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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세번의 암을 극복하였다가 다시 재발한 암과의 싸움 / 의사 안병선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4. 9. 23. 11:10

 

 

 

 

 

세번의 암을 극복하였다가 다시 재발한 암과의 싸움 / 의사 안병선

 

 

 

패혈증으로 열이 39.9도까지 올라 그 날 밤을 집에 있다가는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응급실을 통해 8월 20일 입원했다. 응급실에서 피검사해보니 말초혈액과 중심정맥에서 균이 나왔을 뿐 아니라 황달을 일으키는 빌리루빈까지 올랐다. 적혈구가 파괴되어 나오는 빌리루빈은 독인데 정상적으론 담즙으로 배출되어 대변의 노란색을 만든다.

 

 

전체 빌리루빈의 정상범위는 0.1-1.3인데 입원 당시 3.15로 나왔다. 7월 14일 호스피스에서 검사했을 때는 전체 빌리루빈은 0.77로 정상이었고 직접 빌리루빈의 0.5 이하가 정상인데 0.56으로 약간 높았었다. 이것은 담즙 배출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던 것이다. 이 때는 짙은 녹색의 답즙이 레빈 튜브(콧줄)를 통해 저절로 줄줄 잘 흘러내리던 때였다. 그러니까 직접 빌리루빈이 정상을 약간만 벗어난 상태였다.

 

 

입원해 있으면서 9월 5일에 7.7, 9월 10일 9.7로 올라가며 황달이 심해지더니 9월 12일 8.27, 9월 15일 4.47로 대폭 감소되며 황달도 많이 좋아졌다. 주치의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좋아졌을까라고 질문해서 유동식 음식을 많이 먹거나 주사기로 위에 넣어 담즙을 부지런히 씻어냈다고 말했다. 내과 의사가 와서 알려준 방법이었다. 답즙이 점도가 높아서 물도 많이 마시고 주사해 하루에 1리터 정도는 배출시켰다.

 

ALKAINE PHOSPHATASE(ALP)의 정상범위는 39-117인데 7월 14일엔 87이었는데 8월 20일엔 263, 8월 28일 378, 9월 1일 315, 9월 5일 269로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9월 10일 232, 9월 12일 237, 9월 15일 190으로 되었다.  ALP가 떨어지기 시작한 후 4-5일이 지나면 빌리루빈이 떨어진다고 해 기대하고 있었는데 10일째인 9월 10일에 빌리루빈이 오히려 더 올라 9.7로 최고 수치를 기록해 조금 걱정했었다. 하지만 12일째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주일째에는 대폭 줄어들어들었다.

  

간기능을 나타내는 AST(SGOT)와 ALT(SGPT)도 정상이 41과 40이하인데 7월엔 20과 10으로 아주 좋은 정상이었는데 8월 20일엔 64와 42로 나빠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간기능을 보는데 있어서 AST보다 ALT가 더 중요하다. 이 수치도 9월 10일엔 106, 115, 9월 12일엔 113, 102, 9월 15일엔 63, 67로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

 

간이 안 좋아지자 9월 4일부터 콩에서 추출한 지방 주사를 날마다 맞던 것을 중단했다. 이것을 일주일-이주일만 맞아도 담즙이 정체되면서 간염이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4개월이나 맞고 있었다. 이 후에 콜레스테롤 검사에서 175정도로 늘 좋게 나오기 때문에 난 피부에 바르는 코코넛 기름과 상어 기름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염증을 나타내는 CRP가 0-5가 정상인데 61.87이었고 9월 10일 13.78, 9월 12일 10.56, 9월 15일 8.9로 많이 좋아졌다. 백혈구 수는 3,700-10,600이 정상인데 8월 20일 18,890으로 패혈증이었다. 9월 10일엔 75,00, 9월 12일엔 8,610, 9월 15일엔 8,540으로 정상이다.  

 

 

전체 콜레스테롤은  호스피스에서 7월에 170, HDL이 29.6으로 정상인 40 이상이 못 되었다. LDL만 113으로 약간 높았다. 이 때 콩에서 추출한 지방을 혈관 주사로 맞았고 상어기름으로 만든 스쿠알렌을 피부에 가끔 발랐다. 그 전에 6월에 병이 한참 심할 때는 전체 콜레스테롤이 120 근처로 위험 수위였다. 8월 20일 입원시 전체 콜레스테롤 정상범위가 130-220인데 149로 낮은 정상이었다. 9월 10일 175, 9월 12일 178, 9월 15일 175로 좋은 수치이다. 요즈음은 상어기름은 찻수저로 1개 정도, 코코넛 기름은 팔과 다리에 찻수저로 2-3수저 정도를 자주 바르고 있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주성분인 스피루리나가 들어간 액상 제품도 바르고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면 장루가 2배씩 증가한다고 주치의에게 얘기했더니 외출해 산책을 하라고 해 이틀간 언덕을 오르내렸다. 첫째날에는 모르겠더니 두번째 날은 더 많이 걸어서인지 장루가 증가했다.

 

메게스트롤이라는 암환자들이 입맛을 증진시키기 위해 먹는 약을 먹지 않고도 입맛이 많이 좋아지고 걸을 때 기운이 더 생기니까

복막암도 낫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동식만 먹어 일부만 흡수하고 대부분은 위루로 배출시키지만 장루가 증가할 수록 더 나아질 것이다.

 

 

 

 

 '병원에서 죽는다는 것'-저자 야마자키 후미오- 독후감

 

 

 

 이 책은  현재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에서 말기암 환자로 죽어가는 경우엔 불필요한 의료시술로 환자가 편안하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하며 못한다며 호스피스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말한다. 이 책이 내 관심을 강하게 끈 대목은 말기암 환자들이 죽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언젠가 말기암 환자로 죽을 것인데 어떤 식으로 죽을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고칼로리 영양제를 맞으면 1년 내지 2년간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 지식도 좋은 정보였고 췌장암 통증을 겪던 환자가 모르핀 좌약을 하루에 두번 삽입하는 것으로 통증이 조절되었다는 것도 좋은 정보였다. 또 말기암 환자들의 3분의 1은 통증이 없다는 말도 무척 반가웠다.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도 환자가 죽을 때가 되면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진정제를 주사해주는데 이 책에서는 의식을 떨어뜨려 잠을 자게 해준다고 기술했다.

 

아래는 몇 명의 말기암 환자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내용이다.

 

오바야시는 칠순을 코앞에 둔 위암 환자였다. 2년 전에 위를 전부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두 달쯤 전에 복부 팽만을 호소하며 이 병원에 입원했다. 오바야시의 배가 복수 때문에 불룩했다는 것은 입원 후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암의 재발에 따른 암성 복막염이었다.

입원하고 얼마 후, 식욕이 떨어져 좀처럼 식사를 할 수 없게 된 그는 우쇄골하에서 심장으로 연결된 정맥에 가는 튜브를 꽂고 고칼로리 수액을 투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조치는 그가 쇠약해지는 속도를 늦춰주기는 했지만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먹는 것 자체가 삶이라 여겼기 때문에 맛없는 병원식과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것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과 살려고 하는 의지가 벌이는 처절한 싸움이었다. 간호일지를 보면 어느 날 그가 "오늘은 세 입이나 먹었다고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상태가 일주일 전부터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날 그는 음식을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서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밀어 넣어도 몸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의사도 가족도 그 어느 누구도 아무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 사실은 확실히 그의 병이 회복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먹을 수 없게 되자 비록 병명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죽음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낀 그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머잖아 자신에게 찾아올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오바야시 같은 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평온할 리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말기 암 환자 가운데 3분의 1은 통증을 느끼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오바야시는 그 3분의 1에 속하는 환자였고, 통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은 없었다.

 

 그날 아침부터 오바야시의 혈압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호흡도 얕아지기 시작했다. 고통을 호소하는 일이 거의 없던 그에게 주치의는 지금까지 특별한 조치없이 그저 막연히 고칼로리 수액과 그 수액에 섞어 항암제를 투여하라는 지시만을 내렸다.

 

 우선 점적주사에 떨어지기 시작한 혈압을 끌어올리기 위한 승압제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가 얕은 호흡으로 괴로운 듯 어깨를 들썩이자 산소가 공급되었다. 하지만 승압제를 투여하고 산소를 공급해도 이미 방치해버린 병이 불러온 죽음의 기운은 막을 수 없었다.

 오후에는 호흡이 더욱 얕아져서 아래턱만 겨우 헐떡이듯 움직였다. 호흡 촉진제가 투여되고, 강심제가 투여되었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호흡이 충분하지 않으면 심장은 효과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그저 헛일만 되풀이할 뿐이다.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되자 뇌에도 더 이상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부르는 소리에 어렴풋하게나마 눈을 뜨던 그는 이제 완전히 외계와의 접촉을 끊게 되었다. (이 환자에겐 불필요한 의료시술이 행해혔다. 죽기 직전에 항암제, 승압제, 호흡 촉진제, 강심제가 그것이다)

 

 192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미국 여성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에 나오는 한 구절이 저자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았다는데 그 구절은 아래와 같다.

 

  "환자가 삶의 마지막을 정 들고 애착이 가는 환경에서 보낼 수 있다면, 환자를 위해 일부러 환경을 조성할 필요는 거의 없다. 가족들은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진정제 대신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 잔의 포도주를 따라 줄 것이다. 집에서 만든 수프라면 그 냄새에 식욕을 느낀 그가 몇 모금 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숲 한 모금은 어쩌면 그에게 어떤 영양제보다도 훨씬 더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변화에 대해 가족들이 충분히 이해하기만 한다면 대부분의 환자가 바라는 '집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임종에 이르러 환자의 고통스런 숨소리와 가래 끓는 소리, 표정, 손발의 움직임 등은 병원에 있든 집에 있든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이다. 그러한 증상등 대부분은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시점에서는 병원에 있다고 해도 대처할 만한 방안이 거의 없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런 상태의 환자 대부분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생각하듯 고통이란걸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내시경으로 직접 위를 관찰해 문합부에 침윤해 있는 암을 확인하고 침윤된 부위에 직접 면역 활성화제를 국소 주입하기로 했다.

 

 이 치료는 예상보다 큰 효과를 발휘했다. 2주에 한 번씩 내시경을 이용한 이 치료를 반복했더니 재입원 당시에 유동식만 섭취하던 그가 2개월 째에는 칠부 죽까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회복은 식욕과 체중의 증가에 따라 분명해졌다.

 

 현대 의료에는 입으로 전혀 식사를 하지 못해도 환자의 목숨을 1년에서 2년은 연장시키는 고칼로리 수액법이란 것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입으로 먹어야 한다.  그가 다시 입원하기까지 3개월 동안 그의 몸 상태는 결코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투병 당사자인 그는 잠깐 사회에 복귀하기도 했지만 4개월째로 접어드는 날, 결국 병원을 다시 찾아 왔다.

 

 숨을 거칠게 쉬며 괴로운 듯 말을 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요. 이제 좀 편안하게 해주세요."

 

 통증은 잘 컨트롤되고 이었지만, 요 며칠 사이 오른쪽 가슴에 흉수가 급속하게 고이기 시작해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차였다. 그 때문에 하루에 한 번 흉수천자와 산소흡입이 필요했다. 산소를 흡입해서 안정을 되찾으면 증상이 진정되었는데, 이날 아침부터 호흡곤란이 심해졌던 것이다.

 

 산소흡입으로도 좋아지지 않는 호흡곤란은 인공호흡기로 호흡보조를 실시하거나 의식을 저하시켜 얕은 수면 상태로 해두는 수 밖에 없지만, 말기 암으로 인한 호흡곤란에 인공호흡기는 사용할 만한게 못 된다. 그것은 환자의 목소리를 빼앗고, 고통스러운 상태를 하루 연장시키는 것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의식을 저하시키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강한 진정제를 사용하면 그는 의식이 회복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한편 진정제를 주사하지 않아도 지금의 혈압이라면 스물네 시간 버티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그가 굳이 고통을 참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편안해지고 싶다는 그의 호소를 들어주기로 했다.

 

 이 점에 대해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한 가지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사용하려고 하는 주사약은 결코 그의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의 의식을 얕은 수면 상태로 바꿔서 그가 느끼는 고통을 줄여주는 것일 뿐이다. 주사약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그의 죽음은 똑같이 찾아올 것이다.

 

 주사를 놓고 15분이 지나자 그는 얕은 숨을 쉬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날 저녁까지 계속 잠을 잤다. 오후 6시, 그의 최고 혈압은 50을 밑돌았다. 이제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노벨상 작가 솔제니친의 책,

암병동이 아주 유익하고 재미있다는 것을 이제사 알게 되다

 

 

 아래에 열거한 인용문들이 내게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사회가 암에 걸린 것 같았던  스탈린 시대의 소련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이 책의 절반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암이라는 질병 자체와 암환자의 심리에 대한 이해와 묘사가 탁월했다.

 

 그리고 1950년대 소련의 암치료법에 대해 알게 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지금과 같은 좋은 방법인 수술이 있는가 하면 너무도 다르거나 오히려 반대인 방법들이 있었다. 지금은 암환자가 햇빛을 쬐거나 따뜻하게 하는 것이 암 극복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그 때는 암을 키운다고 했다.

 

또 현재는 전립선 암 환자에게만 여성호르몬을 사용하는데 남자의 모든 종류의 암환자에게는 여성 호르몬을 주사하고 여성의 모든 종류의 암환자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사했다. 그리고 수술 후 지금은 주로 항암제를 사용하는데 그 때는 주로 방사선을 사용했다.  이런 것을 보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암치료법도 시간이 50-60년이 지나면 어떤 방법은 지독히 잘못됐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행복이란 생활수준에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의 접촉, 그리고 우리들이 생활을 어떻게 보는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접촉도, 생활을 어떻게 보는 것도, 우리들의 마음에 달렸으며, 사람은 행복을 바라기만 한다면 항상 행복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근에 와서는 이렇게 휴식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의 육체가 힘의 회복을 요구하는데 못지않게 정신은 외부의 소리나, 대화, 일의 예정에서 벗어나고 의사로서의 입장을 떠나서 조용히 명상에 잠기기를 요구했다. 특히 아내가 죽은 후로는 내면이 깨끗하고 투명한 상태를 요구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마음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지며 충실해지는 것이다.

 

 "이런 때 존재이유는, 긴 과거로부터 짧은 미래에 이르는 자기 자신의 존재이유, 그리고 죽은 아내의, 어린 손녀의, 모든 인간의 존재이유는 결코 일하는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나깨나 일에만 전념하고, 일에만 관심을 보이며, 다른 사람은 일에 의하여 그 사람은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존재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사람 한사람의 배후에 던져진 영원한 모습을 어디까지나 흩뜨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훼손하지도 않은 채 보전할 수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마치 잔잔한 연못에 비친 은빛색의 달처럼......"

 

 "자기 병의 진행상황이나, 치료에 있어서의 자기의 새로운 입장 같은 것이, 지금 돈초바(작품 속 의사)로서는, 마치 아들의 그림처럼 이상하게 보였다. 이제 돈초바는 유능한 지도적 힘으로써 치료에 종사할 수는 없었으며 한낱 고달프고 무능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최초의 발병은 돈초바를 개구리처럼 짓밟았다. 그래서 앓고 있는 나날이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질서가 뒤집히고 말았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남편과 아들, 딸, 손녀를 버리고, 일도 버려야 했다. 똑같은 일이 이제부터 돈초바의 몸을 꿰뚫고 진동소리를 내게 했다. 하룻밤 사이에 생활의 모든 것과 인연을 끊고, 창백한 그림자가 되어서 고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죽을 때까지 계속 고생할 것인지, 아니면 생활에 복귀하게 될지 그것은 아직 알 수 없었다.

 

 돈초바의 과거의 생활은 화려하거나, 즐거운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으며, 그저 일과 불안의 반복이었던 것 같았으나, 지금 와서 보니, 그 생활은 얼마나 즐거운 것이었던가. 이 생활에 이별을 고한다는 것이 눈물겨운 괴로움이 아닌가!"

 

 "돈초바가 갑자기 나른해진 것은, 오렌시첸코프의 평소 지론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었다. 즉 현대인은 죽음 앞에서는 무력하며, 죽음을 맞이할 각오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며칠 후에는 자기도 똑같이 가련하고 어리석은 환자로서 병원의 침대에 누워서, 외모 같은 것에는 무관심해지겠지, 그리고 선배나 경험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통증을 두려워하겠지, 그리고 아마 좋지 않은 병원에 입원했다고 후회하고, 치료가 제대로 되는지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또 환자용 파자마를 입고 싶지 않다거나, 밤마다 집으로 가고 싶다거나, 그러한 자질구레한 평소의 권리가 마치 최고의 행복처럼 그립게 될 것이다.

"

 "코스토글로토프(스탈린 시대에 유형과 추방을 당했던 주인공)의 정신을 형성하고, 낙인을 찍었던 그 냉혹한 세계에는 '이해를 초월한 친절한 행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실제 그런 행위는 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코스토글로토프는 그런 일은 이제 다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지금, 그 초대를 단순한 친절 이외의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설명하는 것이 코스토글로토프에게는 편했다.

 그들은 무슨 계략이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쪽에서 어떻게 나갈 것인가? 코스토글러토프는 알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비극적인 소설이라고 해도, 우리들의 경험에 비하면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뿐이에요." 엘리자베타는 계속 이야기했다. '아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지하감옥에 내려가, 함께 죽을 수 있게 허락되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마저 들을 수 없군요. 혹시 제가 수용소로 찾아간다고 하면.....' 

 

 '가지 말아요! 소용없는 일이에요.'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안나 카레니나의 불행하고, 비극적이며, 파멸적인, 그밖의 여러 가지 형용사가 붙은 생애에 대하여 작문을 쓰게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안나는 과연 불행했을까요?  그는 정열적으로 살았고, 그 대가를 치른 것예요. 행복한 인생이었어요. 그녀는 자유스럽고 교만한 여성이었어요! 이것과 비해서 우리는 어쨌나요? 자기가 태어나서부터 살고 있던 단란한 집에, 외투를 입고 군모를 쓴 사람들이 갑자기 밀어닥쳐서는, 24시간 내에 손에 들 수 있는 물건만 가지고 그 집을 떠나라고 명형했어요."

 

 "수술 직전에 하던 이야기를 코스토글로토프는 생생하게 되새겼다. 그때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내부는 전부가 나의 것이 아니야, 이따금, 분명히 그렇게 느끼게 돼. 뭔가 절대로 근절할 수 없는 아주 고귀한 것이 내부에 도사리고 있어요! 세계 정신의 조각과도 같은 것이야. 당신은 그런 것을 느껴보지 못했어?"

 

 "젊은이! 그러한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돼요! 자기의 고통이나 이 참혹한 시대 때문에 사회주의 가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돼. 결국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역시 자본주의라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서 부정되고 말았어."

 

 "수용소에서는......모두 개인기업이 좋은 점이 많다는 논의가 있었어요. 생활이 편해진다는 거죠. 아시겠어요? 물건이 언제나, 무엇이든 다 갖춰 있고, 어디에 가면 살 수 있는지 분명하거든요."

 

 "아니야, 그것은 속물들의 생각이야! 개인기업은 확실히 유연한 것이긴 하지만, 그 좋은 점은 좁은 범위 안에서만 성립되는 거야. 개인기업은 브레이크를 걸어두지 않으면 반드시 동물인간이라고 할꺄, 거래인간이라고나 할 수 있는 놈들이 나타나게 돼. 한정없이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밖에 모르는 놈들이지. 자본주의는 말이야, 경제적으로 파탄하기 전에, 이미 윤리적으로 파탄하고 있어! 벌써 예전에!"

 

 "하지만 말이예요." 코스토글로토프는 얼굴에 주름을 모았다. "한없이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밖에 모르는 놈들은, 솔직히 말해서, 여기서도 이따금 볼 수 있어요. 감찰을 가진 수공업자뿐이 아니고요. 예를 들면 예멜리얀 사시트 같은.................."

 

 "그렇지!" 슐루빈의 한쪽 손이 코스토글로투프의 어깨를 점점 더 무겁게 눌렀다. "그것은 즉 올바른 사회주의가 아니기 때문이야. 사회가 급격히 변할 때, 우리는 생각했었지. 생산수단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인간은 곧 변한다고 말이야! 하지만 어림도 없어요! 인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 인간도 생물의 일종이었으니까! 그것이 변하는 데는 몇 천 년이 걸려!"

 

 "그럼 어떤 사회주의라야 할까요?"

 "어떤 사회주의가 좋을까?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아요. 사회주의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도입 형태를, 즉 국가 기구의 질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야. 그것은 함부로 사람의 목을 자를 것이 아니라는, 말하자면 권리의 주장이며, 그 사회주의가 무엇 위에 세워지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었어. 사회주의는 물질의 과잉된 상태에서는 건설할 수 없어요. 들소처럼 되어버린 인간은 그 물질까지도 짓밟아버리니까 말이야. 그리고 지치지도 않고 증오에 찬 말로써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도 좋지 않은 일이야. 사회생활을 증오의 기초 위에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과거의 증오는 이제 그만두고, 우리는 이제 사랑할 때가 왔어! 이러한 사회주의가 되지 않으면 안돼요."

 "그럼, 그리스도교적 사회주의인가요?" 코스토글로토프는 상상해보았다.

 

 "'그리스도교적'인 것과는 달라.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압제에서 벗어난 사회에는 이러한 명칭의 정당이 있었으나, 도대체 누가 누구와 손을 잡고 그러한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것인지, 어딘가 분명치 않아. 지난 세기 말에는 톨스토이가 이 사회에 실제로 그리스도교를 심어보려고 했으나 톨스토이가 제창하는 복장은 현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그 설교도 현실과 아무런 연관을 가지지 못했지.

 

내 생각으로는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이 러시아, 우리의 온갖 회한과 고백과 반란의 나라,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나 크로포트킨을 낳은 이 러시아에 있어서 올바른 사회주의는 오직 하나밖에 없어. 즉 도덕적 사회주의! 이것만이 현실적인 것이야."

  

 솔제니친은  러시아 문학의 훌륭한 전통을 추구해 온 윤리적 노력을 높이 평가받음으로써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암병동>이란 작품은 그의 문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당국의 탄압에 의해 국외에서 출판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3년간의 유형생활 중 우즈베크 공화국의 타슈겐트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작가가 자신의 '죽음 일보 직전'의 상황을 배경으로 그린 체험적 기록이다.

 

 이 작품은 스탈린의 죽음, 비밀 경찰 수뇌 베리야의 총살, 수상 말렌코프의 해임을 거쳐 스탈린 시대로부터 해빙기로 전환해 가는 55년이란 소련사회의 격동기를 시대 배경으로 삼아, 저마다 독립된 세계의 특징과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을 등장시켜 소련 사회의 모순과 부정을 예리하게 고발하고 있다.

 

 특히 시사적인 인물로 등장하는 루사노프는 스탈린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인물로, 이전의 그 뽐내던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잃어버리고 누구보다도 비굴한 모습으로 죽음의 공포아래 삶에의 집착에 빠지고 있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관료의 모델이며, 이와는 대조적인 인물 코스토글로토프는 인간성을 말살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소련 관료사회의 모순에 분연히 저항하는 의지의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암병동>의 무대와 인물, 그리고 냉철한 시각은 당대 소련 사회의 축소판이며, 음울하고 비극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화와 그 속에 숨어 있는 대중의 향취는 사회고발의 자서전적인 소설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내가 항암치료를 받았다면이란 질문에 대한 답변

 

항암치료를 받았다면 1년 안에 죽었을 겁니다.   안했기 때문에 3년을 넘겼다고 봅니다. 지금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항암치료받다 부작용으로 구역질, 불면증 등 고통으로 신음하다 세상을 떠납니다.  

 

항암치료로 효과 본 사라은 제가 이 병원에서 한 명 보았습니다.   담도암 환자였는데 6년 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 환자는 몸이 튼튼해보였습니다.   그 외는 살고 있다해도 시력이 거의 장님 수준인 사람이있었고 항암 후 뼈에 전이되자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1달 만에 더 심각해져서 수혙을 많이 해도 빈혈이 교정되지 않고 혈소판을 아무리 들이 부어도 올라가지 않아   깨진 척추 수술도 못 받고 세상 떠나게 될 지경이었답니다.

 

담도암 환자는 튼튼할 뿐 아니라 쓰는 항암제마다 잘 들었답니다.   굉장히 드문 경우이지요.   반면에 어떤 유방암이 몇 군데 뼈로 전이된 환자가 여성 호르몬억제제만 사용하면서   스피루리나가 들어간 액상으로 된 건강기능 식품을 복용하면서 녹즙, 붕어즙 먹는 것, 운동으로 유방암은 없어지고 뼈전이도 계속 줄고 있답니다.

 

뼈전이가 되면 통증이 아주 심한데 그 액상 식품을 통증 부위 피부에 바르면 통증이 미미해져 암통증 공포로부터 벗어났답니다. 녹차잎과 상어 기름을 많이 먹고 자궁내막암이 복막까지 전이되었던 사람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것들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데 저는 최소로만 사용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최소로 사용하느냐면 그 식품들은 비싼데 제겐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 가족은 병원치료비는 잘 대주고 오래 살라고 하는데 병원에서 받는 치료가 아주 중요하지만 전 이것만 가지곤 안 된다고 봅니다.   영양제 주사를 맞는데 종합비타민 주사는 맞으면 열이 나니 그냥 영양제만 맞는데 설명서에 따르면 비타민과 미네랄을 복용하라합니다.  

 

그래서 전 녹차와 스피루리나를 피부에 바릅니다. 요즈음은 영양제 중 지방성분이 간염을 야기해 황달을 일으킨다기에 그것도 중지하고 코코넛 기름까지 피부에 바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