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암 치료의 방향
1984년 처음으로 암이 한국인의 사망률 1위를 차지했다. 그 후로 한번도 그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최근 급속히 진행되는 노령화를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앞으로도 암 발생률은 계속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사망률 역시 아울러 커질 것이다. 명실상부 한국인이 가장 두려워할만한 질병으로 등극한 것이다.
물론, 이런 암을 이기기 위한 인류의 노력도 부단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 30년 간 눈부시게 이루어진 의학기술의 발전은 암에 대한 진단과 치료 기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올려놓았고, 그 결과 암의 완치율과 암환자의 생존 기간이 크게 늘어났다. 마치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처럼 암을 지니고 사는 환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늘어난 국가적 비용은 다시 우리 사회에 큰 부담으로 남게 되는 문제점도 생겼다.
앞으로도 암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제공할 것이다. 암이 정복되지 않는 한 암을 정복하려는 의료계의 노력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여러 희망과 문제점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암과 싸우는 의료계의 노력은 어디까지 이루어졌을까? 그리고 그로 인한 문제는 또 무엇일까? 현재 암치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고 있다. 변화하는 암치료 패러다임은 무엇인지, 이런 변화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살펴보자.
◆ 개인맞춤의료의 시대
유전자학과 표적치료제의 발전
최근 암치료의 방향을 살펴보자면, 우선 개인맞춤의학(tailored personalized medicine)의 발전으로 암치료 또한 환자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치료를 이야기할 수 있다. 최근 10여년 동안 종양유전학과 분자유전학이 눈부시게 발달했고, 제약학과 생체정보학 그리고 유전체 관련 검사 기술 등도 빠르게 성장했다.
이런 의학의 성장은 과거 질병중심의 경험적 치료에서 벗어나 환자중심의 분석적 진료가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즉, 옛날에는 암이라는 질병에만 초점을 맞추고, 지금까지 암을 치료해 온 경험에 비추어서 치료 방침을 결정했다면, 앞으로는 환자의 유전적 특징,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성향과 암세포의 특성까지 고려해서 치료 방침을 결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개인맞춤의학이 가장 빛을 발하는 부분은 표적치료제 분야다. 종양에서 발생되는 특정 유전자를 표적물질로 삼아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는 유전자학의 발달로 인해 가능해졌다. 근래에 들어서는 종양에서 특정 유전자 이상을 밝혀내는 것과 이를 표적으로 하는 표적치료제의 개발 간격이 매우 빠르게 단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최초의 표적치료제 이매티닙(imatinib)은 만성골수구성 백혈병에 사용되는 표적치료제인데, 표적물질이 되는 필라델피아 염색체의 이상이 밝혀진 지 40여년이 지난 후에야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후 악성흑색종의 표적치료제 베무라페닙(vemurafenib)은 표적물질이 되는 유전자 돌연변이(BRAF유전자의 V600E돌연변이)가 발견된 지 7년만에 개발되었다.
또한 비소세포폐암의 EML4-ALK 융합유전자 이상이 발견되고 나서는 3년만에 이를 표적물질로 공격하는 크리조티닙(crizotinib)이 시판되는 등 표적물질과 그에 상응하는 표적치료제의 개발간격이 점차 좁혀지고 있는 추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종양에서 나타나는 표적인자가 아니라 면역활동 중에 일어나는 물질을 표적인자로 삼는 표적치료제까지 생겨 주목을 받고 있다. 종양 자체가 아니라 종양이 생겼을 때 우리 몸이 반응해서 내보이는 물질을 추적하여 암세포를 공격하는 것이다. 표적치료제의 활용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종양의 특성뿐만 아니라 종양과 관련된 다양한 신체의 이해를 통하여 암을 치료하려는 노력이 의학계에서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앞으로 그 발전 속도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개인맞춤의학의 발전은 머지않아 종양의 특성과 환자 개인의 특징이 모두 고려되는 100% 개인 맞춤진료 시대를 열어 줄 것이다.
◆ 암에 대한 다학제적 접근
수 많은 전문가들이 하나되어 치료
앞서 말한 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의학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이런 의학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고 환자들에게 적절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두 참여하여 환자 개개인의 치료전략을 수립하는 다학제적인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환자의 삶의 질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다학제적인 의료가 이루어지는 추세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다양하고 치료법들의 개발되면서 환자의 생존율과 치료 성적이 높아지고 있다. 크게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동시에 환자의 몸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치료법은 때론 환자들에게 단기적인 혹은 장기적인 부작용을 주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독한 화생방 작전을 써서 적을 소탕했지만, 동시에 아군도 자멸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치료 과정과 치료 후 환자의 ‘삶의 질’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다학제치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치료 과정 동안 일어날 암환자들의 정서적인 문제를 돌볼 정신종양전문의가 필요하고, 통증을 관리해 줄 통증전문의, 그리고 재활을 도와줄 수 있는 재활의학전문의의 참여가 필요하다. 여기에 종양전문간호사, 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환자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제대로 돌봐줄 수 있다.
이 외에도 치료 후의 암 생존자를 위한 장기생존프로그램(survivorship program)과 같은 관리 프로그램도 수립되어야 한다. 즉, 치료 이후의 삶 전반까지도 관리할 수 있도록 넓은 영역의 세심한 배려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문제는 인력과 비용이다. 개인맞춤치료를 위한 연구, 다학제적 의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과 지원, 인력이 필요하다. 의료인력, 의료시설 같은 제반시설과 국가의 지원이 확충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사회적 비용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국가적 전략 수립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이런 비용관리는 당연히 효과적인 약제 개발이나 환자군 선별 등 환자들을 위한 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계와 산업계가 연계된 기초연구와 의학계의 임상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위한 국가의 지원과 제도 정립도 요구된다. 국가는 가지고 있는 보건의료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배치하고 이용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도 함께 이루어야 한다. 최근 영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도 이를 고려해서 보건의료제도를 새롭게 변화시켰으니 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암 발생률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의학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사망률은 발생률에 비해 훨씬 낮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암환자들이 완치를 이루거나 혹은 장기생존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개인과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비용도 크게 증가되는 것을 뜻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다른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연구를 통해 비용 상승을 막는 방법을 찾고, 현재 사용되는 자원을 보다 적절하게 재배치하는 등의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 제공: 하이닥
△ 작성: 서울아산병원 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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