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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말기암 환자의 죽음보다 더한 공포

라이프케어 김동우 2023. 6. 5. 14:15

말기암 환자의 죽음보다 더한 공포

 

언젠가 우리가 죽을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덪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내가 곧 죽을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생에서

큰 결정과 선택을 할때 유용한 도구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은

(모든 외부의 기대, 모든 으스댐, 모든 창피와 실패의 두려움 등)

죽음의 얼굴앞에서 다 떨어져 나가고

오로지 진실로 내게 중요한 것만 남을것이기 때문이다

- 스티브 잡스-

 

2010년 6월 폐와 뼈로 전이가 시작되면서 죽음은 내게 있어 가장 큰 화두였다. 사실 처음엔 죽음따윈 두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죽음으로 인해 아직 어린 초등학생 두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어 누군보다 열심히 투병생활을 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2011년 전이가 더 많이 진행되면서 찾아온 가공할 만한 통증은 내게 가장 소중했던 엄마로서의 존재감, 삶의 의지, 희망 따윈 내동댕이쳐 버리고 그냥 내 육신을 부숴버리고 싶었고, 내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다.

 

너무너무 고통스러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누구도 싫었고,

누울 수도 없었고

잘 수도 없었고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었다.

하루 24시간중 24시간을 통증에 시달렸다.

그래도 항암이 하기 싫어 병원엘 가지 않았다.

 

2006년 유방암 수술직후 항암을 하면서 내 육신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었고 내 영혼이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고약한 느낌을 받아서 항암에 대한 거부감이 누구보다 싫었다. 그래도 통증을 견딜수가 없어 결국은 2011년 5월 병원에 가게 되고 병원에 가게 되면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항암을 시작하게 되었다.

탁솔이라는 항암제는 탈모는 물론 구토와 설사, 말초신경저림 등을 유발시켰다.탁솔을 17사이클을 했으니 어지간히 한 셈이다. 다행히 중간중간 줄기세포주사라는 면역증강주사를 일본과 중국을 왔다갔다하며 맞았었다. 그래서인지 탁솔의 내성이 빨리 생기지 않아 17번이나 맞을 수있었던것 같다. 줄기세포주사는 항암제의 부작용도 많이 줄여주었고 기력도 많이 처지지 않아 복직하여 근무까지 하면서 항암과 줄기세포를 맞았다.

 

그러나 줄기세포는 여러가지 한계가 있었다. 통증으로 너무나도 견딜수 없을때 체력은 바닥나고 항암할 자신도 더군다나 없을때 커다란 희망처럼 느껴져 거액의 줄기세포 치료비를 위해 집까지 대출받아 시작한 줄기세포를 항암제와 병용을 하자 처음엔 암세포가 줄어들어

나을 수있다는 희망이 보여 더 많은 비용을 감수하며 수십차례 받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다시 암세포가 늘어나고, 빚도 늘어나고 처음 전이진단을 받았을때보다 더 사면초가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탁솔 부작용 하나인 발바닥저림 현상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심해져 나중에 내 발바닥 가죽을 도려내고 싶을 만큼 저리고 가려웠다. 부작용 방지약이라고 주는 약들은 항전간제, 즉 간질약이었다. 2013년 2월은 전이된 2010년 6월보다 더 비참하고 더 괴로웠다.

 

그나마 희망이었던 줄기세포도 더이상 할 여력이 없었고, 암은 더 극성을 부리고, 줄기세포 치료비로 인한 빚은 늘어 감당하기 힘든 상태까지 왔고,이젠 몸과 함께 마음의 병까지 와 너무 지치고 힘이 들었다. 극심한 우울증과 함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도로 왔다.

 

무서웠다.......

밤에는 저승사자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고

그 무엇보다 아무것도 할수없는 무기력상태가 너무 힘들었다.

소중한 아이들에게 짐이 되는것 같았다.

차라리 이럴바엔 하루라도 빨리 죽는게 다른 사람에게나,

나에게도 고통을 덜어주는 방법인것 같았다.

 

그시점 병원에서는 탁솔에 대한 내성으로 호르몬치료를 시도했으나 그것도 실패하자 젤로다라는 경구용 항암제를 권하여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복용을 시작했다. 그러나 복용을 하자마자 엄청한 고통에 시달렸다.복용한 날부터 시작된 설사와 구역질.....

구역질이 끝없이 나오자 손가락 하나조차 까닥할 기력도 화장실에 갈 기운조차 없었고 모든 걸 아이들에게 의지해야 했다. 어느날 밤은 숨을 쉴 기력조차 없어 이대로 잠이 들면 죽겠구나 싶어 아침에 아이들이 죽어있는 엄마를 발견할것 같아 옆에 유서를 써두기도 했었다. 도와 줄 사람이 없어 사돈의 팔촌(?)까지 불러 응급실을 드나들며 링거를 받았다.

 

더이상 항암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결정 또한 정말 쉽지않았다.자연요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는데 이젠 항암마저 그만 두면 당장 죽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젠 죽음은 곧 닫쳐올 기정사실이나 정말 통증으로 몸부림치며 죽고 싶지 않았다.항암제를 그만두고 싶다하자 의사선생님은 그럼 더이상 자신이 해줄것이 없다고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그럼 통증이 오면 어떻하지???

내게 죽음보다 더 무서운건 통증이었다. 그러다 부산대학병원에 호스피스병동이 생겨 통증완화치료를 중점적으로 한다고 소식을 듣고

다니게 되면서 다행이 마약성진통제와 패치를 처방받을수 있게 되었고 많은 양의 마약성진통제와 패치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2014년 10월 현재 나는 어떤 진통제도 쓰지 않고 있다....

내게 있어 죽음보다 더한 공포는 암성 통증이다.그래서 늘 어떻게 해야 잘 죽을지를 연구하였다.통증으로 심할때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여러번 있었다.그러나 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고통스럽게 죽은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물론 너무나도 통증이 심할때는 아이들생각을 할수 조차 없었고 그저 지금 이 순간 사라지고만 싶었다. 언젠가 우리가 죽을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덪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내가 곧 죽을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내가 생에서

큰 결정과 선택을 할때 유용한 도구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은

(모든 외부의 기대, 모든 으스댐, 모든 창피와 실패의 두려움 등)

죽음의 얼굴앞에서 다 떨어져 나가고 오로지 진실로

내게 중요한 것만 남을것이기 때문이다.

- 스티브 잡스-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고 알고는 있지만 일상의 삶속에서 인지하고 있지는 않다.그것이 좀 빠를 수도 있고 좀 늦어질수도 있다고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그것또한 인지하고 있지 않다.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언젠가 우리가 죽을거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뭔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덪을 피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도 결국 죽음의 순간이 오면 누구나 담담할 순 없을것이다

 

죽음과 여러번 사투를 벌이며 살아온 나의 경험으로는 죽음과 함께 찾아오는 여러가지 고통들, 인간으로서 해야만 하는 일상적인 일을 할수없다는 무기력감,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 등- 때문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너무나 무섭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의 화두는 웰다잉이 되었다.

 

잘 죽는 것,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것이야 말로

인간으로서 가장 필요한 그리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햇살을 사랑한 나무/자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