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교육, 빵셔틀인가
[청년의사 신문 김선영]
선택진료비가 폐지되면서 그 반대급부로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각종 수가가 신설되고 있다. 암 진료 영역에서는 9월부터 항암화학요법 주사관리료와 부작용/치료반응 평가료가 신설됐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평가료를 지급하는 기준에 아쉬움이 다소 있기도 하고, 평가료를 지급받기 위해 오더를 따로 넣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하니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하고 있고, 의무기록도 더 열심히 작성하고 있다.
12월부터는 암환자 교육상담료 수가도 신설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지급하는 심사기준에 대해 들었을 때는 현실과 동떨어진 무리함에 기가 막힐 뿐이었다. 초회 교육은 약 4만원, 재교육은 약 2만원으로 수가가 정해졌다. 금액은 기존의 약 5만원 정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단 보험이 되면 환자는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어 (5%만 본인부담을 하면 되니 초회, 재교육이 각각 2천원, 천원 정도이다) 다행한 일이다.
문제는 의사 (전문의), 간호사, 영양사가 각각 20분, 30분, 30분씩 총 80분 이상 교육을 실시하고, 교육대상자, 교육시간, 내용, 방법, 교육자 및 효과평가 결과를 기록관리하며 육하원칙에 따라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병원의 경우 항암화학치료를 시작하는 암환자에 대해서는 교육상담료를 5만원 정도 비급여로 받고 간호사, 영양사, 약사가 약 20분 정도씩 개인교육을 해왔다. 중심정맥관 관리 교육이 필요한 경우에는 만원 정도가 추가된다. 처음 개인교육을 한 이후 재상담, 재교육, 수시로 문의와 상담을 하는 것 등은 모두 무료다.
(사실 이것도 수가를 받아야 하지만 서비스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낮아 할 수 없이 무료로 해온 것이다) 물론 의사가 교육상담지시를 하면서 간단히 약제에 대해 설명은 하지만, 1인당 3~5분 정도 되는 진료시간에 충분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정은 암 치료를 하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의가 외래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항암교육을 실시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실정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대개 새로 항암치료를 시작하거나 약제를 바꾸는 경우는 진료 당일 영상이나 환자 상태를 검토하여 결정되는 경우도 많은데, 3~5분 단위로 한 사람씩 보도록 진료예약을 잡아놓는 실정에서 그 정도의 시간을 어떻게 갑자기 낼 수 있는가? 그렇다고 외래 진료 이외의 시간을 교육을 위해 따로 잡는 것은 의사, 환자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다.
재교육 역시 80분 교육을 강제하면서도 수가는 반토막이라는 것도 문제다. 일단 환자가 처음이라면 몰라도 약제가 바뀔 때마다 그 설명을 듣기 위해 80분씩 병원에 머무르면서 교육을 받으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80분에 2만원이라는 수가도 당혹스럽다. 시간당 기준으로 환산하면 1만5,000원이다.
2014년 기준으로 정규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 평균은 1만8,000원이라고 한다. 의사, 간호사, 영양사라는 각각의 전문직이 환자 한 사람을 놓고 개인교육을 하는 댓가가 전체 근로자 임금평균에 못미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차라리 환자 교육과 상담 시스템을 갖추는데 드는 인력, 행정, 콘텐츠 제작에 소요되는 비용을 각 의료기관에 직접 지원하고, 환자가 일부러 80분이라는 시간을 내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야간, 주말에도 연락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핫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한편 중심정맥관 관리 교육은 항암치료 부작용 교육과 별도로 따로 필요한데도 추가적인 수가를 인정하지 않으니 고기 먹으면 냉면은 당연히 공짜 아니냐고 눈을 부라리는 형국이다. 게다가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하라고 요구하는 기록까지 하려면 추가적인 시간과 노력이 드는데, 이것까지 고려하면 정말 턱도 없는 수준의 수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심사기준에 대한 의견조회 기간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이제까지의 심사기준 결정과정을 볼 때 이대로 12월부터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마 각 의료기관은 교육은 교육대로 하고 상담료는 80분과 육하원칙에 따른 기록이라는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항암화학치료라는 고위험 치료를 하면서 환자 교육을 안할 수는 없으니, 결국 기존에 비급여로 받던 교육상담료도 받지 못한 채 공짜로 교육을 하게 될 것이다. 대신 교육의 질은 오히려 내려갈 가능성이 커진다.
비급여로 제공되던 의료서비스가 급여로 편입되면 갑자기 서비스에 대한 양적 질적 요구가 많아지는데 가격은 더 떨어지는 현상은 이미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소위 ‘빵셔틀’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아이들이 힘없는 급우에게 천원주고 빵 음료수 과자까지 사오게 한다는 빵셔틀, 바로 그것이다. 2~4만원 주고 한시간 반을 환자 한명에 전문가 3명이 달라붙어 집중교육을 하고 육하원칙에 따라 기록하라고 하는 것과 매한가지 아닐까?
이런 일들이 이미 의료계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어떻게든 급여대상이 되는 필수의료와 안 엮이는 것이 몸과 마음과 주머니 사정이 편한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의사들은 건강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근거가 충분한 필수 진료를 하기 보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급여진료의 비중을 늘리려고 안달하게 된다. 양질의 필수 의료 제공이라는 공공의 목표에 기여하면 경제적 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의료진들에게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기사입력시간 : 2015-11-21 07:48:30최종편집시간 : 2015-11-21 07:48:30김선영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자료출처: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511190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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