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지 다른 암을 극복한 고창순 박사 투병기
“암을 이기자!”
꼭 알아두어야 할 암 예방 & 극복 위한 생활습관·식습관·마음 다스리기…
기획·이남희 기자
줄곧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를 달려온 암. 그러나 암은 더 이상 불치의 병이 아니다. 3가지 암과 싸워 이긴 고창순 박사 등암 극복 체험기와 꼭 알아두어야 할 암 예방 및 조기 발견을 위한 수칙,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주는 웃음 치료 등 암을 이기기 위한 정보를 상세히 담았다. |
대장암, 십이지장암, 간암 이겨낸 전 YS 주치의 고창순 박사
“세 번이나 찾아온 암을 배짱으로 정면돌파 했어요”
고창순 박사는 ‘기적의 사나이’로 불린다. 내과 전문의로 서울대병원 부원장, 김영삼 전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그는 25세에 대장암, 50세에 십이지장암, 65세에 간암 선고를 받았지만 거뜬히 이겨내고 칠순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 암을 세 번이나 이겨낸 비방(秘方)은 무엇일까.
글·구미화‘신동아 기자’ / 사진·지재만 기자
봄을 시샘하듯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2월7일, 고창순 박사(74)의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을 찾았다. 평생을 단독주택과 빌라에만 살다 몇달 전 이사했다는 아파트는 신혼집처럼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고창순 박사는 계속해서 걸려오는 휴대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주치의였던 그가 암을 세 번이나 이겨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 고 박사는 자신의 투병 과정을 담은 책 ‘암에게 절대 기죽지 마라’(동아일보사)를 최근 출간했다.
고창순 박사가 처음 암에 걸린 건 1957년, 일본 쇼와(昭和)의대 인턴으로 근무할 때였다. 만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였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82년, 고 박사에게 또 한번 암이 찾아왔다. 4년 임기의 서울대병원 부원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십이지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그리고 97년, 서울대병원을 정년퇴임한 지 사흘 만에 간암 선고를 받았다.
평생 단 한 번도 걸리지 않길 바라는 암이 세 번씩이나, 그것도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에 각각 다른 부위에서 발견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세 번 모두 암세포가 상당히 퍼진 상태에서 발견됐음에도 거뜬히 이겨내고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다.
-박사님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됐습니다.
“이 책은 의사로서 쓴 과학적이거나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세 개의 독립된 암을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에 앓았던 한 자연인의 ‘암 이력서’라고 볼 수 있어요. 내가 온몸으로 부딪친 경험을 그대로 드러냈거든요. 이렇게 잘못 생활하니까 암이 또 걸리더라, 암에 걸리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더라 하는 이야기를 했어요. 무엇보다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면역력이 강화돼 암을 극복할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요.”
-세 번씩이나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스물다섯 살에 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믿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의료기기가 발달하지 않아서 수술한 뒤에도 ‘니들이 뭘 잘못 봤을 게다’고 생각했어요. 암이라고 믿지 않았으니 갈등이란 게 있을 수 없었죠. 82년 십이지장암 선고를 받았을 때는 첫째가 대학 2학년, 둘째가 고교 3학년, 셋째가 중학 3학년, 넷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어요.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11시간에 걸쳐 대수술을 했는데, ‘암세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당시 서울대병원 민병철 교수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이젠 내가 몸을 튼튼히 만드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3년간 모범생활을 했죠. 그리고는 15년 뒤, 대통령 주치의 시절 또 한번 암이 찾아온 거예요. 97년 9월3일 서울대 교수직을 퇴임한 지 사흘 뒤 받은 건강검진에서 간암이 발견됐어요. 간 오른쪽에 야구공만한 암세포 덩어리가 있고, 왼쪽 부신(곁콩팥)에도 탁구공만한 암 세포가 있었어요. 이번에도 의료진을 전적으로 믿고 수술을 했죠.”
-간암이 부신까지 퍼졌다면 수술을 생각하기 어려운 상태 아닌가요?
“그렇죠. 눈에 보이는 암세포를 모조리 제거한다고 해도 이미 다른 장기에 퍼져 있을지 모르는 암세포들이 언제 어디서 솟아나올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저는 만성 C형 간염이 간경화로 진행된 상태였어요. 수술이 잘 된다 해도 간 기능이 회복되지 못해 죽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러나 의사를 믿었어요. 수술을 맡은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에게 ‘눈에 보이는 암세포만 잘 제거해라. 나중에 재발하는 건 내가 면역력을 강화해 이겨내겠다’고 말했죠.”
‘최소한의 장기만으로도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인간’
97년 9월23일 아침 8시30분에 시작된 수술은 자정이 지나서야 끝났다. 16시간이 걸렸다. 고 박사는 “의료진의 정성이 대단했다”고 했지만, 당시 의료진은 고령에 그만한 수술을 견뎌낸 그의 체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보낸 일주일 동안에도 침대에 누운 채 침대 손잡이를 붙잡고 안간힘을 다해 몸을 뻗으며 운동했다.
-환자는 잘 쉬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더군다나 수술받은 암 환자라면.
“글쎄, 의사로서는 좀 위험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체력은 한계가 느껴질 때까지 단련하는 게 좋다고 봐요. 단 심장병이나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가 있는 사람은 주의해야죠. 그런 문제가 없다면 몸을 한계상황까지 활성화시킬 때 육체도 그에 따라옵니다.”
-간암 수술을 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 주치의를 맡고 계셨죠?
“대통령 임기가 98년 2월까지였는데, 제가 97년 9월23일에 수술했어요. 그리고 수술한 지 21일 만에 퇴원했는데, 얼마 안돼서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 일정이 잡혔어요.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할 때 주치의가 수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제가 따라나섰죠. 대통령께서 ‘고 박사, 니 괘않겠나’ 하는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네, 괜찮습니다. 걱정마십시오’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낯 뜨거운 일이죠. 몸무게가 10kg도 넘게 줄어서 허깨비 같은 몰골이었는데, 그런 꼴을 하고 대통령 주치의라며 따라다니면 외국 관계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거죠.
그런데 아프다고 위축되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하려고 했던 배짱이 있었기에 제가 병을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 눈치 보고, 감정을 억누르고, 갈등하는 게 다 병을 키우는 거죠.”
고 박사는 일단 암이 발견되면 수술로 정면 돌파했다. 대장암도, 십이지장암도, 간암도 모두 수술로 암세포를 최대한 제거했다. 몇 차례 대수술 후 그의 장기는 초토화됐다. 보통사람이라면 길이가 150cm에 이르는 대장은 거의 없어졌다. 십이지장과 위도 절반만 남아 있다. 담낭과 췌장도 일부 잘려나갔다. 간과 왼쪽 부신도 온전하지 못하다. 때문에 동료 의사들은 그를 ‘사람이 최소한의 장기만 갖고 얼마나 잘 살 수 있는지 온몸으로 보여주는 실험인간’이라고 부른다.
암 수술 후에는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자잘한 암세포들이 자라 다시 위협해올 것에 대비해 항암 화학치료제를 투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는 화학요법에 대한 의존을 극도로 배제했다.
-항암 화학치료제를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장암 수술을 받았을 때는 항암 화학치료라는 게 없었고, 십이지장암 수술 후엔 체력이 너무 떨어져서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없었어요. 간암 수술 후엔 내 의지로 항암 화학치료제를 쓰지 않겠다고 했죠. 화학요법은 케이스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와요. 어떤 사람한테서는 암세포만 잘 죽이던 것이 다른 사람 몸에서는 정상세포까지 다 죽이기도 해요. 그래서 항암 화학치료제를 쓸지 말지는 환자가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라는 게 내 입장인데, 내 경우는 화학요법이 잘 듣지 않는 타입이었어요. 운동으로 면역력을 키우는 게 낫다고 판단했죠.”
-암 환자 스스로 화학요법이 자신과 잘 맞는지, 맞지 않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의사가 항암 화학치료의 한계를 일러주면 자신이 잘 따져보고 결정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납득이 될 때까지 의사에게 무엇이든 허심탄회하게 물어야 해요. 환자가 물었을 때 귀찮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좋은 의사가 아니죠. 의사의 말이 의심스러울 때는 다른 의료진에게 제 2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좋고요.”
그의 경우 다른 부위에서 발병된 암이 전이된 것이 아니라 간 자체에서 발병한 간 세포성 암이라 화학요법을 쓸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고 박사는 화학요법을 포기하는 대신 체력단련으로 면역력을 최대한 가동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요즘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전화를 받을 때도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고, TV를 보면서도 척추운동을 하거나 스테퍼에 올라선다.
“면역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적당한 운동이죠. 적당한 운동엔 늘 충분한 휴식이 세트로 따라다니고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균형 잡힌 식사입니다. 먹는 것 이상 좋은 약이 없어요. 균형 잡힌 식사가 모든 약에 우선하죠. 무엇이든 다양하게 골고루 먹으면 됩니다. 어떤 약을 먹었더니 암이 낫더라 하는 건 전부 사이비예요.”
면역력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간암 수술 후엔 술·담배를 완전히 끊으셨다죠. 두 가지가 암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봅니까.
“술은 적당히 먹으면 나쁠 게 없는데,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으로 이어져서 생활습관을 무너뜨리니까 아예 피하기로 한 거죠. 담배는 확실히 몸에 해로운 것 같아요. 담배를 끊고 나면 확실히 건강이 좋아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렇다고 그것 하나에 모든 죄를 덮어씌우는 건 문제가 있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죠.”
-그동안 가족들도 마음고생이 많았겠습니다.
“(부인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나를 종교처럼 믿고 있어요. 제가 아내를 믿으니까 아내도 저를 믿는 거죠. 집안일이며, 아이들 문제며 전적으로 아내를 믿으니까요.”
옆에 있던 부인 김정자씨가 거들었다.
“본인이 의사고, 또 주위의 제자들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그대로 믿고 따랐죠. 근데 이상하게 여태껏 한 번도 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암이 몇 번 재발했을 때도 주변에서는 큰일났나보다 하고 걱정을 했던 모양인데, 우리는 뭐 별 염려 없었어요(웃음).”
상담을 청하는 암 환자들에게 고 박사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죽을 준비부터 해라”다.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암에 기죽지 않기 때문. ‘이렇게 자꾸 암이 재발하는데, 이러다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암을 더욱 기세등등하게 만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죽음에 초연해지기 위해 종교를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어떤 종교든 기본적으로 내세를 인정하니까요. 일단 내세를 전제하고 나면 죽음을 평화롭게, 희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렇게 암에 위축되지 않도록 정신무장을 한 다음엔 열심히, 즐겁게 체력단련하면 됩니다. 스트레칭, 심호흡, 지압, 목욕… 이 모든 것이 체력단련이 될 수 있어요.”
고 박사에게 비방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그의 부인은 한 번도 암에 기죽어본 적이 없다. 암이 찾아왔을 때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았고, 섣불리 죽음을 염려하지도 않았다. 지난 생활을 반성하고, 정신과 육체를 단련시키는 데 몰두했다. 고 박사는 인터뷰 내내 진지했지만 자주 웃었다. 중간 중간 부인과 대화를 나눌 때면 반드시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암은 오히려 그들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린 듯했다.
고창순 박사의 부인 김정순씨가 말하는 ‘남편 건강을 회복시킨 밥상’
우리 집 밥상이 남편 건강을 좌우한다 아침식사는 내가 직접 챙기는 만큼 가장 신경을 썼다. 특히 “우리 집 밥상이 남편 건강을 좌우한다”는 생각에 좋은 식품을 선택해 미리 속으로 조리법을 생각하여 식단을 짜보고 짜고 맵지 않게, 담백하게 우리 집 방식으로 바꾸어서 만들었다.
7년간 매일 도시락 싸기 82년 남편이 십이지장암 수술을 한 뒤 7년 동안 남편의 도시락을 쌌다. 비록 남편은 직업 상, 제 시간에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이 어려웠지만 잡곡밥과 국, 생선이나 고기, 나물, 콩자반, 매실, 김치, 김 등 반찬을 짜지 않게 만들어 넣고 후식과 과일까지 곁들인 도시락을 매일 쌌다.
97년 남편이 정년퇴임한 후에는 내가 직접 먹는 것을 관리하며 건강을 챙겼다. 간암 수술 후 남편은 특히 죽을 즐겨 먹었는데 깨죽, 잣죽, 콩죽, 버섯죽, 콩나물죽, 시금치죽, 홍합죽, 황태죽 등 갖가지 재료로 죽을 만들어 ‘죽에 관해서는 박사’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남편은 십이지장암과 간암 모두 신토불이 음식으로 이겨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면역 증강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는 갖가지 나물을 빼놓지 않았다. 양배추, 오이, 당근, 토마토 등 대여섯 가지 야채와 과일을 함께 넣어 샐러드처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토마토, 가을에는 사과 등 제철 과일을 갈아서 만든 주스도 내놓는다.
신선한 재료는 기본 우리 집 밥상 차림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원칙이 있다. 첫 번째 원칙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 항상 신선한 재료를 쓰려면 찬거리를 그때그때 시장에서 사와 조금씩 만들어 먹어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거창한 요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름지고 탄 음식, 지나치게 짜게 먹는 것은 모두 건강의 적으로 암 발생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지지고 볶는 요리는 되도록 안 한다 남편은 체질적으로 소식을 하지 못하고 고기를 좋아한다. 남편이 즐기는 먹을거리를 무조건 제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지지고 볶는 요리는 되도록 안 한다’는 원칙으로 조리해 상을 낸다. 대신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가능한 한 조리 단계를 생략하고, 그 재료의 특성을 살려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하나하나 영양소를 따져가며 식단을 짜기는 어려운 일이라 그저 색깔이 골고루 섞이게 해서 먹고 야채는 드레싱을 하지 않고 씻어서 그대로 씹어 먹는다.
동네 시장에서 장보기 우리 집은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재래시장에 가면 제철 생선을 그때그때 사서 슴슴하게 간하여 구워 먹는다. 남편은 갈치나 알배기 청어를 특히 좋아하고 장어를 구워 먹는 것도 즐긴다. 우리 집에는 김이 항상 준비되어 있는데, 생김을 석쇠에 구워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반찬통에 넣어두고 깨소금 듬뿍 넣은 조선간장에 찍어 먹는다. 양파도 언제나 충분히 준비해놓는 재료다. 양파는 비타민 B의 흡수를 도울 뿐 아니라 혈액 속의 불필요한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녹이는 효과가 있다. 양파 속에 있는 글루타치온이란 성분은 간장의 해독 기능을 강화해준다.
암뿐 아니라 노화 예방에 좋은 녹차 지금도 나는 김치는 물론이고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먹는다. 특히 물김치는 1년 내내 밥상에 오른다. 수분을 많이 섭취하면 몸에서 노폐물이 잘 빠져나가고 피를 정화하면서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남편은 투병을 하면서 하루에 2~3ℓ씩 물을 마셨다. 97년 간암 발병 이후 커피를 끊은 남편은 요즘도 커피 대신 녹차, 인삼차, 감잎차, 다시마차, 허브차 등 차를 틈틈이 마신다. 녹차는 암뿐만 아니라 노화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입이 심심할 때면 사과, 귤, 포도 등 과일과 땅콩 같은 견과류를 먹는다. 모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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