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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무료건강검진이 가져다 준 값비싼 나의 행복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0. 10. 3. 17:05

 

 

국가암조기검진부문 우수상

 

무료건강검진이 가져다 준 값비싼 나의 행복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게 수기라도 쓰고 있지만 사실 지난해 5~6월만 해도 나에게 이런 날들이 있으리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어느 날 우리 기장군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나이 많은 노인들 건강을 체크하기 위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권고였다. 안 그래도 평소 건강검진을 한 번 받아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소화가 잘 안 되고 팔다리가 쑤신 게 다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이려니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또, 사실 다른 잔병은 없었지만, 크게 건강한 편도 아니어서 건강검진 받는다는 게 조금 망설여지기도 하였다.  어쨌든 무료검진이라는 마음에 집에서 가까운 기장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다. 조금 떨리기도 하였지만, 여러 가지 검사를 다 하고 약 일주일 후에 결과를 통보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그런데, 정확히 일주일 후에 병원으로부터 장에 좀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병원에 다시 한 번 와 달라는 전화가 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두근두근 거렸다. 약간은 두렵고 기분도 별로였지만,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더니 여러 가지 설명 후에 약 4리터 가량 되는 물통을 주면서, 그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식사는 하지 말고, 이 물만 10분에 한 컵씩 마시고 오라고 했다. 엉겁결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물통을 받아들고는 나왔으나, 내심 마음이 어지럽고 당황스러웠다. ‘이게 무슨 일일까?’ 밤새 뒤척이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침을 맞았다.

 

 남편도 조금 걱정이 되는지, 다음날 병원 가는 길에 따라나섰다. 접수하고 좀 있으니 내시경 검사를 한다고 해 진료실 침대에 누웠는데, 수면주사인지 마취주사인지는 모르나 주사를 맞았고, 그 뒤로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의사가 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대장 아래의 직장 쪽에서 암 조직을 발견하고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한다고 일정 부위를 떼어낸 후에, 남편을 불러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보기엔 모니터에 피가 흐르는 장면이 나오고, 의사가 암이 틀림없는 것 같다고 하니 깜짝 놀라서는 “왜 보호자와 사전에 의논도 없이 의사 마음대로 해놓았느냐! 당신은 의사니까 암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는데, 그렇게 마구 말해도 되느냐!” 는 등 의사에게 엄청 강하게 항의하였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성격이 불같은 남편인지라 그 의사선생님께서 크게 당황하셨을 거라 짐작된다.


 며칠 후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불행히도 암이 맞았다. 얼마나 놀랍고, 당황스럽던지, 만감이 교차했다. 지금은 그 때의 그 심정을 말로는 다 표현을 못하겠다. 정말 내가 암이란 말인가!  평소 별 다른 증상이 없던 나로서는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것도 ‘직장암’이라니! 나는 육식도 즐겨 하지 않고 흡연이나 음주는 더더욱 하지 않으며, 텃밭에서 가꾼 채소로 식단을 꾸미고 있었기에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자식들이 이러한 상황을 놓고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직장암 분야의 전문의를 찾아 갔다. 그랬더니, 또 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거기서도 조직검사를 새로 했는데, 역시 암이 틀림없다고 판정이 나왔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 기대까지 무너져 내리고,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그러나 망설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의사선생님께서도 수술 말고는 지금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나이도 먹을 대로 먹고, 가뜩이나 체력이 급격히 나빠진 아녀자 마음으론 ‘ 얼마나 더 살겠느냐, 차라리 포기하는 게 좋겠다.’ 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수술 날짜는 잡혔고, 그날까지 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다.


 지난해 6월 10일, 결국 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잘 됐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남편과 자식들이 교대로 내 수발을 들었고, 친척과 이웃들이 어찌 알았는지 병문안을 오고 가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나와 같은 병실에도 암 환자가 여럿 있었는데 병원에 와서 보니 암이 아주 특별하거나 희귀한 병이 아닌 흔한 병 같았다. 문제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조기에 발견하는가에 따라, 발병 후의 건강과 생활의 질이 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치료를 포기하려고 했던 수술 전의 생각은, 기왕 이렇게 된 것이니 앞으로 잘 관리하자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어졌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나라에서 무료로 해준 건강검진이 내게는 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준 셈이 된다. 하지만 지금의 안정된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다시 나온 조직검사 결과는 암이 아주 초기는 아니고, 2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고 했다.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사선생님 말씀도 들었다.

 

 직장의 상당 부분을 잘라냈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다행히 항문엔 손을 대지 않았지만 항문 쪽 괄약근이 손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겨우 열흘 만에 퇴원은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의 내 생활은 한마디로 고통, 그 자체였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했기 때문에 어디 밖으로 외출하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고, 나중엔 항문이 헐어 치질이 생기는 것을 고민해야 할 지경이었다. 퇴원해서도 매달 닷새씩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을 다녀야 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며 걱정도 많이 했고, 그 와중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와 CT촬영도 다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술한 지 거의 1년이 다 됐을 즈음, 의사선생님께서 “이제 항암주사는 끝났고, 매달 약만 처방받아 복용하면 된다.” 고 말씀하셨고, 난 정말 기뻐 날아갈 듯 했다. 물론 지금도 몸이 완전하진 않다. 횟수만 줄어들었을 뿐 지금도 화장실엔 자주 가야 한다. 그래도 먹고 마시고 하는데 지장은 크게 없다. 올 여름부턴 집 옆에 내가 가꾸던 텃밭에서 고추, 파, 호박 등을 다시 가꾸고 있다. 주말이면 자식들이 찾아와 내가 가꾼 무공해 야채들을 가져가곤 한다. 매일 매일의 이런 작은 일상들이 큰 행복이라는 걸 요즘 새삼 깨닫는다. 내가 조금 괜찮아졌다고 다시 옛날처럼 큰소리로 성질을 부리는 남편이 곁에 있다는 것도 행복이라 생각한다. 늙고 병들었어도 마누라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남편도 고마워했으면 좋으련만…….


 어쨌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제 2의 인생’은 우리 기장군보건소 덕분이다. 그리고 2006년 검진자 중 암 발병으로 수술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보상금도 받게 되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사실은 담당 직원의 친절한 전화통화로 알게 되었다. 늦게나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마누라’라는, 또 ‘엄마’라는 내 존재 가치에 대해 가족들이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또 하나의 보너스이고 말이다.

 조만간 하루 날을 잡아 기장보건소와 수술 해주신 의사선생님께 조그만 선물이라도 사서 한 번 찾아뵈어야겠다. 이제는 ‘제 2의 인생’을 살게 해주신 하늘에 감사하며, 건강 체크를 잘 하여 더욱 내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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