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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간암 투병 환자와 보호자의 슬픈 이별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2. 11. 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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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아는 만큼 이길 수 있습니다.

 

 

간암 투병 환자와 보호자의 슬픈 이별

 

지난 주 목요일 오후 1시 화창하게 푸르른 가을날

그가 떠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삼우제를 지내고 왔습니다.

그가 누운 곳은 멀리 산이 보이고 평야가 보이는 볕 잘드는 곳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조촐한 제사음식을 차리고 술을 따르고 절을 했습니다.

 

그가 그렇게도 먹고 싶어하던 사발면과 팥빙수, 삼각김밥이랑 땅콩강정도 함께 올렸습니다.

막걸리를 한 잔 씩 나눠 먹으며 주변 정리를 안 하고 떠난 그에 대해 투덜거렸습니다.

평생 수발만 들게 하더니 끝까지 가족들 고생시킨다구요.

 

주말 내내 그리움에 가슴 쥐어뜯으며 보냈고

다시 일상을 시작해야 하는 오늘 아침, 출근을 하면서 두렵더군요.

일상의 언제 어디서 그의 기억이 불쑥 튀어나올까, 그래서 제 마음을 흔들어놓고

그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 아프게 할까, 하고 말입니다.

 

사실, 여기에 신랑이라고 쓰기는 했지만,

아직 결혼은 안 했습니다.

다 나으면 하려고 했습니다.

수술만 하면 다 낫는다고 해서 그때 하려 했는데 다시 항암을 해야한다 했고,

항암을 하고 결과가 좋으면 그때 하자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힘든 줄 몰랐습니다.

힘든 게 있다면, 먹는 거 때문에 마음 상한 일 뿐입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누님과 여동생에게는 마음 약한 소리를 많이 했던가 봅니다.

제 앞에서는 힘든 내색 별로 안 했었는데...

 

수술 후 두 번째 바꾼 TS-1 덕인지 간에 있던 종양이 괴사되었다고 했고

8월에 병원에 입원해서 비타민 요법과 고주파 온열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TS-1을 시작하면서 부쩍 피곤해하고, 기력도 없어하는 게 영 불안했더랬습니다.

다른 의사라도 이런 상황에서 항암을 계속했을 것인지 다른 병원에 자문을 해보자고 했는데...

그때 이미 간이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던가 봅니다.

 

소화가 계속 안되고 복부팽만에 가스가 차서 스탠트 삽입을 하고는 다소 나아졌지만

그게 단순히 물리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라 간 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임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그네님께서 조언을 주셨지만, 아직 법적인 보호자도 아닌지라 제 뜻을 완강히 고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간성혼수가 왔고,식도정맥류가 있었습니다.

9월 3일부터 운명할 때까지, 추석 무렵 집에 다녀오라는 말에

한 나흘 집에서 보냈던 것 빼고는 계속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친척인 주치의는 간을 잘 회복시켜 다시 항암을 하자더니

그 밑의 레지던트들은 볼 때마다 한 달, 2주를 말하더군요.

 

뒤늦게 서울의 한의원에서 일회에 수십만원하는 산삼약침을 공수해다 맞고 쑥뜸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걸 맞은 다음 날은 혼자 일어나 앉기도 힘들어 하던 사람이

혼자 벌떡 일어나 앉더니 화장실도 가고 운동도 하더군요.

그러나 단 사흘 뿐이었습니다.

 

그 사이 다시 간성혼수가 올까봐 계속해서 변비약을 먹었고

하루에 7~8회 변을 봐야했고, 하루 3회씩 항생제를 맞으며,

처음에는 다퉈가며 저염식으로 그나마 식사를 하다가

점점 떨어지는 소화력에 마지막 일주일 동안에는 뉴케어와 물, 그리고 영양제만으로 연명했습니다.

 

마지막 사흘 동안은 계속해서 혈변을 보았고

그의 몸 여기저기에 침으로 찌른 붉은 점들이 퍼져가더군요.

그의 몸 어디선가 출혈이 계속되어 있었던 거겠지요.

수혈도 하고, 지혈제도 사용했지만,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저희를 불러 간 전체에 다 퍼졌으며, 복막과 폐에까지 전이가 되었으며

길면 한 달, 짧으면 2주라고 말을 하며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차마 그에게 그 말을 전해줄 수 없었습니다. 

 

입이 마를 때 레몬즙이 좋다기에, 조각을 내서 준 레몬을

껍질째 아작아작 씹어먹던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9월달에는 주로 잠을 자더니, 10월 들어서는

사람의 눈을 맞추기 보다는 예의 간성혼수가 왔을 때처럼

천정만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말을 하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물, 처럼 간단한 말이나 고개짓으로 겨우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무렵 통증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오른쪽 어깨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연신 주물러주고 맛사지를 해줬습니다.

떠나기 일주일 쯤 전에는 가슴이 답답하고, 간 있는 옆구리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패치와 먹는 알약, 그리고 가끔 주사로 통증을 진정시키곤 했지요.

 

아마 그 무렵 그는 느꼈던 것 같습니다. 가망이 없다고...

그러면서도 끈을 놓을 수 없었겠지요.

저는 그가 끝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난다면

그것 또한 그에게 너무 큰 불행일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병수발 드는 것 말고 그가 평화롭게 외롭지 않게 마음의 짐을 덜고

생의 마지막을 잘 정리하게 도와주는 것도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수녀님을 모셔다 기도도 드리고, 대세도 받게 해서, 마침 바오로라는 세례명까지 갖고

마지막에는 신부님께서 집전하는 장례미사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가 떠나기 전날,

낮에 간병을 하던 누님께서, 그가 통 잠을 못 잔다고 했습니다.

그 전날밤에도 한 시간도 깊게 못자고 깨기를 반복하던 그였습니다.

입을 못 다물고 잔 지는 여러날 되었을 때죠.

혀가 말리고, 숨을 헉헉, 내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말은 다 알아듣고 의사표시도 했었습니다.

그날 밤,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그에게 진통제를 주사해달라고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주니 한결 숨소리가 평온해졌습니다.

몸을 아예 오른쪽으로 돌려주고 베개로 고여주었는데, 자꾸 몸이 바로 되더군요.

하여, 마침, 바늘 꽂고 있던 것도 다 뺀 상태라 그 옆에 누웠습니다.

벽쪽으로 등을 돌리게 하고, 제가 뒤에서 그의 등을 안고 잠을 청했습니다.

 

밤새 숨소리가 편안하더군요.

자면서 몇 번 움찔움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다독거리며 푹 자,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이미 그는 저 세상으로 가려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던 건데...

다른 때 같으면 대소변 때문에 두 번은 깨서 갈아주었어야 할 텐데

그날따라 아무런 신호가 없어 기저귀를 몇 번이나 만져보았습니다.

 

새벽에 간호사가 혈압과 산소포화도, 체온을 재고 갔지만 별 이상이 없었고

출근을 하기 위해 아침 6시 반에 눈을 떠서 그를 깨웠는데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숨은 계속 쉬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제가 일어나서 깨우면 눈을 떴고

그러면 수건으로 얼굴 닦아주고 소변을 보게 하고 몸무게도 쟀는데...

간호사를 불렀더니 혈압을 못 재더군요.

기계를 갖고 와서 재보니 56/20. 산소 마스크를 씌우고 가족들을 다 부르라고 하더군요.

그게 7시 경이었습니다.

 

누님께 전화를 드리고, 산소 호흡기를 하고 있는 그의 곁에서

울면서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내가 우는 거 싫어한다는 생각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의 손을 잡고 기도도 했습니다.

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서 그를 깨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를 보내주는 게 왠지 순리일 거 같았습니다. 

 

9시 경, 모든 가족들이 모였고

연로하신 그의 부모님은 그의 손을 붙잡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가지 말라고, 어째서 갈 생각만 하느냐고 흐느끼시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충격받으실 것을 염려하여 누님이 다시 댁에 모셔다 드리고 오시는 사이

혈압이 급격히 떨이지고, 산소포화도가 떨이지더군요.

그렇게 그는 오후 1시 경에 숨을 거뒀습니다.

 

차가운 중환자실이 아니라 따뜻하게 볕이 잘 드는 병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신장투석이며, 복수천자며, 이런저런 줄을 주렁주렁 달지 않고

서서히 숨을 거뒀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활달하고, 유능하고, 정많고, 때로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던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함암 때문에 머리가 다 빠져 가발을 쓰고 다닐 무렵, 서울로 출장을 가는 저를 바래다 주면서

창밖에서 자신의 가발을 슬쩍 들어올려 보이며 짖궂은 장난을 하던 그였습니다.

 

수백번도 더 쓰다듬던 그의 이마와 눈썹, 그리고 마지막엔 앙상하게 마르고

거칠어진 손을 다시는 만질 수 없다는 게 견딜 수 없습니다.

어깨와 등을 주무르다가, 그의 등 뒤에서 그를 안을 수 없다는 게 참을 수 없습니다.

매일 퇴근을 손꼽아 기다리다 한 달음에 달려가면 병실에서나마 볼 수 있던 그를

더 이상 만날 곳이 없다는 게 고통스럽습니다.

 

그의 삶 자체도 너무 짧았지만, 제게는 너무 늦게 와서 빨리 가버렸습니다.

 

1년 반 동안의 투병 때문에 고통만 받은 거 아닌가 생각도 들었지만

그 시간을 벌어서 사랑과 위로와 화해를 얻고 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간, 그의 형제들과 제 자신,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너무나 잘 견딘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는 더 이상 이 세상의 공기를 맛보지 못하겠지만

참으로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자들만 시간이 흐르기를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견뎌야겠지요.

 

그 동안, 여기에 글을 올리며, 또 여러분들의 글을 보며

많은 위안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 처지 때문에 제 뜻대로 하지 못하거나,

너무 늦게 시도하여 일이 이 지경에 이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이게 그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하여, 이렇게 마지막 소식이라도 전하는 걸로 감사를 대신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사랑과 믿음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셔서 좋은 결과 얻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암 환자와 보호자에게 드리는 참고의 글:

상기 내용은 암환우 카페에 올려진 내용을 복사하여 소개합니다.암종 중에서 간암은 치사율이 높고 투병이 만만치 않습니다.간암 판정을 받을 경우 수술 대상이 되면 그나 다행이지만 암 세포가 여러군데 광범위하게 전이가 되었을 경우에는 수술 대상도 안 되어 간 이식 수술만이 유일하지만 그 것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간암 환자의 경우 투병 자체가 매우 힘이 듭니다.그 외 색전술이라던지 방사선 치료도 시도를 하지만 대체적으로 간암은 좋은 예후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입니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호전이 되거나 완치가 된 사례도 많지만 거의 대부분의 간암 환자는 투병 자체가 어렵습니다.만약에 현대의학으로 큰 의미가 없거나 단순하게 몇 개월 생명 연장의 의미로 치료를 한다면 담당 선생님과 잘 상의하여 대체보완 의학쪽으로 검토를 해 보는 것도 차선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보호자의 지혜로움과 냉철함이 이 시점에서 필요 합니다.시중에는 수 많은 정보들이 유혹을 하는데 검증되지 않은 비법이나 특효약 같은 것에 돈만 낭비하지 마시고 잘 판단을 하여야 합니다.물론 비타민C 메가도스 요법도 효과가 좋지만 아무리 좋은 효과와 효능이 있는 것이라도 치기 시기를 놓치면 회복을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환자가 어느정도 식사를 하고 복수가 차기 전에 재빨리 차선책이 무엇인지, 어느 시점에서 방향을 바꾸어야 하는지, 추가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보조적 방법은 무엇인지, 잘 알아보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선택하여야 할 것 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환자의 체온을 수시로 체크하여 정상 체온 37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여야 하고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옷을 따뜻하게 입고 항상 적정하게 보온이 되는 상태를 유지해 주어야 합니다. 움직일 수 있다면 무조건 누워있는 것 보다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좋으면 무리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정상적인 영양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 하여야 합니다.

 

하여간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호전이 되거나 완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마지막으로 투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환자의 긍정적인 마음과 행동 입니다.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기적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투병중인 환우님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 합니다.

더라이프 메디칼 의공학 전문가 김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