직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며칠동안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수술후 2-3일 후부터는 이제 나이 정도는 또렷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그러셨어요하고 물었는데 대답이 뜻밖이었습니다. "두려워서, 아무도 자신이 이렇게 힘든 것을 모를 것 같아서 무서워서 그렇다."고 하시더군요.
사실 남편을 포함한 보호자분들이 매우 정성을 기울이는 것을 제가 알고 있기에 "남편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하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사실 아주 사근사근 답하지는 않았지요. 오히려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환자가 우시더군요.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어도 환자들은 정말 외로운 모양입니다. 아전인수격이지만 '제가 알고 있다'는 말에 더 우시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의사는 어쩌면 재발이 되어 너무 힘든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덜어 줄 수도 있는 사람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있을 수도 있는, 암이 많이 진행된 환자들은 정말 외롭고 무서워하고,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2.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 혹은 암의 치료률을 높이기 위해서 과연 의사는 그리고 환자는 얼마만큼 손해를 감수해야 할까요.몇가지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비교적 관심을 가지고 수술을 시행하는 분야가 재발암이나 전이암에 대한 수술입니다. 많은 동료들이 약간은 대견하다는 느낌으로 약간은 좀 안됬다는 느낌으로 절 보기도 합니다.
재발 혹은 전이암의 많은 경우는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다른 의사 선생님들은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도 가끔씩 제가 판단하기는 수술을 시도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께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을 들엇는데 제가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 환자분이 있다면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사실 수술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대답이 가장 쉽고 저에게도 여러가지로 편할 수 있는 답변입니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제가 알고 있는 경우,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처럼 수술이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가능성을 또 수술을 시행해도 암을 제거하지 못할 가능성을 반드시 환자분께 말씀드리고 수술을 진행합니다. 또 수술을 진행했을때 얼마만큼의 위험도가 있을 수 있고 합병증이 생길 수 있는지를 설명하려고 나름 노력합니다.
요즈음에도 몇 건의 재발암 수술이 있었고 대부분 원하는 만큼 암의 제거를 하였지만 수술후 합병증의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다행이도 아주 치명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일이 많이 걸려야 해결되는 합병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환자의 입장에서는 참 힘든 일임에는 틀림이 없겠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섭섭하고 환자의 치료경과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합병증이 있더라도 치명적이지 않다면 이를 어느정도 마무리 하고 다음 단계 즉 영양상태의 호전과 요양을 거쳐 항암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재발암은 수술한다고 해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70%가 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수술후 합병증의 완전한 해결이 우선되고, 다음 치료에 대한 준비는 망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소변에 문제가 있는 요루가 발생했더라도 당장 감염등의 합병증이 없다면 이를 어느 정도 수습하고 장기적인 치유를 기다리면서 항암치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다음 단계의 치료를 계획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를 잘 설명해 주지 못한 것은 의사들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도 역시 어리섞은 사람인지라 간혹 환자분, 보호자분들이 이런 중요한 것을 가끔 잊으신다고 생각하면, 또 제 계획을 잘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면 사실 화가 나기도 합니다.
가령 어떤 환자분의 회진때 이런 전반적인 것들은 잘 모르시고 즉 암의 제거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나머지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잘 이해 못하시고, 제 계획에 대하여 불신하실때 참 어렵습니다. 더 힘드는 것은 이런 합병증이 암과는 상관없이 수술시 사고를 치고 마무리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스러운 눈치를 주실때 입니다.
얼마전 이런 비슷한 일을 회진시 경험했는데 저도 인간인지라 좀 슬프고 화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환자분 회진을 돌고 나오는 길에 또 한마디 들었습니다. "선생님 너무 큰 수술하지 마세요. 간호사들이 많이 힘들답니다." 이어서 옆에 있던 젊은 의사선생님도 "선생님 합병증 생기면 트러블이 많이 생깁니다."
아!!! 슬프고 기운빠져서 그냥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환자에게 퉁명스럽게 대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쉽긴 합니다.)
이런 일이 자꾸 생기면 힘든 수술은 이제 피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아쉬웠습니다. 그런 수술로 치유된 환자들도 있는데...
3. 첫수술을 8년전 아산병원에서 하신 환자분입니다. 그때도 간전이가 있는 4기환자분이셨지요. 그 이후 재발, 또 수술, 재발, 고주파치료, 또 재발, 삼성병원으로 옮긴후 다시 수술, 그리고 며칠전 씨티에서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드렸지요.
아주 담담하게 들으시더니 희미하게 웃으시고, 그렇게 9년을 지냈는데요. 다음에 보면 알겠지요.
암은 참 독한 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수치로 4기 환자분이 몇차례의 수술을 통하여 9년을 잘 지내셨다면 어쩌면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성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또 암과의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환자의 심정은 또 다른 시작이 있을 뿐일 것입니다.
4. 저희 병원 및 몇 병원은 환자가 꽤 많이 있는 편입니다. 입원이 특히 응급입원이 쉽지 않습니다. 간혹 급한 환자분이나 응급실에 오신 환자를 입원시킬때면 힘든적이 많습니다. 환자분들도 응급실에 있는 것을 정말로 많이 싫어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조금이나마 해결해 줄 수 있는 길이 별다른 문제가 없이 입원치료가 필요없다고 판단하는 환자들의 퇴원 결정입니다. 물론 반드시 우리병원에 입원해야 해결되는 문제가 있는 경우 퇴원은 있을 수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러가지를 고려할때 가능한 효과적인 병실 운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퇴원 문제로 가끔 설왕설래 할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얼굴 붉히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원칙은 꼭 지켜나가려고 합니다. 퇴원하신 환자분이 응급실에 왓을때 전혀 입원을 못하고 응급실에서 수일을 지내신다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해 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원 경영진의 권장사항이기도 하지만 단언코 이런 경영상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소신의 이야기임을 말씀드립니다.
글이 길어졌네요. 얼마후 또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제 고민을 적어보겠습니다.공지에 말씀드리겠지만 요즘 환자모임은 쉬고 있습니다. 신종 플루때문에 여러명이 모이는 모든 모임은 중지입니다.이런 상황이 좋아지만 당연히 다시 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http://cafe.daum.net/AMCCRC 서울삼성병원 김희철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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