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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직장암, 대장암 수술…공무원 오준석 국장의 체험보고서

라이프케어 김동우 2022. 7. 10. 12:12

[2022년 희망가] 위암, 직장암, 대장암 수술…공무원 오준석 국장의 체험보고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살길도 열립니다

 

【건강다이제스트 | 허미숙 기자】

 

1999년, 위암 수술을 했다. 36세에. 위암 3기 말이라고 했다. 위 전체를 절제했다.

2014년, 직장암 수술을 했다. 51세에. 직장암 2기라고 했다.

2015년, 대장암 수술을 했다. 52세에. 대장을 절제했다. 장루 장애인 판정도 받았다.

위암, 직장암, 대장암까지 줄줄이 이어진 암과 사투를 벌이며 가혹한 운명에 맞섰던 사람!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위암 수술을 한 지 23년이 지났다. 직장암 수술을 한 지 8년이 지났다. 대장암 수술을 한 지 7년 지났다. 2021년에는 대장암 수술 후 5년 완치 판정도 받았다. 2022년 5월 현재 건강은 ‘이상무’다.

충남 홍성군청에서 4급 행정복지국장으로 재직 중인 오준석 국장(59세)이 그 주인공이다.위암, 직장암, 대장암까지 끈질긴 암의 공격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수많은 암 환우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직접 만나봤다.

 

 

 

 

 

1999년 5월 18일에…
위암 수술을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도 위암인 줄 몰랐다. 위 상부에 많은 출혈이 있어서 수술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내의 신신당부로 숨긴 거였다. 오준석 국장은 “수술 후 일주일 만에 비로소 위암 3기 말이어서 위장과 비장을 완전히 제거하고 식도 끝부분과 소장 윗부분을 연결해 놓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한다.

 

그 충격은 말로 다 못 한다. 서른여섯 젊은 나이가 너무 서러웠다. 왜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1982년 19살 어린 나이에 충남 홍성군 홍북면에서 지방행정서기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그였다. 그 후 홍성군청으로 자리를 옮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랬던 그가 건강에 이상 신호를 느낀 것은 1998년 11월경부터였다. 갑자기 화장실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119에 실려 갔다.오준석 국장은 “작은 개인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상부 위장 출혈이라고 했다.”며 “링거주사를 맞고 수혈을 받은 후 일주일 만에 퇴원을 했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자고 했지만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가 발목을 잡았다. 오준석 국장은 “당시 예산 부서에서 일할 때였는데 연말에는 예산 편성 문제로 업무가 많아 병원에 갈 여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1999년 3월부터 위가 아파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약을 복용해도 복통이 가시지 않았다. 견디기 어려운 복통이 수시로 나타났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됐을 때 대학병원으로 갔다. 1999년 5월 11일 수원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았던 이유다.

 

그런데 이상했다. 곧바로 입원을 하라고 했다. 5월 18일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담당의사는 위 상부에 많은 출혈이 있어서 수술을 한다고 했고, 그런 줄 알았다.오준석 국장은 “그렇게 하게 된 수술이 바로 위암 3기 말 수술이었다.”며 “아무 것도 모른 채 위장과 비장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고 말한다.

 

위암 수술 후 살기 위해 했던 것들

위암 수술 후 맞닥뜨린 현실은 암담했다. 몸무게는 70kg에서 52kg으로 줄었다. 위장을 절제한 탓에 식욕감퇴, 팽만감, 소화불량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암 재발 수치도 가파르게 상승해 하루하루 살얼음판 인생이 되고 말았다.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몸! 예전의 활력을 잃어버린 몸! 암 재발 수치도 높은 몸!오준석 국장은 “너무도 많이 변해버린 현실에 기가 막혔지만 퇴원한 다음 날부터 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첫째, 새벽마다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 운동장을 돌았다.

처음에는 반 바퀴도 겨우 돌았다. 그래도 새벽마다 돌았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았다. 박수를 치면서 돌고, 뛰면서 돌기도 했다.암 재발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1999년 10월부터 1년 동안 항암치료를 했는데 그때도 운동만은 멈추지 않았다. 항암제의 독성으로 초주검이 됐을 때도 날마다 운동장을 돌았다.

 

주말에는 꼭 등산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주말에는 반드시 등산을 했다.오준석 국장은 “날마다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하면서 면역력과 체력관리를 했다.”고 말한다.

 

 

▲ 오준석 국장은 암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운동을 했다.

 

둘째, 담배도 끊고 술도 끊었다.

암 수술 후 15년 동안 피우던 담배도 바로 끊었다. 자주 마시던 술도 바로 끊었다.

 

셋째, 음식은 철저히 가려서 먹었다.

위장과 비장을 제거한 탓에 소화효소가 부족했다. 소장 내 세균 번식도 문제였다. 소장의 통과 시간도 짧아서 애를 먹었다.그러니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많이 먹을 수도 없었다. 음식은 철저히 가려서 먹고 소식했으며 짜고 맵고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했다.

 

위암에 좋다고 알려진 느릅나무, 영지버섯, 동충하초, 홍삼 등을 끓여서 먹었고, 운동 후에는 당근+사과+오이 등을 갈아서 만든 주스도 열심히 먹었다.오준석 국장은 “아내의 지극정성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며 “날마다 정성껏 밥상을 차려준 아내가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이런 생활 덕분인지 위암 수술 후 15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 건강도 웬만큼 회복돼 한시름 놓았다. 직장에서는 지방행정사무관으로 승진도 하면서 좋은 일도 있었다.그런데 누가 시샘이라도 했던 걸까? 위암 수술을 한 지 15년 만에 또 다른 시련이 발톱을 드러냈다.

 

2014년 4월 8일에 직장암 수술

위암 수술을 한 지 15년이 지났을 때였다. 2014년 1월 정기검진을 했다. 그런데 담당의사가 이상한 말을 했다. CT 검사 결과 직장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면서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했다.검사 결과는 충격이었다. 2014년 3월 20일, 담당의사가 한 말은 암이었다. 직장암이라고 했다. 또다시 암? 믿기지가 않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직장에서 15cm 들어간 위치에 있고, 수술을 하면 완치도 가능하다고 했다.그래도 납득이 안 됐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 맞춰 운동을 하고 등산을 하고 음식도 가려먹으면서 철두철미하게 건강관리를 했는데 그런 노력들이 헛수고가 됐다는 것이 너무 허망했다. 왜 두 번씩이나 이런 고통을 주는지 서럽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담당의사는 “체질적으로 암에 약한 편”이라며 “그러니 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했다.

오준석 국장은 “수술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유서도 남기고 2014년 4월 8일 직장암 수술을 했다.”고 말한다.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 직장암 2기로 판명되어 다행히 항암치료는 하지 않았다. 직장암이 몰고 온 풍파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그것으로 모진 시련도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또 다시 닥친 가혹한 운명에 넋을 잃고 말았다.

 

 

▲ 9급 말단 서기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오준석 국장은 현재 충남 홍성군청에서 4급 행정복지국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5년 5월 22일 대장암 수술

직장암 수술을 한 지 1년 만이었다. 2015년 4월 11일 정기검진 차 대장내시경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보인다면서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다.오준석 국장은 “5일 만에 나온 검사 결과는 믿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다시 암이었다. 대장암이라고 했다. 대장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오준석 국장은 “혼이 탈탈 털리는 기분이 들더라.”고 말한다.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암의 굴레에서 피 말리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지 암담했다. 위도 없는데 대장 전체를 절제하면 어떻게 살란 것인지 도무지 그 끝을 헤아리기도 힘들었다.직장에도 염치가 없었다. 조금 살만하면 또다시 암이 태클을 거니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오준석 국장은 “대장암 수술을 할 때는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장기휴가를 내고 아내와 둘이 가서 수술을 했다.”고 말한다.수술실로 향하면서 바라고 또 바랐던 것은 단 하나였다. 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못 할 것이 없다는 거였다.

 

평생 장루를 달고 살지만…

오준석 국장은 2015년 5월 22일 대장암 수술을 하면서 대장 전체를 절제했다. 그때부터 장루를 달고 사는 몸이 됐다. 그러면서 번거롭고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반드시 소식을 해야 하고 매운 음식은 입에도 대지 못한다.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는 오준석 국장!

그동안 좋은 일도 있었다. 2020년에는 공무원의 꽃 4급 지방서기관으로 승진도 했다.2021년 5월에는 대장암 수술 후 5년이 지나 암 완치 판정도 받았다. 오준석 국장은 “지금도 여전히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음식도 철저히 가려먹으면서 철두철미하게 건강관리를 한 덕분일 것”이라고 말한다.

 

암과 끈질긴 사투를 벌이면서도 공무원으로서의 직책도 성실히 수행해 2013년 풀뿌리 자치 대상, 제11회 민원봉사대상, 제11회 대한민국의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그런 그는 올 연말이면 장장 40년 8개월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퇴임을 한다.오준석 국장은 “건강이 발목을 잡을 때마다 큰 힘이 되어준 직장 선후배,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라며 “앞으로는 베풀며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다.

 

2021년 12월 투병 과정을 담은 책<여러분, 감사합니다>를 펴낸 것도 그래서다. 세 번이나 암에 걸리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고 한다.

 

 

▲ 오준석 국장은 암에 걸려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투병기 <여러분, 감사합니다>를 펴냈다.

 

그런 그가 긴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당부한 말은 하나다. 암에 걸려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오준석 국장은 “세 번이나 암에 걸리고도 꿋꿋이 살아남은 제가 그 증거이니 부디 살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허미숙 기자  kunkang1983@naver.com

자료출처:건강다이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