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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 투병기

암환자의료비지원부문 우수상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0. 10. 3. 17:03

 

 

 

암환자의료비지원부문 우수상

 

 

2007년 10월의 마지막 주, 오늘도 새벽 첫 차 서울 행 버스에 아이와 아이엄마를 태워 보냈습니다. 작년 4월부터 새벽 첫 차와의 반갑지 않은 인연, 금년 7월 엄마 간을 아이한테 이식받기 전까지만 해도, 매연을 뿜어내며 서울로 떠나는 버스 꽁무니를 바라보며 억누른 감정을 눈물로 쏟아내곤 했었습니다. 7월 11일 간 이식수술 후부터는 즐거운 마음으로 웃음 가득한 얼굴로 “몸조심하고 잘 다녀와.”하고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4년 전 마흔 한 살 늦은 나이에 필리핀 여성과 결혼을 하여 38개월 딸, 24개월 아들을 둔 가장입니다. 작년 4월 전까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아들의 재롱에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5개월에 접어들 무렵 배가 부르고, 감기 기운이 있어서 가까운 소아과를 찾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의심스런 눈빛으로 아이의 배를 진찰하시고 초음파 검사를 하셨습니다. 검사를 끝내고 한 시간의 시간이 흐르고 의사 선생님 앞에 마주 앉았는데, 의사 선생님께서는 저희 가족 앞에 소견서를 내밀며 서울의 한 종합병원을 소개시켜주셨습니다.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실 때도 우리아이의 몸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병원 응급실에서의 검사를 받고 입원 결정이 내려지고 6층으로 올라오니 ‘소아암 61병동’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설마설마 하면서 이틀에 걸쳐 종합검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입원 4일째, 아침 회진을 끝내고 주치의 의사선생님께서 저희 부부를 교수님 사무실로 불러 그간의 검사결과를 설명하셨습니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아이의 간 CT사진을 가리키며 병명은 ‘간모세포종’, 간의 70%가 혹으로 쌓여있다고 듣는 순간 갑작스런 현기증에 눈앞은 캄캄하고, 머리는 둔기에 얻어맞은 양 멍하고, 하염없는 눈물만 탁자 위에 흘러내렸습니다. 말로만 듣던 ‘소아암 간모세포종’이 내 아이한테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말 못하는 5개월 된 아이가 그 동안 부모님을 원망하며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면, 앞으로 우리 부부는 아이한테 큰 죄인으로 살아야 될 것 같았습니다. 소리 없는 침묵 속에 나는 아이 엄마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향후 치료계획을 설명하시는 내내, 나의 몸은 떨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 엄마가 서투른 한국말과 영어로 치료계획을 묻고 대답하는 목소리만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 두 살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생활하고, 나와 첫째 아이는 시골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15개월에 걸쳐 항암치료만 16차,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마의 따스한 품을 알기도 전에 아이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처음 항암치료를 받을 때, 아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님을 보고 울음부터 터트렸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엄마, 아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때, 부모로서 아이의 고통에 아무런 도움을 못 주고 그저 바라보아야만 했었습니다. 말 못하는 5개월 된 아이한테 항암치료의 고통을 안겨주자니, 가슴 속 깊이 설움이 복받쳐 올랐고, 지난날의 내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4년 전 한참 사회의 날개를 펼치려고 할 때, 내 자신도 위암 3기 판정을 받고 위 완전 절제수술을 받았습니다. 5차의 항암치료와 정기적인 검사를 받으면서 병원에서 완쾌 판정을 받고 시골로 내려와 하루하루 감사하면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 이어 아이까지 암에 걸려 고통의 날을 보낸 지난 15개월, 국가암정보센터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희 가족 삶의 행복은 없었을 것입니다.

  4년간 한국생활을 한 아이 엄마는 아직까지 한국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데도, 온갖 고통과 역경을 아이와 함께 견뎌냈습니다. 지금의 행복들을 마련해 준 아이 엄마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항암치료로 괴로워하는 아이 곁을 떠날 수가 없어서, 화장실 갈 때나 우유병을 닦을 때도 아이를 등에 업고 아이의 고통을 함께 했습니다. 독한 항암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병실 안의 다른 환아들과 부모님의 눈을 피해 복도에서 같이 눈물 흘리며 밤을 새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한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 나는 병원비를 번다는 핑계로, 투병생활로 인한 고통의 짐을 아이와 엄마에게 떠 넘겨야 했습니다.

 내 자신도 위가 없는 상태에 생활을 하다보니 생활에 만족스러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지금은 어린이집 운전을 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나를 바라보던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과 고통에 괴로워하는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헤아리기도 힘든 갖가지 고난들 앞에서, 눈물 흘리며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삶의 끈을 놓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일 때, 한 가닥 희망을 안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간호사님을 통해 저희 가족의 절박한 사정을 알게 된 사회복지사님께서 국가암정보센터에 대해 말씀해주셨고, 보건소를 통한 암환자관리와 의료비지원제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치료도 못 받고 수술도 받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암 환자들을 위한 국가암정보센터는 한 가닥 마지막 희망이고, 암 환자 가정에는 새로운 삶의 행복의 시작입니다. 캄캄한 미로의 터널 입구에서 한 줄기 빛을 밝혀준 것이 국가암정보센터이고, 지금의 저희 가정을 행복으로 인도해준 게 국가암정보센터입니다.


 아이가 입원하여 15개월 동안 16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받았고, 작년에 8백만 원의 의료비지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항암치료에 아이는 지쳐갔고, 최후 방법으로 간이식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조직검사 결과 간이식수술 적합 판정이 떨어졌는데도, 간이식 수술비가 없어서 고심하고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에게 간 이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해준 것이 국가암정보센터입니다. 아이가 간이식을 받기 전 까지만 해도 저희 가족에게는 웃음이란 단어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금년 7월 의료비지원으로 간이식수술을 받고, 수술 3개월이 지난 지금은 경과가 좋아서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의 한 종합병원을 오가며, 외래로 치료받고 있습니다.


  다음 달 두 돌을 맞는 아이는 아장아장 걷고 뛰면서 말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누나와 싸우고 울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아이 엄마와 함께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 가족의 행복은 국가암정보센터가 있어서 가능했고, 이제는 한 폭의 화선지에 저희 가족의 환한 얼굴을 담게 되었습니다.  2007년 7월 11일은 아이 엄마와 아이가 하나의 몸이 되어 새롭게 태어난 생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희 가족은 국민건강사업과 암 환자들을 위한 의료비지원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암 환자들을 위해 국가암정보센터를 널리 홍보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국가암정보센터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원하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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