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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스크랩] 하동 토지길을 걷다

라이프케어 김동우 2013. 11. 16. 11:49



.. 하동 토지길을 걷다

 

ㆍ문학의 향기 깊어가는 황금빛 계절

누렇게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 경남 하동 악양에는 풍요로운 황금빛 계절이 깊어가고 있었다. 지리산 맑은 물로 몸을 불린 섬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생생한 자연의 에너지가 생명의 기운을 일으키는 곳.따사로운 가을볕 아래 눈부신 황금 들녘을 가로지르니 만석지기 사대부가 부러울 것이 없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물결 속으로 풍덩


거지가 1년 내내 집들을 돌며 동냥을 해도 들르지 못하는 집이 세 집이나 된다는 풍요와 인심의 땅. 지리산과 섬진강에 감싸 안긴 83만 평 악양 들판에는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사시사철 꽃과 풀이 마를 날 없는 이 비옥한 땅에 박경리 선생은 만석지기 사대부집을 지었다. 토지길은 대지주 최씨 가문과 민초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소설 「토지」의 무대를 휘감아 돈다. 평사리 최참판댁을 중심으로 섬진강변과 화개까지, 그림 같은 풍경을 멀리서 또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다. 총 31km 중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됐던 평사리를 지나는 1코스(18km)와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꽃길을 걷는 2코스(13km)로 나뉜다.





1코스가 시작되는 평사리공원(개치나루터)에서 길을 잡았다. 하동읍과 화개장터 가운데쯤 위치한 개치나루터는 화개장터로 가는 장배가 드나들던 곳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평사리를 떠나거나 돌아오는 길목이 됐던 곳. 용이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월선이 막배를 타고 섬진강을 넘었던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 들어서니 푸른 대숲과 은빛 모래밭 사이로 평화로운 섬진강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반짝이는 가을 햇살 아래 비단결같이 고운 강줄기가 은빛 몸을 트니, '꿈결 같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보다. 전북 진안에서 구례까지 굽이굽이 협곡을 이루는 섬진강은 악양에 들어서며 비로소 유유히 섬진강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하동 사람들은 묵묵히 흐르는 섬진강을 '아버지 강'이라 했다. 모든 생명을 품고 있는 어머니 지리산과 아버지 섬진강이 만나 낳은 것이 악양의 무딤이들이니 축복받은 땅이 아닐까. 악양 들판의 또 다른 이름인 '무딤이들'은 밀물 때 섬진강 물이 넘쳐
무시로 물이 드나들었다 해서 붙여진 우리말 이름이다. 공원을 따라 섬진강변을 둘러본 뒤 도로를 건너면 걸음을 안내하는 길이 끝없이 펼쳐진 황금물결 한가운데를 시원하게 가른다. 눈부신 악양의 가을 속으로 풍덩 빠져들 차례다.





굽이굽이 흐르는 역사와 이야기 따라


만석지기 서넛은 거뜬히 내었다는 악양 들판은 언제 보아도 풍요롭지만 곡식이 영글어가는 가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황홀하게 물든 들판, 바람이 일 때마다 출렁이는 무딤이들이 황금빛 파도를 만든다. 1960년대 말 박경리 선생은 딸과 함께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드넓은 평사리 들판을 발견했다고 한다. 경상도 방언에 익숙한 저자는 마침 경상도에서 작품의 무대를 찾던 중이었고 넓은 들과 섬진강, 지리산의 역사의 무게를 한데 안은 평사리가 「토지」의 배경이 된 것이다. 정작 박경리 선생은 멀리서 들판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들을 밟아본 적이 없다 하니 소설 속 생생하게 그려진 악양의 정취가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펼쳐진 들판에 바둑판무늬를 새겨놓은 농로를 따라 걷다 보면 들판 한가운데 나란히 선 소나무 한 쌍과 마주한다.





악양의 상징인 부부송이다. 서희와 길상이, 혹은 월선이와 용이 소나무라고도 불리는 부부송은 사실 누가 어떤 연유로 심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다정하게 선 모습을 본 누구라도 사랑하는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탁 트인 넓은 들판을 지나 마을로 올라가는 길에는 작은 호수 동정호가 자리 잡고 있다.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곳을 지나다 호수를 보고 자신의 고향인 당나라 악양의 '동정호'와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동정호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당시 이곳에 주둔하던 백제군이 큰 솥으로 밥을 짓다가 나당 연합군이 오는 걸 보고 호수에 솥을 빠뜨리고 갔다는 것이다. 호수 어디엔가 백제군의 밥을 끓이던 솥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정호 정자에 오르면 악양 어디에서건 두 그루로 보이는 부부송이 몸을 맞춘 듯 한 그루가 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그야말로 눈앞에 그려지는 곳이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러보도록 하자.





낮은 돌담길이 안내하는 옛 영화(榮華)의 흔적


한산사 전망대에 올라 드넓은 악양 들판을 한눈에 내려다본 뒤 마을로 향한다. 최참판댁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모여 있는데, 하동군이 소설 속 평사리 마을을 그대로 옮겨와 지은 것이다. 작은 흙길 따라 지척으로 마주하고 있는 초가집에는 용이, 월선, 임이네, 두만네 등 문패가 걸려 있다. 외양간에는 소 한 마리가 한가로운 소 울음을 울고, 주말이면 문인협회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도 연다. 드라마 촬영지로 지어졌지만 여전히 일상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초가들을 스쳐 최참판댁
솟을대문 앞에 서면 만석지기 최씨 집안의 위엄이 드러난다. 3천여 평 대지에 지어진 14동의 한옥은 조선 반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살려 지은 것이다. 윤씨 부인과 서희가 기거했던 안채, 길상이를 비롯한 하인들이 머물렀던 행랑채, 김환과 야반도주한 별당 아씨가 머물던 별당, 최치수의 기침 소리가 들리는 듯한 사랑채 등이 잘 정돈돼 있다. 작은 연못 위로 수양버들이 춤을 추는 별당은 최참판댁에서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최참판댁에 들렀다면 반드시
누마루에 올라보자. 들 한복판에 선 부부송과 함께 탁 트인 시야 가득 드넓은 악양 들판이 펼쳐진다. 멀리 굽어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까지,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절경이다. 최참판댁에서 내려와 20여 분쯤 마을 길을 걸으면 조부잣집이라 불리는 조씨 고가가 나온다. 조선 개국공신 조준의 후손인 조재희 선생이 낙향해 지은 이 집은 한때 거느리는 식솔과 줄을 잇는 손님들로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부잣집에서 흘러나온 쌀뜨물로 섬진강이 뿌옇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그 위세가 어땠을지 짐작할 만하다. 동학과 전쟁을 거치며 별당과 행랑 등이 불타고 지금은 안채만 남아 있지만 고풍스러움은 여전하다. 낮은 돌담길로 이어지는 토지길 1코스는 소나무가 울창한 취간림을 거쳐 다시 평사리공원으로 돌아온다. 아늑한 시골길의 정취에 취해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붉은 노을이 들판을 물들인다.





가벼운 걸음 따라 펼쳐지는 시골 풍경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였다. 지리산 화전민들이 고사리와 더덕, 감자 등을 가져와 팔았고, 전남 구례와 경남 함양 등 내륙 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내다 팔았다. 있어야 할 건 다 있다는데, 무엇을 팔고 있나 살펴보니 헛개나무 가지, 느릅나무,
둥굴레와 같은 지리산 약초와 야생차, 산나물 등이다.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고로쇠 약수도 눈에 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를 지나 불일폭포까지 이어지는 2코스는 울창한 숲과 색색의 논밭이 펼쳐진 시골 풍경을 조망하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매년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으로 꽃 대궐을 이루는 이 길은 이제 막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계절이 스쳐 지나가는 길 위로 황홀한 시간이 무르익어간다.





토지길

1코스(18km, 소요시간 6시간)

평사리공원 → 평사리들판 → 동정호 → 한산사 → 최참판댁 →
조씨 고택 → 취간림 → 평사리공원

2코스(13km, 소요시간 4시간)
화개장터 → 쌍계사 → 불일폭포 → 국사암 → 화개중학교 → 화개장터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취재 협조 /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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