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암투병' 32세女 "여러번 암 걸리자…"
[사람 속으로] 암, 이제는 산다 … 10년 생존율 59%
17년간 골육종 유방암 직장암, 그래도 그녀는 웃는다
하나의 암도 어려운데 한 사람에게 세 개의 암이 찾아왔다면 어떨까. 그런 경우를 찾기도 쉽지 않다. 연세암센터 환자 중 10년 이상 생존자 4600여 명 가운데 2개 이상의 암을 앓은 환자는 5.2%다.
세 개 이상 암 환자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웠다. 인터뷰를 거절하거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인터뷰를 요청하기에 민망한 환자도 있었다. 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대·신촌세브란스병원과 국립암센터 등 내로라하는 암 병원들의 도움을 받아 한 달여 만에 5명의 환자를 찾았다. 그들의 공통점,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서른둘 인생 절반 암투병, 그늘 없는 장조은씨
4개 암을 이겨내고 있는 장조은씨가 지난달 23일 친구와 함께 부산 해동용궁사를 둘러보고 있다. 이날 장씨는 “빨리 나아서 바다를 또 보러 오겠다”고 다짐했다. [부산=오종택 기자]
장조은(32·여·경남 밀양시)씨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연세암센터)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다. 지난달 16일 병원에서 소개받고 전화를 걸었다. 젊은 여성이라는데 성격이 어떨지 걱정이 앞섰다. 질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몸 상태가 어떠냐, 힘들지 않으냐 등의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암 투병 얘기를 꺼내놨다. 특유의 까르르 웃음을 연발하면서. 그녀는 오히려 “기자님 힘내셔요”라며 일상에 지친 기자를 위로했다.
마침 친구와 부산 여행을 간다고 했다. “같이 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OK.
조은씨는 지난달 23일 부산시 기장군 해동용궁사를 찾았다. 부산은 이미 봄기운이 느껴졌다. 김민옥(32·여)씨는 중학교 단짝 친구라고 했다. 둘은 팔짱을 낀 채 절을 둘러보고, 불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동자승 조각상을 보고 “까르르” 웃음을 쏟아냈다. 항암 치료 때문에 듬성듬성해진 머리를 감추려 푹 눌러쓴 보라색 모자도 여행객 무리 속에 묻혔다.
조은씨는 암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인생의 절반을 암과 함께 살았다. 열다섯에 골육종(뼈암)에 걸렸다. 한창 예뻐야 할 20대에는 유방암에 걸렸다. 2001년에 오른쪽, 2007년 왼쪽, 그리고 재발…. 여자로서의 삶이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인가 싶었다.
20대에는 남들처럼 남자친구와 밀고 당기기를 하거나 일자리 경쟁을 해 볼 기회가 없었다. 중·고등학교는 검정고시로 마쳤고 대학은 남들보다 5년이 늦은 2003년에야 들어갔다. 대학에서도 암 투병은 계속됐지만 휴학은 하지 않았다. “대학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서”라고 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쾌활한 대학생이었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면서 특수교육까지 부전공을 했다.
2007년 대학을 졸업했다. 정규직 일자리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암 치료를 받으러 자주 서울을 오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특수교육 전공을 살려 장애아동들을 집에서 돌봐주는 가정교사 일을 시작했다. 생활이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다시 암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더 지독했다. 직장암 말기였다. 병원에서 7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은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암에 여러 번 걸리다 보니 이번에도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지만 항암치료로 종양을 줄인 덕분에 대장과 간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요즘은 2주에 한 번씩 올라와 항암치료를 받는다. 주치의인 연세암센터 정현철 원장은 “과거와 달리 요즘은 새로운 치료법이 많이 개발돼 말기라 해도 포기하면 안 된다”며 “조은씨는 마침 표적치료제가 개발돼 항암제와 같이 썼더니 암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는 그늘이 없다. 자주 소리 내서 웃는다.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다. 극진하게 보살펴 주는 가족의 힘이 크다고 했다. 조은씨는 1남3녀 중 둘째 딸이다. 조은씨는 “부모님, 형제들, 친가, 외가 식구들 모두 나를 위해 좋다는 거 다 찾아서 먹이고 자주 모여서 놀기도 한다”며 “가족의 극진한 배려 덕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은씨는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지난해 말 수술을 받기 전 혼자 제주도 올레길을 일주일 걸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보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조은씨는 “예전에는 투병 중에 집에 거의 누워 있다시피 했는데 요즘은 여행을 자주 다닌다”며 “바람을 쐬고 활력소가 돼서 좋다”고 했다. 조은씨는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게 됐다”고 했다.
정 원장은 “암을 이기는 사람들은 암을 진단받으면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며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 대부분 잘라내고 식도암까지, 예순한 살 한종례씨
죽을 운명인데 살아나 … 의사 말 120% 따른 덕이죠
지난달 15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한종례(61·여)씨가 7개월 된 외손녀 은서의 양쪽 겨드랑이를 붙들고 아래위로 흔들며 어르고 있다. 울먹이던 아기 표정에 금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옆에는 네 살배기 큰손녀 예은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예은이는 할머니가 내 준 과일과 떡을 먹으면서 쉴 새 없이 돌아다니거나 말을 걸었다.
한씨의 마른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씨는 2008년 12월 전북 전주의 한 병원에서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위험한 상태니 마음의 각오를 하라”고 했다. 유서를 쓸까 했다. 딸이 출산을 앞두고 있어 알리지 않고 수술을 미뤘다.
이듬해 1월 딸이 출산한 후 국립암센터로 병원을 옮겨 수술을 받았다. 위를 다 잘라냈다. 생각지도 않은 식도암이 튀어나와 식도를 일부 잘랐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 가족에게 잘 못 해준 게 가슴에 사무쳤다. 한씨는 “내가 이렇게 생을 마감한다는 아쉬움보다 내가 가족에게 못 해준 게 더 사무치게 후회되더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남편이 그리 좋아하는 호박전 하나 부쳐주지 못해서, 자식들에게 더 잘 해주지 못 해서 가슴이 저몄다.
수술 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영우 위암연구과장이 “축하드립니다. 암이 2기였어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씨는 “생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제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한씨는 “내가 한 번 죽을 운명이었는데 살아났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라”라고 자식들에게 얘기한단다.
수술 전날에는 갑상샘암이 발견됐다. 한꺼번에 할 수 없어 6개월 뒤 2009년 7월 수술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가 이어졌다. 한씨는 이제 6개월마다 정기검진만 받으면 될 정도로 호전됐다. 한씨는 가족의 극진한 간호와 종교(원불교), 의사의 말을 120% 따른 덕분에 지금의 상태까지 왔다고 믿는다.
3개 암 이겨내는 환자들
논밭 하루 30분 걸어요 … 운동 삼아 일합니다
1995~2011년 연세암센터를 찾은 13만454명의 암 환자 중 5696명(4.4%)이 2개 이상 부위에 암이 걸렸다. 3개 이상은 251명, 4개 이상은 15명이었다. 여러 개 암이 생기는 이유는 암 유발 억제 유전자에 손상이 가거나 불균형적인 생활습관 또는 주변 환경의 변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5696명 중 ‘유방+갑상샘’이 410명으로 가장 많다. ‘대장+위’ 338명, ‘폐+위’ 189명, ‘전립샘+방광’ 151명이다. 연세암센터 정현철 원장은 “한 가지 암이 생기면 이미 우리 몸에 유전자 변화가 왔다는 경고이므로 정기적으로 검진받고 올바른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여러 개 암을 잘 통제하는 환자들의 대부분은 성격이 느긋하고 긍정적이다. 종교를 가진 경우가 많다.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면서 삶의 의지를 확인하고 운동을 한다. 채식과 단백질 위주의 식습관을 갖고 있다. 김지영(80·충남 아산시) 할아버지는 “논이랑 밭으로 매일 다니다 보면 하루에 30분을 꾸준히 걷게 된다. 운동 삼아 일한다”고 말한다. 전직 대기업 임원 박모(59·경기도 부천시)씨는 정기검진 덕에 암을 조기에 발견한 점을 1등 공신으로 꼽는다. 허봉만(60·인천시 남동구)씨는 “아침마다 오늘 하루 눈떠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잘 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유미.오종택 기자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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