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설탕·지방…식탁의 배신 아시나요?
가공식품 기업들이 현대인 입맛 길들여 몸 망쳐놓았다
2010년 해설보도 부문에서 퓰리처 상(Pulitzer Prize)을 수상했고 1999년과 2006년에도 최종 후보에 올랐던 <뉴욕 타임스>의 스타 기자 마이클 모스는 오랜 시간을 발로 뛰어 가공식품 대기업의 내부 고발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기밀 서류를 입수하고, 수십 년 전의 기록부터 최근까지 해당 기업들의 생생한 정보를 압축했고 과학적인 검증 작업을 거쳤다.
마이클 기자는 최근 펴낸 <배신의 식탁>(명진출판)이란 책에서 가공식품 기업의 음모와 그들이 우리의 입맛을 어떻게 길들여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지를 낱낱이 고발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몸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비뚤어진 상혼이 초래한 사회비용
“나는 이런 현실을 알리고자 한다. 거대 식품 기업들이 소비자는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착각하고서 온 가정의 식탁을 점령하기 위해 도박을 일삼는 행태를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그들 스스로 불안해하면서도 왜 앞으로만 나아가는지를 파헤칠 것이다. 더불어 비뚤어진 상혼 이 초래한 사회비용의 책임을 그들에게 돌릴 것이다.
가공식품 업계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대로 해주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바빠 죽겠는데 가스 불 앞에 매여 있을 필요 없이 빨리 해치우기를 원하지 않았느냐면서 말이다. 이런 사회 풍조를 만든 일등공신인 소금, 설탕, 지방은 그들 손에 들어 간 이상 더 이상 영양소가 아니라 무기에 가깝다. 경쟁 업체를 쓰러트리고 더 많은 것을 갖고자 계속 의존하게 되는 무기 말이다.”
탐사 저널리즘의 극대치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중성까지 확보한 마이클 기자의 책은 미국에서 <Salt, Sugar, Fat>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를 만큼 2013년 상반기 미국 독서계에서 열풍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그의 책은 ‘설탕으로 배신하다’ ‘지방으로 배신하다’ ‘소금으로 배신하다’라는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공식품 기업의 핵심 재료를 주제로 장을 구성했으며, 각 글에서는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음식이 어떻게 조작된 것인지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우여곡절을 거쳐 세상에 나온 달콤한 아침 식사용 시리얼 덕분에, 가공식품 업계는 앞으로 천년만년 우려먹을 핵심 전략을 찾아냈다. 가공식품 업계는 비법 재료 삼총사 즉, 소금, 설탕, 지방 중 어느 하나에 비난 여론이 집중될 때마다 이 전략에 의지해서 소란을 간단히 해결했다. 바로 문제가 된 성분을 빼고 다른 성분을 그만큼 더 넣는 것이다.”
독자들은 마이클 기자의 책을 통해 가공식품들의 배신을 알고 나면 불편함을 넘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가공식품은 모두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으며,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식료품 하나를 고르는 데도 더 신중해지는 일상의 변화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임상연구 결과, 아침에 프로스트 미니나 위츠를 배불리 먹은 아이 들은 집중력이 20퍼센트 가까이 향상된 것으로 밝혀졌어요. 그러니 든든히 먹여주세요. 수업에 집중하도록 말이지요.’ 이 광고는 TV, 인터넷, 다양한 인쇄 매체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퍼졌다. 심지어는 우유 팩 옆면에도 이 광고가 실려 있다. 이 광고의 메시지에 세뇌된 부모 중에는 집중력이 20퍼센트 오르면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 따져보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광고에는 중대하고 근본적인 맹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광고의 주장이 허위라는 것이다.
임상연구 결과는 어떻게 설계하고 실험했느냐에 따라 충분히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광고가 나오자마자 누구라도 이 부분을 의심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놀라운 진실이 있으니, 이 연구의 주장을 그대로 믿어준다고 해도 광고에 근거가 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세계의 모든 식탁 지배할 수 있다고?
마이클 기자는 오랜 조사 끝에 거대 가공식품 기업들이 월스트리트를 배경에 두고 전 세계인의 입맛을 소금, 설탕, 지방으로 길들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게 자사 식품에 중독된 사람들을 볼모로 이익을 불리는 거대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대중을 중독시키는 원리는 다음과 같았다.
가공식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맛과 편의성이다. ‘얼마나 맛있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가’가 가공식품의 필수 항목인 셈이다. 맛과 식감은 자극적이면서도 혀끝에서 금방 잊혀서 아쉬움을 남겨 반복적으로 그 맛에 끌리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렇게 소금, 설탕, 지방의 과다한 조합으로 대중을 길들이는 가공식품의 완벽한 맛을 ‘지복점’이라고 한다. 식품 기업이 연구소까지 차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제품마다 정확한 지복점을 알아냈을 때 기업이 원하는 만큼 팔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마이클 기자는 ‘바쁘니까 오늘만’, ‘먹고 싶은데 이 정도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장바구니에 무심코 가공식품을 넣었다면, 이미 가공식품에 중독됐다는 방증임을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지방에는 특정 맛은 숨기면서 동시에 특정 맛은 드러내는 신비한 힘이 있다. 이 능력의 덕을 톡톡히 본 대표적인 예가 사워크림이다. 사워 크림에 들어 있는 지방 성분이 혀를 한 겹 감싸서 신맛이 미뢰에 너무 많이 닿지 않도록 적당히 걸러준다. 게다가 이 지방 코팅은 신맛을 가려주는 동시에 사워크림의 은근하고 향기로운 풍미를 더 민감하게, 그리고 더 오래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가공식품 기업이 원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지방이 가공식품 업계에서 총애를 받을 수밖에.
무엇보다도 지방이 설탕을 능가하는 보물이 될 만큼 뛰어난 장점은 입안에서 휘몰아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품 성분을 마약에 비유한다면, 설탕은 뇌를 급습해서 강타한다는 면에서 필로폰이라고도 불리는 메탐페타민과 같지만, 지방은 은밀하지만 강력하게 효과를 발휘하는 아편과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지은이는 가공식품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금·설탕·지방의 물리적 형태와 구조에 손을 댔다는 사실과, 비만·심장질환·당뇨병 등의 국가적인 건강 위기에 자신들의 제품이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공식품의 주요 성분들에 의해 생겨나는 질병들에 대해서 의학적·과학적으로 검증한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가공식품 광고의 실체를 밝히다
“편이성과 가공식품의 소금 함량이 비례한다는 게 문제였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이 일주일간 섭취한 소금의 4분의 3 이상이 이 가공식품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제품들의 소금 함량은 그저 조금 더 많은 수준이 아니었다. 인스턴트 마카로니 치즈, 데우기만 하면 되는 크림소스 치킨, 스파게티와 미트볼 통조림, 샐러드 드레싱, 토마토 소스, 냉동피자, 수프 등등 품목을 가릴 것도 없이 말 그대로 포대자루째 들이부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정도였다. 심지어 다이어트용 혹은 당뇨병 환자용으로 특별히 만들었다는 저지방·저설탕 제품에도 상당량의 소금이 들어 있었다.
수퍼마켓의 어느 코너에서도 소금을 더하지 않은 제품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가공식품 산업에서 소금은 설탕, 지방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 막강한 무기로 자리 잡은 것이다.”
“엄청난 양의 소금, 설탕, 지방이 들어 있는 가공식품을 먹으면 혈액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음식을 마약에 비유할 수 있는 근거는 혈액이 아니라 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음식, 그중 에서도 소금과 설탕, 지방의 함량이 높은 가공식품이 뇌에서 마치 마약처럼 작용하는 까닭이다.
가공식품과 마약 모두 일단 몸에 들어가면 똑같은 신경회로를 거쳐 똑같은 과정을 따라 뇌의 쾌락중추에 도달한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몸에 이로운 일을 했을 때 발동하는 보상 반응을 일으킨다. 물론 이 경우는 뇌가 가공식품과 마약이 몸에 이롭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말이다.”
마이클 기자는 가공식품 기업이 매체와 광고를 통해 단 한 번도 정직한 적이 없었다고 꼬집어 말한다. 그리고 세계의 유수 기업들이 어떻게 소비자를 홀렸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웰빙, 건강, 유기농’ 같은 단어는 말뿐이고 효과가 거의 없는 유제품 기업과 육가공 기업의 광고, 광고를 통해 어떻게 먹을 것인지를 알려준 뒤 요리 경연에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이슈를 만든 크림치즈 업체, 어린이에게는 친근한 캐릭터를 앞세우고 주부들에게는 아이의 지능에 보탬이 된다는 허위 광고를 한 시리얼 기업의 기만, 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유명 여성을 앞세워 가공식품을 유용하고 편리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만든 마케팅, 고객과 1:1로 소통하는 듯한 전략을 펼친 판촉, 스포츠 스타와 패스트푸드점 같이 남성과 청소년이 주고객인 산업과 연계한 탄산음료 기업, 그리고 마트의 진열을 쥐락펴락하는 검은 음모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뿐만 아니라 식품 기업이 광고를 통해 보여주는 실험 결과가 얼마나 허황되고 비논리적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마케팅으로 매출 신화를 기록한 당사자들도 만났다. 과학적 증명과 허심탄회한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합법적 사기 행위를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우리는 가공식품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것이 어떤 원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우리의 식탁을 지배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마이클 기자의 발로 뛴 취재 덕분에 그동안 덮어두었던 많은 사실을 낱낱이 알게 된다.
전 세계에 전염병처럼 번진 비만, 혈액, 암, 뇌졸중 등의 질환들에 대해 왜 거대 가공식품 기업이 1차적인 책임을 느껴야 하는지를 알린다. 또한 거대 가공식품 기업의 임원들은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식품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인시킨다. 우리는 그들이 행한 배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를 분노하고 배척하며 가공식품의 덫에 걸린 우리 자신을 구원해야만 한다.
김보미 기자 penfree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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