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의 ‘의학적 선택’, 누구나의 선택이 될 순 없다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가 자신의 내밀한 의학적 선택을 고백해 화제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지난 14일 뉴욕타임즈에 직접 기고한 글을 통해 유방암을 방지하기 위해 예방적으로 양쪽 유방절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졸리는 '내 의학적 선택'이란 제목을 글을 통해 "나는 결함이 있는 유전자인 'BRCA1'를 가지고 있었다. 이 유전자는 유방암뿐만 아니라 난소암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의사들은 내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87%, 난소암에 걸릴 확률은 50%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졸리는 "나는 위험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고,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유방암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난소암보다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결정에 따라 지난 2월 초부터 예방적 유방 절제술을 위한 수술 과정에 들어가 지난달 27일까지 유방재건술까지 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유방절제술을 받은 후 내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87%에서 5%로 감소했다. 이제는 내 아이들에게 '더이상 유방암으로 엄마를 잃을 걱정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졸리의 ‘의학적 선택’은 곧바로 온라인 상에서 큰 화제가 됐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여배우로서 힘든 선택을 지지하는 의견이 쏟아졌다.
BRCA 유전자 검사 남용 우려도
다른 한편에서는 유명 여배우의 고백으로 예방적 유방절제술에 대한 과도하고 왜곡된 관심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졸리가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게 된 이유는 유방암 유전인자 검사(BRCA 유전자 돌연변이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검사는 유전성 유방암과 관련한 유전자 중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로 알려진 BRCA1, BRCA2 유전자의 변이를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다. 의학계에 따르면 이 두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관찰될 경우 평생 유방암에 걸릴 위험률이 50~90% 증가하고, 난소암에 걸릴 가능성은 BRCA1 돌연변이에서 60%, BRCA2 돌연변이에서 30%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서구에서는 BRCA 유전자 돌연변이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을 경우 20~40%가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고, 50% 정도가 예방적 난소절제술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유전성 유방암에 대한 전향적 다기관 공동연구를 통해 BRCA1/2 유전자 변이를 보유한 여성의 경우 유방암 발병 위험이 상당히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한국인 유전성유방암 연구사업단이 2007년 5월부터 2010년 5월까지 3년간에 걸쳐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유전성 유방암에 대한 전향적 다기관 공동연구 결과, BRCA 변이가 있을 경우 70세까지 유방암 누적발생률은 BRCA1는 72.1%, BRCA2는 66.3%로 조사됐다.
70세까지 난소암의 누적발생률은 BRCA1과 BRCA2에서 각각 24.6%와 11.1%로 나타났다.
BRCA1/2 유전자변이를 보유한 여성이 70세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하면 10명중 최대 7명이 유방암에 걸릴 수 있으며, 최대 2명은 난소암에 걸릴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유방암 또는 난소암 가족력이 있는 775명의 유방암 환자를 분석한 결과, 전체 BRCA1/2 변이 유병률은 21.7%로 나타났고, 유방암 혹은 난소암의 가족력이 많을수록 유의하게 BRCA1/2 변이 유병률이 높았다. 이처럼 국내에서도 유전성 유방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많은 병원에서 BRCA 유전자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서는 이 검사를 통해 BRCA1/2 유전자의 변이가 관찰됐다 하더라도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극히 드물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몇 해 전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관찰된 환자를 대상으로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한 것이 첫 사례로 보고됐다.
당시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BRCA 유전자 검사를 한 결과, 난소암 치료를 받고 있던 자신의 언니와 동일한 위치에서 BRCA2 돌연변이가 관찰된 경우였다.
삼성서울병원 외과학교실은 예방적 유방절제술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지난 2010년 한국유방암학회지에 이 환자의 예방적 유방절제술 실시 결과를 증례 보고했다.
연구진은 증례보고에서 "환자의 나머지 가족들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추가로 시행되었고, 살아있는 나머지 4명의 언니 중 3명에서 BRCA2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돼 유방암으로 사망한 1명을 제외한 7명의 남매 중 총 5명에서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환자는 현재 유방암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가족력, 유전자 검사 결과 및 암에 대한 두려움으로 양측 유방의 예방적 절제술 및 성형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BRCA1/2 변이가 관찰될 경우 유방암 검진 주기를 단축하거나 예방적 화학요법으로 ‘타목시펜’(Tamoxifen) 복용을 권한다.
예방적 유방절제술의 경우 정서적인 문제와 비용 등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적극 권장되지는 않는 실정이다.
가족력 지닌 고위험군은 BRCA 유전자 검사 필요
BRCA 유전자 검사가 지닌 문제점과 한계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최두호 교수(방사선종양학과)는 '유방암 유전자 BRCA1과 BRCA2'라는 논문을 통해 "유방암 유전자 검사는 그 결과에 따라 본인은 심리적 충격을 받을 수 있으며 보통 몇 주 후에는 만성적 근심이나 혼란, 수면장애 등을 겸험한다고 보고된다"며 "그리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유전자를 물려받은 사람과 비켜간 사람, 그리고 물려준 사람 간 적지 않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지닌 경우 단지 유방암 등의 발생률이 증가할 뿐이고 치료를 하면 예후에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우리나라에서 유전병이란 곧 치명적으로 유전되는 병이란 생각이 강해 가족간 갈등도 유발할 수 있다"며 "따라서 유방암 유전자 검사에는 전문적인 유전상담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BRCA 유전자 검사를 정확하게 판독하는 것이 쉽지 않고, 국내에는 판독 결과에 따른 치료지침이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다.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 홍영준 과장(유전암센터장)은 "BRCA 유전자 검사를 판독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로우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자칫하면 판독의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다"며 "또한 판독 결과에 따른 치료지침 역시 한국인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사용되는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과장은 "직계 가족 중 유방암 가족력 등을 갖고 있는 고위험군의 경우 BRCA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며 "그러나 유명인의 사례가 언론을 통해 소개되면서 자칫 BRCA 유전자 검사가 남용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단, 유전자 검사를 통해 BRCA 변이가 관찰됐을 경우 난소암의 특성을 고려해 예방적 난소절제술은 유방절제술 보다 적극 권장된다.
홍 과장은 “난소암의 경우 조기발견이 어렵고 다른 장기에 전이된 상태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며 “ 때문에 BRCA 검사 결과에 따라 예방적 차원에서 난소절제술을 받는 것은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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